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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탄생의 원래 그 자리로 가신 분의 유언글

김용호 사진작가 촬영/ 거인의 사색


"허허,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그게 자족이지. 자족에 이르는 길이 자기다움이야. 남이 이랬다고 화내고 남이 저랬다고 감동해서 그 사람의 제자가 되는 게 아니란 말일세. 남하고 관계없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지를 동양에서는 군자라고 해. 군자가 되는 것이 동양인들의 꿈이었지.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고, 스스로 알고 깨닫는 자, 홀로 자족할 수밖에 없는 자....
그래서 군자는 필연적으로 외롭지."

본문 中



'시대의 지성'으로 추대받던 이어령 님이 암투병 끝에 지난 2022년 2월 26일, 향년 88세에 별세하셨다. 그는 언어기호학자이면서 언론인, 비평가, 소설가, 시인, 행정가, 크리에이터 등 수많은 직업을 종횡무진하신 분이다. 나는 이어령 님을 한국의 '폴리매스'라 칭하고 싶다. 폴리매스 polymath란 서로 무관한 세 개 이상의 분야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사람을 말한다. 즉 박학다식한 사람으로서 여러 주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책은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통해 출간 계기가 되었지만 그동안 만난 수많은 '인터뷰이' 중 가장 주목도가 높은 책이 될 거라 믿는다. 이어령 님이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글이기 때문이다. 생의 마지막 인터뷰라 해서 촉촉한 감성적인 내용만 오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좌뇌, 우뇌가 활발히 움직이는 분의 대화는 충분한 지적소유자가 아니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지수 씨는 적임자다.


김지수 씨는 매주 화요일 '라스트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이어령 님을 뵈러 방문했다. 죽음을 앞둔 스승의 지혜를 받고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처럼 마지막 수업을 듣는 시간인 것이다. 인터뷰는 일 년간 지속되었고, 스승의 예언처럼 이듬해 3월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김지수 씨는 독자들의 위해 가볍게 대화의 물고를 틀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과학, 철학, 신화 등 스승의 호기심 어린 언어의 진로방향을 멈출 수가 없어 당황했다. 독자인 나도 마지막 인터뷰까지 이런 공부에 가까운 대화를 나눴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신화에 약한 나는 페이지를 접고 검색한 뒤에 이어나가길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책은 친절한 해석 따윈 주석에도 넣지 않았다.


따라가기 바빠 보이는 김지수 씨 앞에 스승은 느닷없이 "졸지 마!"를 외치며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유머도 있는 분이셨다. 삶과 죽음을 다루는 대화가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것은 그분의 아이 같은 말씀들, 직설적인 표현들이 가볍게 다가와서 일지도 모르겠다. 새벽마다 죽음과 팔씨름을 하고 아침을 맞이하는 스승이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일까.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스승은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이 있다고 했다. 그건 죽음이라고.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고 마스크 한 장 사려고 그렇게 긴 줄을 섰던 이유는 잊었던 진실, 죽음을 발견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죽음을 잊고 돈, 놀이, 관능적인 감각에만 빠져있다가 퍼뜩 정신이 든 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었다. 스승은 말한다.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이라고. 우리가 잊고 있는 것 속에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죽음의 고통(암과의 투쟁)은 밤새 죽음과 팔씨름을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 고통이 느껴지는 부분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통증이 밀려왔다.



"필록테테스처럼 고통에 익숙해지면서 내가 고통에서 한 발짝 물러난 거야. 죽음이나 고통을 사실적으로 깊게 느끼면서 또 그만큼 객관화된 거지. 밤에 아파하며 눈물 흘리는 나와, 그런 나를 쳐다보는 나의 거리가 멀어졌어. 첫 라스트 인터뷰 때는 그게 일치했을 때였지. 육체와 언어와 영혼의 언어가 하나가 되었던 순간이랄까. 지금은 또 살짝 냉소주의자가 되었다네."



마지막 장을 덮고 한 동안 많이 울었다. 그분이 남긴 말씀들이 너무 귀해서, 그리고 내게 주워진 삶이 너무 감사해서..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웃겨주려고 한 이야기였는데, 농담 속에 진실을 말해버렸어.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야... 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중략)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그래서 내가 일관되게 얘기하는 것은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라는 거야. 까마귀 소리나 깜깜한 어둠이나 세계의 끝, 어스름 황혼이 아니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_김지수, 이어령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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