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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아무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말길..

홍승우 'OLD' 삽화 中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준비하지 않은 채 오륙십 대를 맞이한 사람은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두려움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본격적인 신체적 노화가 두드러진다.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이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더 이상 새치가 아님을 자각하게 한다.  또 갱년기를 홍역처럼 겪고 나면 더 이상 내 몸을 돌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즈음 사회적 지위도 종료가 임박하게 되고 믿었던 부모님들은 우리 곁을 하나 둘 떠나신다.  아이들마저 독립하면서 가족 구성원의 변화까지 한꺼번에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전환점에 선 기분이랄까.  마치 어떤 새로운 인생의 문이 열린 것 같다.  중력처럼 제어할 수 없다면 이제는 모든 것을 새롭게 리셋해야 한다.  완전히 다른 인생관을 가지고 그전과는 다른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다.  당시는 한창 일하는 젊은 시기이기도 하고 당장 내게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듯 접목해 읽었던 가벼운 독자였다.  이 책은 세계적인 사회학자이자 인간 생태학 분야에 최고 권위자인 칼 필리머가 '코넬대학교 인류 유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구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는데,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5년간에 걸쳐 인터뷰하며 얻은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다.  총 8만 년의 삶, 5만 년의 직장생활, 3만 년의 결혼생활, 3천 명의 육아를 겪은 그들의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다.  



그때 나는 운 좋게도 이 책을 통해 결혼관과 육아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고 그것을 지침 삼아 결혼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 지침은 나의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이 책을 그 당시에 읽은 것은 큰 행운이었다.  지금까지 지난 결혼생활에 있어 이 책이 없었다면 나는 큰 방황을 했을 게 틀림없다.  다시금 반갑게 만난 지침글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5가지 조언

1.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라(가치관 공유)

2. 설렘보다 우정을 믿어라(설렘보다 깊은 우정을 느끼는 사람과 결혼해라)

3. 결혼은 반반씩 내놓는 것이 아니다(내가 더 주어야 성공한다)

4. 대화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다(싸우더라도 화해하고 같이 잠자리에 들어라)

5. 배우자와만이 아니라 결혼과도 '결혼'한 것이다(결혼관에 충실하라)



*양육을 위한 5가지 조건

1.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자녀의 관심사를 함께 하라)

2. 깨물면 유독 아픈 손가락, 드러내지는 마라(편애하면 안 된다)

3. 몸의 멍은 지워지지만 가슴의 멍은 평생 남는다(강한 체벌은 충분히 참은 뒤에 해라)

4.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계의 균열만은 피하라(불화가 생겼을 때 화해는 부모가 먼저)

5. 자녀와의 관계는 '평생의 관점'에서 봐라(완벽하게 키우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이제 나는 산증인인 그들의 지혜를 신뢰하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죽음의 순간에 다가가기까지 겁내지 않고 받아들일 조언을 찾아보게 되었다.  남을 우선시하던 생활에서 이제는 나 자신을 아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하고 싶다.  지나간 시절은 말그대로 모두 지나갔다.  이제는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은 것을 담대하게 분류하고 정리하고 심플한 삶으로 편하게 지내고 싶다.



누구나 나이 먹기를 두려워 하지만 그 두려움을 피하기보다 인생의 현자들이 말하는 조언을 가슴에 담아 노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나머지 조언들도 이제야 눈에 제대로 들어온다.  역시 사람은 경험과 현실적 욕구가 있어야 효과를 발휘한다.  두려움 없이 나이 들기 위한 조언은 오륙십 대에 노년의 새로운 문을 열게 된 우리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확실한 응원을 받는다.



*두려움 없이 나이 들기 위한 5가지 조언

1. 나이 먹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노년이라서 여유로움을 느낄 성숙이 있다)

2. 100년을 서야 할지도 모른다! 몸을 아껴라(쾌락을 추구했던 흡연, 식습관, 운동부족을 없애라)

3.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을 미리 걱정하지 마라(마지막 순간을 대비해 차분히 계획하라)

4. 관계의 끈을 놓지 마라(사회적 고립을 자초하지 마라)

5. 노후의 거처를 계획해 두라(노인거주시설 등 노후의 마지막 거처를 확보하라)



우리는 그동안 온갖 일들을 극복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애썼다고 나 자신을 먼저 칭찬하고 싶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많은 경험과 사유를 얻었다.  지나고 보니 모든 일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하고 단순한 일상을 지내면서 나는 일상의 평화로운 안정 속 소소한 기쁨의 소중함을 느낀다.  봄의 가벼운 공기, 땅의 열기로 꽃망울을 키우는 식물들, 향기로운 커피 향,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 너무나 당연하고 가볍고 묻히기 쉬운 일상들의 가치다.  하지만 이 사소한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아무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말게. 그게 내가 깨달은 중요한 교훈이라네. 살면서 일어날 모든 일에 완벽하게 대비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지. 하루하루를 즐길 수도 있고 말이야. 바로 삶의 아주 작은 것들 때문이라네. 뭔가 일이 크게 잘못되고 있는 순간조차 기쁨을 누릴 수 있다네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 칼 필리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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