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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철학 수업

자유는 제약이나 구속 대신 필연성과 대립한다



사건이란 어떤 일로 인해 발생한 곡절, 애초의 궤적에서 벗어난 이탈에 대한 긍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고에 많은 인생은 그 사고의 수와 크기만큼 안타깝고 불행하지만, 사건이 많은 삶은 그 사건의 수와 크기만큼 풍요롭고 행복하다. 누구도 뜻밖에 닥쳐오는 일들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것을 사고로 부정하는 이들에겐 삶의 필연적인 불행을 뜻하겠지만, 그것을 사건으로 긍정하는 이들에게 삶의 필연적인 행복을 뜻하는 게 될 것이다.


본문 中




삶의 지혜를 찾는 학문인 '철학'이 대학에서 찬밥신세가 된 지 오래되었다. 한 때 인문학열풍이 불어 희망을 갖긴 했지만 잠시였다. 대학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기업이 원하는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문명의 발달이 주는 편리함에 젖어 우리는 그것이 당연한 시대적 변화라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충분히 사용가능한 물건도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과감히 새것으로 갈아타기를 반복한다. 어느 철학자가 말했듯이 현대는 가히 '속도의 파시즘'이다.


이 책은 '삶, 만남, 능력, 자유와 욕망'이라는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한 뒤 진정 우리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있다. '나'를 이루며 살고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사유함으로써 이제라도 자유로운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들이 원하는' 삶에 휩쓸려 그것이 그들의 욕망인지, 내 욕망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소련이 붕괴되고 자본주의 체제의 완승시대로 돌입되면서 세계는 승승장구 '자본'이 주인이 되는 체제와 경제가 완성되었다. 부자로 잘 사는 것이 인생 최대의 공통된 '욕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점을 지적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달려온 인생의 목표, 욕망이 내가 진정하고 싶어서 하는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 그들의 공통된 삶을 완성하기 위한 욕망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언론들이 하나의 공통된 욕망으로 똘똘 뭉쳐 우리의 진정한 '자유'를 왜곡하는지를.


우리가 생각하는 피상적인 '거창한 자유'는 우리를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로 인도하지만, 우리의 일상적 삶을 인도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저자는 현재 이러한 일원화된 삶을 버리고, 나의 자유를 위해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가 살고자 원하는 삶, 자신이 욕망하는 삶,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을 말이다. 자유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유가 꼭 피를 흘리며 적과 투쟁하듯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동네에는 장애인이 눈에 자주 띄었었다. 그들은 단지 신체가 조금 불편한 이웃주민일 뿐이었다. 같이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깔끔하게 정비된 도로처럼 격리되고 사라져 버렸다. 정상인들만 대접받는 나라로 '속도정치'에 내몰려 그들의 자유를 박탈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장애인단체들이 지하철 출근길 시위로 자유를 외쳐도 언론들은 그들의 불편함을 '왜'라고 묻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시민 불편'에 포커스를 맞출 뿐이다.


이 책은 '자유'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깊게 다루고 있다. "삶, 만남, 능력, 욕망"이라는 영역에서 우리가 진정 자유로운지 반문하고 있다. 사실 초반 책장을 넘기면서 묵직하게 울리는 저자의 질문에 조금 당황하듯 읽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힘들었지만 나의 지난 힘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읽어 내려가니 저자의 의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 '사고'와 '사건'에 대한 해석은 참으로 탁월했다.


내게 다가온 '사건'에 대항하여 삶을 애초의 방향으로 되돌려놓으려 할 때, 그 이전과 이후를 크게 다르지 않게 수습하려 하고 그로 인해 피할 수 없는 행로의 차이를 최소화하려 할 때, 그것은 사건 아닌 '사고'가 된다. 가령 교통사고는 물리학이나 생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노래 한 곡 들은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신체적 변화를 야기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얼른 치료하여 이전의 삶으로 되돌리려 한다. 그것 이전의 삶으로 최대한 되돌아가려 한다. 반면 그로 인한 신체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사고 아닌 사건이 될 것이다.



즉, 뜻밖에 자신에게 닥쳐온 일에 대하여 '사고'로 부정하는 이에겐 삶은 필연적인 불행이 되고, '사건'으로 긍정하며 받아들인 이에겐 필연적인 행복을 준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훌륭한 성공 안에는 훌륭한 실패의 기술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고'라는 고통을 통해 강해지는 사람은 '사고'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닐까.


패럴림픽대회에 참가해 열심히 경기에 참여하는 이들을 떠올리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고통과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용기 내어 대면하면서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새로운 삶의 기회가 열릴 것이다. 자유란 단지 가능한 선택지의 수가 아니라 넘을 수 있는 문턱의 높이에 의해, 문턱을 넘는 능력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이 책은 '자유'에 대한 삶의 시선을 여러 각도로 얘기하고 있다. 내면의 고통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의 자유서부터 제약과 구속으로 힘든 사회제도까지 다양하다. 우리는 약자가 아니다. 위축되고 고통을 피할 때만 권력과 자신의 불행 속의 노예가 될 뿐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자.


자유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결부된 것이다. 삶이나 행동의 방향과 결부된 어떤 힘이나 능력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그럴듯한 선택지의 유혹 앞에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능력이고, 이런저런 제약과 구속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이다. 억압이나 구속은 그 자체로 자유와 반대되는 상태가 아니라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이 가동되는 출발선에 불과하다.




<삶을 위한 철학 수업 _ 이진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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