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체중을 다시 늘리기 위해 요요 현상을 만들 때는 먼저 식욕을 증가시킵니다.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도 너무 맛있게 느껴집니다. 음식의 실제 맛을 뇌가 원하는 방향으로 확대하고 강화합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뇌는 습관이 된 감정을 확대하고 강화합니다. 뇌가 불안이라는 감정에 습관이 들어 있으면 우리는 불안을 유발하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실제보다 훨씬 큰 걱정과 불안을 느낍니다. 반대로 행복이라는 감정에 습관이 들어 있으면 기분 좋은 일이 발생했을 때 뇌는 거기에 훨씬 큰 관심을 두고 그 느낌을 확대해서 받아들입니다.
인류의 의학 영역 중 아직도 개척이 무궁무진한 분야를 꼽는다면 뇌과학 쪽이라고 한다. 지금도 새로 발견되는 뇌 영역 발견은 이성과 감정을 원활히 다스리지 못하는 인간의 취약성의 원인을 조금씩 해갈해주고 있는 형편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말하는 영장류 인간은 인류의 공동조상인 침팬지(유전자 99%)와 사회생물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유사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침팬지의 사회행동 연구의 기폭제가 된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에서는 자발적이고도 본능에 가까운 침팬지 군집생활을 연구하면서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권력에 대한 해석을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인간의 무의식적(본능) 행동에 대한 해석은 원시인의 뇌가 사고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클루지(개리 마커스 저)'에서 저자는 인간의 마음이란 정밀하게 설계된 기관이라기보다 서툴게 짜 맞춰진 고물 컴퓨터라고까지 주장했다.
즉,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원시인의 뇌가 문명의 발달인 진화의 관성 때문에 마음의 세계는 불안정하다는 해석이다. '클루지'는 그러한 불완전한 뇌의 오류를 인정하고 이성적인 논증을 공부함으로써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의 차이를 깨우치도록 권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클루지'가 떠오른 것은 저자의 주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감정은 습관이다'란 제목처럼 우리는 먼저 '뇌'가 왜 습관적으로 움직이는지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뇌의 원리: 뇌는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이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평소에 유지했던 익숙한 상태를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한다."
그것은 수많은 위험 속에서 지내야 했던 원시인들에게 생존이라는 강박관념이 뇌에 내재화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삶의 질이나 웰빙 따위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당분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포유류의 공격 시 굶을 시기를 대비해 지방축적이라는 생존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뇌는 다이어트 이전 체중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평소 좋아하지 않는 음식마저도 맛있게 느껴지게 조정할 뿐이다.
'감정습관은 감정의 요요현상'이라는 쳅터가 있는데,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지난 3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계속해서 흥분상태로 몰아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가 자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나의 교감신경계는 스트레스가 지나간 뒤에도 안정 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의 뇌는 어차피 자주 스트레스가 반복될 테니까 위기가 올 때 더 재빠르게 대처하도록 긴장 상태를 유지했고 결국 스트레스를 더욱 쉽게 느끼는 상태를 만든 셈이었다.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술을 그렇게 자주 마셨으니 극약처방을 내린 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워라밸을 외치는 직장인들의 사회는 매우 건정한 처방인 셈이다. 큰 스트레스는 작은 즐거움(세로토닌 분비)으로 풀어야 좋다고 한다. 자극적인 쾌감(폭음, 폭식, 스포츠 복권, 심한 스포츠 등)은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도파민)로 덮어서 오히려 교감신경계를 흥분시키고 요요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자극적인 쾌감을 자주 선택하면 뇌는 양극단의 감정만 기억하고 그 중간에 존재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생략한다.
또 다른 뇌의 흥미로운 사실은 행동뿐만 아니라 감정 또한 익숙(반복)한 감정이 뇌 속에 표준으로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우울이든 공포든 속박이었든 정상적인 삶과는 상관없이 오랜 기간 경험한 자신의 환경이 표준 감정이 된다는 점이다. 나는 여러 사례들을 읽으며 지독한 쇠사슬에 묶인 뇌의 허약성에 놀랐다.
