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게으름에 대한 찬양

게을러도 될 만큼 이미 문명은 발달되었다


가난한 사람들도 여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부자들에겐 언제나 충격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남자의 평일 근로 시간이 15시간이었다. 아이들도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게 보통이었고 어른만큼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 시간이 약간 긴 것 같다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제넘게 제의했을 때 되돌아온 대답은, 일이 어른들에겐 술을 덜 먹게 하고 아이들에겐 못된 장난을 덜 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중략)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보단 덜 노골적이지만 그 정서는 그대로 남아 경제적 혼란의 뿌리가 되고 있다.


본문 中



'행복의 정복'과 함께 러셀의 사상을 탐구차 구입한 책이다. 이 책의 표제인 '게으름의 찬양'외에 14편의 글이 실려있다. 그의 철학이 어찌나 확고하고 강렬한지 읽는 내내 그냥 흘려 읽을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18세기 중반에서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중심에 서있던 그에게 '과잉 노동'으로 인해 인간의 가치가 말살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무용론이 커져갔고 사회, 경제, 정치 전반의 그만의 고찰로 이어진 듯 보인다.


이 책에 실린 15편 글들의 기본 가치는 '인간의 자유, 여가, 명상'이다. 현재 산업사회에서 노동은 어떠한가. 당연한 미덕처럼 자리하고 있다.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노동의 소명의식은 의무처럼 당연시되고 있다.


이제 현대 사회는 기술의 발전으로 문명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정하게 여가를 분배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생활필수품을 확보하는데도 엄청난 양의 노동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처럼 열심히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살고 있다.


정말 이상하지 않는가? 사실 '근로'는 미덕이 아니며 오히려 사람들에게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고 러셀은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아주 적정한 양만 생산하고 보통 근로자가 하루 4시간만 일한다면(기계설비가 그만큼 발전했으므로)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거라고 단언한다. (물론 임금을 줘야 하는 부자들은 충격이겠지만)


"여가는 문명에 필수적인 것이다. 예전에는 다수의 노동이 있어야만 소수의 여가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노동이 가치 있는 이유는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여가가 좋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현대 사회는 기술의 발전으로 문명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정하게 여가를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기술은 만인을 위한 생활필수품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양을 엄청나게 줄였다."



필요한 만큼의 이상이 발전한 산업사회에서 아직도 노동하지 않으면 생계가 곤란한 현실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면서도 알 수 없는 사람처럼 일터로 나가 일을 한다. 그들은 성공하기 위해 위해, 큰 부자가 되기 위해 일을 할까?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일을 할까? 슬프게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단지 기아를 면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


러셀의 주장하는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 지금 유효하게 읽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우리는 지구촌이라고 할 만큼 각국들이 촘촘한 거래를 하며 국가별로 관계를 맺고 있다. 러셀이 무역에 대한 명쾌하고도 재미있는 우화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옛날, 한 자그만 읍에 정육점 주인이 있었다. 그는 다른 정육점들이 자신의 고객을 뺏어가자 몹시 격분했다. 다른 정육점들을 망하게 하기 위해 그는 읍내 사람들을 모두 채식주의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자신도 역시 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자 그는 깜짝 놀랐다."



세계 각국의 관세 장벽에 대한 위 글은 무역이란 상호 보완적이며 서로 자멸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증오심이란 것을 말하고 있다. 세계는 이미 하나인 것을 증명하는 것은 어느 나라의 정치경제가 흔들리면 바로 무역의 끈이 작동되어 다른 나라의 여파로 이어지게 때문이다. 이제는 노동, 정치, 경제, 사회, 여성인권, 교육 등등 이 책에서 고민하는 철학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그렇다. 러셀은 '국제주의'를 제시한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각 국가들은 자신의 국가적 이익에 손익을 따지기 바쁘다.


더디게 가더라도 우리는 그가 제시하는 사상과 철학을 지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부가 골고루 분배되는 사회, 게으름과 함께 안락한 여가가 보장되는 사회, 가정과 일이 양립된 편안한 육아가 세계 전체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가동하는 설비에서 생산한 만큼만 소비하는 형태로, 산업이 발전한 만큼 혜택도 인간에게 돌아가는 문명이 되어야 한다. 노동의 가치가 최고가 아닌 '게으름'이 결국 인간 본연의 행복추구기 때문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트런드 러셀 저>


매거진의 이전글 원래 어른이 이렇게 힘든 건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