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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철학을 삶에 녹여보자

스토아 진료실에서 놔주는 또 다른 백신은 프리메디타치오 말로룸(premeditatio malorum), 즉 '최악의 상황에 대한 예상'이다.  세네카는 인생이라는 화살이 어디로 날아갈지를 예상해 보라고 말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유배, 고문, 전쟁, 난파 사고를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 하라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은 미래의 고난을 상상하는 것은 미래의 고난에 대한 걱정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걱정은 모호하고 애매한 것이다. 하지만 고난을 예상하는 것은 구체적인 행위이며, 더 구체적일수록 좋다.

(중략)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고난이 가진 영향력을 빼앗고 지금 가진 것에 더욱 감사할 수 있다.  예상한 대로 대재앙이 닥쳤을 때 스토아주의자들은 무화과나무에 무화가가 열리거나 조타수가 맞바람을 만날 때처럼 태연하다고, 에픽 테토스는 말한다. 예상된 고난은 힘을 잃는다.  구체적으로 표현된 두려움은 그 크기가 줄어든다. 최소한 스토아철학은 그렇다고 말한다.



- 12장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中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제목의 이 책은 흔들리는 특급열차를 타고 철학자의 흔적을 좇는다. 저자 에릭 와이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가답게 어려운 철학자의 논지들을 무겁고 지겹지 않은 유머코드와 접목하여 독자들에게 실생활에서 철학을 어떻게 적용할지 전달하고 있다. 


책 속에는 열네 명의 철학자가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왜 책제목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일까.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중에 나와있는 철학책들과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철학이라는 지식 체계만 배운다. 그러니까 정말 인생이라는 삶 속에서 꼭 필요한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법이 빠져있는 것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봉착하는 난관, 의문, 사유를 철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는 그 시작을 소크라테스라고 생각했고 질문의 대화로 시작되는 철학자들의 흔적을 찾아 열차에 탑승했다. 저자는 철학자들이 실제로 머물며 사색했던 장소로 향하며 동일한 의문을 경험한다. 저자는 제이컵 니들만의 <철학의 마음>이란 책에서 생각을 정지시키는 문장을 발견한다. 


"우리 문화는 일반적으로 질문을 경험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소크라테스 질문법은 유명하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생각들을 질문을 통해 교착 상태로 문제를 더욱 야기시키며 결론을 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공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아래 인용문 참조)


보통 들은 질문을 그대로 다시 물어보면 사람들은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하지만 제니퍼는 아니었다.  내 질문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내 머리를 강타했다. 성공이 어떤 모습이냐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늘 성공을 미적 측면이 아닌 양적 측면으로만 여겼다. 질문의 프레임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는 중요하다.

(중략)

좋은 질문은 문제의 해답을 찾게 할 뿐만 아니라 해답을 찾는 행위 그 자체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좋은 질문은 똑똑한 대답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침묵을 끌어내기도 한다.  



자신이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판단한 결과물인가? 그냥 외부나 타인들의 시선에서 결정된 판단에 따르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봐야 한다. 딱딱하고 무거운 주제처럼 내가 쓰고 있지만 책에서는 가볍게 터치하고 있다.  아침에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피식 웃다가 심각해지는 철학자 이야기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철학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마 제국 제16대 황제)이며, 그의 저서 <명상록>의 이야기다. 


<명상록>에는 아우렐리우스의 생각이 검열 없이 써 내려간 책이라고 한다.  내면의 갈등이 실시간으로 쓰여 있는데, 이불 안팎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불면증 환자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지만 그는 햄릿처럼 갈등하다 '해야 할 중요한 일들과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사상들이 이불 밖에' 있음을 알고 일어난다.  이로써 철학은 철저한 자기 계발서가 분명하다.


에릭 와이너가 소개하는 열네 명의 철학자들의 철학은 철저히 저자 개인의 추천 부분만 발췌한 것이라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최소한 우리가 삶 속에서 쉽게 와닿는 부분이 많아 부담 없이 읽힌다. 또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철학자의 삶도 러프하게 이야기해 준다.  철학자의 인생전반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고통과 쾌락과 사유들은 짧은 단락임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염세적인 철학자로 유명한 쇼펜하우어와 제대로 즐기며 살 방법을 제시한 에피쿠로스, 어떠한 삶의 역경이라도 이겨낼 수 있도록 의지력을 알려준 에픽테토스, 그리고 보부아르가 말하는 늙어가는 관점이 맘에 든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나처럼 열네 명의 철학자 중에서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철학자를 맘 속으로 찾아내고 흡족한 마음으로 삶의 지침으로 삼지 않을까.


쇼펜하우어는 관념론자였다.  철학적 의미에서 관념론자는 이상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정신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라고 믿는 사람을 뜻한다.  물리적 대상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때만 존재한다.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란 뜻이다.  무엇보다 그는 다른 철학자들이 외부세계를 설명하려 들 때 내면의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두운 곳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환한 불빛 아래서 자기 열쇠를 찾는 술주정뱅이 얘기는 다른 철학자들의 쉬운 시도를 비유하는 말이다.


또한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대한 얘기는 이 책에서 건진 소득이다.  스토아학파인 에픽테토스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상반되는 철학자이긴 하지만 쾌락의 본질적인 의미를 말한 것에는 동의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외부에 위탁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만족에서 시작된다는 그의 주장은 합리적이다. (아래 인용문 참조)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규정했다.  우리는 존재의 차원에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긍정 정서의 차원에서 쾌락을 떠올린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의 측면에서 쾌락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 아타락시아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이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주의자'였다.



에피쿠로스는 호화로운 생활이 주는 쾌락은 지지하지 않았다.  종국에는 갖지 못한 고통으로(분수에 맞지 않는) 힘들 것이며 불필요한 욕망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호사스러운 일회성 쾌락(파티)은 좋다고 했다.  이런 융통성이 있는 자유로운 철학자라니.. 좀 숨통이 트이지 않나?


자신의 의지(생각)를 굳건히 지키는 철학자라면 단연코 '에픽테토스'를 꼽지 않을까.  아우렐리우스나 간디도 스토아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실천자였다.  힘으로 나를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나의 허락 없이 나를 해칠 수 없다고 말했던 간디처럼 이타주의의 선봉자들은 대부분 스토아철학을 추구한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많은 영웅들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현실적으로 지지하고 따르고 싶은 철학자라면 '보부아르'가 될 것 같다.  물론 저자가 보부아르의 <노년>이란 책에서 나름대로 추려서 목차를 만든 것이겠지만 10가지 지침은 너무 괜찮아 보인다. 보부아르의 '잘 늙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방법' 목차를 적어본다.


1. 과거를 받아들일 것

2. 친구를 사귈 것

3.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4. 호기심을 잃지 말 것

5.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6. 습관의 시인이 될 것

7. 아무것도 하지 말 것

8.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9.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10.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노년은 절대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라는 보부아르의 코웃음은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과거를 받아 드리면서 자신의 노년을 수용하라는 그의 지적은 마땅히 당연하다고 본다.  그것을 거부하고 역행하는 행동은 일곱 살짜리 늙은이로밖에 안 보이는 것이다.


두고두고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젊은이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내 생각엔 중년의 서재에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꺼내 볼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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