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라는 부담과의 결별
우리 삶에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바다와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간다. 한 번 삐끗하면 쉽게 돌아 킬 수 없는 리듬이다. 파도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면 파도가 전하는 진실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새롭게 도약하는 힘, 회복할 에너지를 찾을 수 있다는 진실이다. 회복은 우리가 가진 것을 전부 비울 수 있는 능력이다. 왠지 어려워 보여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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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시기와 궁핍한 시기가 있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극복하면 될까? 방법은 간단하다. 파도와 같은 삶을 바란다면, 파도처럼 살아가면 그뿐이다. 파도는 물러나고 밀려오는 것에 개이치 않는다. 산다는 건 그냥 그런 거니까. 파도처럼 살고자 한다면, 우리 삶에 다가오는 모든 것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자. 지금 이것이 흐르는 물인지 고인 물인지, 밀물인지 썰물인지 미리 알 필요는 없다. 그저 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밀물과 썰물' 본문 中
삶에 대한 철학을 바다와 관련지어 이야기하는 책이다. 프랑스 최고의 철학자로 꼽히는 '로랑스 드빌레르'의 인문에세이로 이 책의 많은 추천사가 책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생각해 보면 바다를 매개체로 하여 인생의 철학을 상세히 펼친 책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가 놓쳐버린 바다의 가르침들을 섬세한 필치로 느끼게 되는 책이다. 읽다 보면 바다가 눈앞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저자의 상세한 설명, 지식, 안내로 인해 감탄하게 만든다.
바다는 인류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다. 외로울 때, 행복할 때, 고독할 때, 위로를 받고 싶을 때까지도 우리는 바다를 그리워한다. 바다 앞에서 용기와 희망과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그 앞에서 나의 삶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고 확신이 서지 않아 귀향하듯 다시금 바다 앞에 서게 된다. 그 이유를 저자는 바다는 하나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따라서 우리의 삶도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밀물과 썰물로 이루어진 파도를 타고 바다 멀리 나가면 끝없는 존재들이 하나씩 다가온다. 무인도, 난파, 항해, 헤엄, 소금, 등대, 방파제, 바닷가, 고래, 선원, 깃발... 이렇게 많은 소재가 있다니 놀랍다.
우리는 흔히 삶을 산과 바다에 비유한다. 산은 든든하다. 넘어져도 산은 나를 흔들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는 어떤가. 바다는 중심을 잡으려 해도 나를 흔들며 너울거린다.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족한 나 자신을 느끼고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게 만드는 것이 바다다. 그러니 바다를 항해하는 것을 우리의 삶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차분히 진행하려 해도 바다는 예외가 있음을 알려준다.
저자는 왜 삶에 대한 해석을 '바다'로 정했을까. 삶을 '바다 여행'으로 비유한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글을 인용해 본다.
"바다여행처럼 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배를 조정하는 사람과 선원, 여행 날짜, 적당한 때를 선택한다. 그런데 폭풍우가 찾아온다. 왜 아직도 신경을 써야 할까? 내 생각에는 모든 것이 끝났는데 말이다. 이제는 또 다른 문제인 조종사의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배가 침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현자들은 철학 자체는 삶을 이야기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삶을 이야기하려면 철학 자체, 개념적인 언어는 포기하고 바다를 은유법으로 사용해야만 가능하다 말했다. 우리의 삶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려면 바다 앞에 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이라는 항해를 이해하기에 이 책은 안성맞춤이다.
중년이 되니 삶은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바람을 역이용할 줄 아는 노련한 바닷사람처럼 사는 것이 훨씬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있듯이 인생에도 올라갈 때가 있고 내려갈 때가 있다. 물결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지치지 말고 너울거리는 물결에 몸을 맡기고 기회를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럴려면 바다에서 편안한 호흡은 생명과도 같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인생이라는 삶을 무겁게 받아 드린다. 수많은 무게에 눌려 살기 때문이다. 현재 이뤄야 할 것들, 잃어버린 행복의 회복, 돌이킬 수 없는 실연 그리고 과거의 무게들로 힘들게 산다. 제일 먼저 나와 소통하지 않는 폐쇄적인 자아가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을 칠 때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걸쳤던 옷을 벗고 바다 속 하나의 조각으로 변한다. 저자가 말하는 헤엄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해방감에 눈이 커진다.
"바다에 가면 우리는 상태가 달라진다. 육지에서는 서서 걷고, 바다에서는 수평으로 떠다닌다. 바다에 있으면 더 이상 서서 주변 세상을 내려다볼 수 없는데,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세상의 '조각'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로 보면 다이빙도 바닷속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바다와 하나가 되는 행위인 셈이다. 바다 위로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만나러 가는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으면 그저 주변은 그저 바다뿐이다. 그것만으로도 평소에 있던 곳에서 해방된 기분이 든다. 육지에 있을 때면 우리는 마치 핀으로 고정된 나비처럼 항상 어딘가에 매여 있다. 바다에서 눈을 뜨고 이 활기찬 푸른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경험이다. 마치 무한대에 살고 있고 바다와 하나가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결국 인간은 욕망이 문제다. 영원할 거라는 착각이 부른 괴로움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삶을 바라보자.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는 나르시시즘은 나와 상대의 삶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자아의 부담과 결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