책을 읽다 보면 유년시절을 걸쳐 형성된 나의 성격에 대한 회고가 저절로 이어지게 되는데 어느 걱정이 많은 내담자의 사례가 나와 얼추 유사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부모의 심한 싸움이 일상화되자 결혼만이 탈출구로 생각하게 이른다. 그녀는 이후 원만한 결혼생활에 아이들도 잘 자랐지만 이 안정이 정상인지 극도로 불안해했다. 나는 그녀의 불안이 어떤 감정인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헌신했는지도 짐작한다.
내가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지수가 높았던 이유도 '안전한 직장'을 만들기 위한 희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일을 처리해도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조직과 병행해서 망가진 건강은 퇴직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독서와 자아성찰로 이제는 스스로 극복한 상태다. 작지만 소소한 만족과 감사가 내 감정을 채웠기 때문이다.
전문의인 저자는 지금의 평화로움이 불안한 것은 뇌가 정상으로 돌아가기 전의 현상이라고 다독인다. 또한 정상적인 감정습관을 익히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자기 확신'임을 강조한다. 새롭게 적응할 수 있다는 100퍼센트 확신만이 감정의 쇠사슬인 요요현상을 끊는 처방인 셈이다.
"뇌는 유쾌하고 행복한 감정이라고 해서 더 좋아하지 않는다. 유쾌한 감정이든 불쾌한 감정이든 익숙한 감정을 선호한다. 불안하고 불쾌한 감정일지라도 그것이 익숙하다면, 뇌는 그것을 느낄 때 안심한다."
심리학에서는 유독 내담자의 유년시절을 되짚어 본다.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었지만 마음속 아이는 유년시절 익숙했던 불안, 초조, 우울한 감정들이 표준감정이 된 지도 모른 채 성인이 된 현재의 주변에서만 답을 찾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감정을 벗어나고 싶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 쉽지가 않다는 것이 고문이다.
어느 사례 중 유년시절 맞벌이로 방과 후 집안에 엄마가 없는 것이 슬펐다는 내담자는 성인이 된 지금 부모가 모두 집에 있음에도 뭔가 어색하고 답답해 집을 나왔다고 말한다. 그의 뇌는 혼자가 익숙한 것이다. 그 밖에 거론되는 여러 사례가 많다. 바람둥이를 계속해서 만나는 이유, 헌신함에도 주변에 친구나 애인이 없는 이유등 대부분 뇌가 익숙한 환경을 찾기 때문이라는 점이 놀랍게 읽힌다.
이 책은 여러 사례를 가진 내담자들을 상담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일반적인 정신 상담서로 읽을 수도 있지만 저자는 독자들의 이해 수준을 감안하여 최대한 의학용어를 친절히 풀어 설명한다. 아직도 내원하기 꺼려하는 독자들을 위해 감정이란 존재가 원시시대부터 고치지 못한 '습관'의 발로임을 이해시키고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순서였다.
뇌는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데도 그저 반복되었다는 이유로 그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대인관계습관까지 그 규칙을 따르며 망쳐 놓는다. 결론은 머릿속에 고착화된 생각습관을 점검하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우화 중에 서커스단에 끌려와 사슬에 묶인 어린 코끼리를 기억할 것이다. 코끼리는 자라서 쉽게 끊을 수 있는 작은 사슬도 포기하고 살아간다. 자극과 감정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찾는 연습을 게을리하고 끊지 않는다면 병든 감정이 하라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우리의 뇌는 단순해서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집중해서 생각하면 의미를 이해하겠지만 까딱 잘못하면 의미를 오해하는 존재란 점이다. 감정이 습관이라면 이제라도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긍정적인 말과 행동, 소소한 과정이 주는 만족을 느끼도록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감정수첩 기록은 상당히 괜찮게 보인다.
뇌는 일상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내용들을 반복하면 그것이 나아갈 방향으로 인지한다. 오랜 시간 정착된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저자는 영국으로 이민 가 운전을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비유했다. 오른쪽 운전석과 신호등으로 당황하지만 이내 거북이처럼 조금씩 나아지는 것처럼 몸이 반응하기까지 뇌가 새로운 습관을 들이도록 포기하지 말고 확신을 가지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