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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더이상의 혁명은 불필요하다

인류가 자신의 힘으로 자연의 힘에 대항하고 생태계를 자신의 필요와 변덕에 종속시킨다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위험한 부작용을 점점 더 많이 초래할지 모른다.  이를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태계를 더더욱 극적으로 조작하는 것인데, 이것은 더더욱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자연 파괴'라 부른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파괴가 아니라 변형이다. 6,500만 년 전, 소행성이 공룡을 쓸어버렸지만, 그럼으로써 포유류가 번성할 길이 열렸다. 오늘날 인류는 많은 종을 멸종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조차 멸종시킬지 모른다.


본문 中



2011년 출간되어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오지 않는 '사피엔스'의 내용은 참으로 방대한데, 그 시작이 참으로 웅장하다. 우주의 빅뱅에서부터 지구의 생명체 출연, 현재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서 '인지혁명'이 일어나 대부분의 종을 제압하고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존재로 생물학 연대기에서 우뚝 서게 된 서사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창 시절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탄생은 인간에게 그 '생각하는 힘'으로 '만물의 영장'될 수밖에 없었던 우월적 지위에 오른 이유를 학습했고 그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 생물학 연대기에 단연코 치명적인 불명예스러운 종이란 사실을 이 책에서 낱낱이 들춰냈다. 사피엔스가 대륙에 도착한 지 2천 년이 지나지 않아 대부분이 멸종되었는데, 북미에서 대형동물 47 속 중 34족이 남미에선 60 속 중 50족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 모든 시초는 사피엔스에게 '인지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책은 공부하는 기분이 들어 허리를 세우게 만든다.  내 나름대로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저자는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이 거대한 수만 년의 역사를 관통하여 인간의 진로를 형성한 것으로 세 가지 대혁명을 제시한다. 바로 약 7만 년 전의 인지혁명, 약 12,000년 전의 농업혁명, 약 500년 전의 과학혁명이다. 과학혁명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역사의 한 부분이고, 농업혁명은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지만, 인지혁명은 여전히 많은 부분 신비에 싸여 있다.


그가 혁명이라 붙일 정도로 지구상의 모든 종을 지배한 인지혁명이란 무엇인가. 사피엔스가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를 지배하고 사육하게 되었던 발단인 '인지혁명'은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를 근거로 빅뱅처럼 아주 우연히 인간의 뇌의 배선이 바뀌게 되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사피엔스는 연약하고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졌다고 추정한다. 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이 일어나면서 대규모 협력을 이룰 수 있었고, 일대일 결투라면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없었겠지만 협력으로 외부의 모든 도전을 이겨냈다고 말한다. 골짜기에 대규모 네안데르탈인의 뼛조각의 발견은 사피엔스의 협력공격의 증거다. 역사 속 전쟁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었던 이유의 원인이 바로 사피엔스 종의 근원에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지혁명은 '허구'를 말할 수 있는 핵심능력을 의미한다.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을 말한다. 허구 덕분에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인지혁명의 풍부한 상상력과 그들이 지어내어 서로 들려주는 신화들은 수많은 종교를 탄생시켰고, 정치, 사회적 연대감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의 산물로 이어졌다.


당연한 지능이라고 생각했던 상상하는 뇌가 인지혁명의 발로였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저자의 진행방식은 놀라움을 넘어서 깨달음이랄까, 빈약한 사료들을 파헤쳐 놀라운 발견을 도출해 내는 능력은 놀랍도록 이성적이어서 빈틈없이 책에 몰입하게 만든다.


저자는 생물학과 역사학을 결합하여 유인원의 최종 승리자인 호모 사피엔스의 연대기를 상세히 다루면서 우리 '호모 사피엔스' 종에 대한 냉철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전장의 승리자가 되어 도취감에 빠진 우리에게 생태학적 가장 치명적인 연쇄살인범임을 부끄럽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정착하여 번성하게 된 또 하나는 '농업혁명'이다.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저자의 해석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배운 교육대로 사피엔스가 농업혁명을 구축해 낸 것이 아니란 점이다.  사피엔스는 약 7만 년 전 중동에 도착했고, 그 후 5만 년 동안 농업 없이 번성했다. 저자는 환경적인 영향에 의해서 정착하게 되었고, 제2의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1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물러가고 온난화 시기가 도래했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비가 많이 내렸다. 새로운 기후는 중동의 밀을 비롯한 곡물에 이상적이었고, 이들은 증식하고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밀을 더 많이 먹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무심코 밀이 퍼지는 데 기여했다. 야생 곡식은 키질을 하고 껍질을 까고 익혀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곡류를 임시 야영지로 가져와서 처리해야 했다.  밀 낟알은 작고 숫자가 아주 많기 때문에, 야영지로 오는 동안 일부는 떨어트리고 잃어버리게 마련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오솔길과 야영장 주위에 점점 더 많은 밀이 자라게 되었다.

(중략)

새로운 농업 영토는 고대 수렵채집인의 것보다 훨씬 더 좁았을 뿐 아니라 훨씬 더 인공적이었다. 수렵채집인은 불을 사용한 것을 제외하면 자신들이 떠도는 땅에 의도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거의 없었다. 이와 달리 농부들은 자신들이 주변 환경에서 힘들여 떼어낸 인공적인 섬에 살았다."



놀라운 해석이고, 당연한 결론인데, 우리는 왜 이렇게 교육받지 않았는지 놀라울 뿐이다. 정착하며 살게 되면서 사피엔스는 풍부한 상상력과 그들이 지어내어 서로 들려주는 신화들로 똘똘 뭉치게 된다. 정착은 소유물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집단적 소통이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농업혁명은 종교혁명을 동반하게 된다.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창조'되지 않았고 진화했다.  또는 분명한 것은 평등하게 진화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수렵채집인들은 채집한 식물과 사냥한 동물과 동등한 지위였지만 농업혁명과 종교혁명이 있으면서 사피엔스는 동식물을 소유하고 조작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소유물들과 협동함으로써 스스로를 격하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협혁명이 미친 최초의 종교적 효과는 동식물을 영혼의 원탁에 앉은 동등한 존재에서 소유물로 끌어내린 점"이라고 하겠다.


불과 물, 태양, 달과 같은 한정된 에너지에서 산업혁명이라는 에너지 전환의 혁명에 이르렀고,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과학과 기술을 한계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인간의 면역계를 이해하려 하고 자연의 힘을 넘어서 생태계를 자신의 필요에 편승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종교혁명, 과학혁명으로 이어지는 사피엔스의 연대기는 자본주의라는 끝없는 물질의 조력에 힘입어 무한정 '신격화(생명공학)' 되어 가고 있다. 인간이 죽지 않는 시대가 올 날도 멀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저자는 자신 있게 소리친다. 더 이상 위험해지기를 중단하라고. 눈먼 진화는 무의미하다고.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내일 아침 지구라는 행성이 터져버린다고 해도 우주는 아마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우리가 아는 바로는 인간의 주관성을 그리워하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점은 요즘 글로벌적으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각국의 이슈로 각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태계 변형이 피부로 와닿는 현실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저자의 우려에 우리가 이제 대답할 차례다.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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