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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묻지마 사건의 원인이 궁금하다면..

이전에는 '억울하고 분한데 저 놈을 죽여, 말아?'하고 고민하다가 작심을 하고 사고를 쳤다면, 요새는 그런 고민의 단계도 없이 건드리는 순간 발사다. 이런 사건이 2000년대 초반에 비해서 점점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길거리를 걸어가기도,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기도, 누가 툭 하고 치고 지나가면 "이봐요!"라고 하기도 무서운 세상이다. 이렇게 건드리면 바로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병원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본문 中



최근 몇 달 동안 끊이지 않고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나 잔인한 성폭행 보도가 이어져 시민들의 불안이 극에 달아 있다. 말 그대로 재수가 없으면 나도 곧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만연해진 것이다. 예전에는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서 범죄가 일어났다면 이제는 인파가 붐비는 백화점, 사거리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의 범죄행각의 원인이 약물이나 정신질환의 영향 없이 오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발생한 경우도 많아 사회적 충격은 더 크다.


일반적으로 충동 조절의 어려움이 생기는 시기는 노년기로써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억제기능에 이상이 생겨 쉽게 화를 내고 상황판단을 못하는 것이라 알려져 있다. 그래서 노년이 되면 더욱더 완고해지고 짜증과 화를 내는 빈도가 잦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많아진 '묻지 마 사건'의 가해자들은 젊은이가 많은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놀라웠던 점은 현재 사회적 범죄사건 이슈에 대한 고민이 2000년 초기부터 이미 불씨가 켜진 상태란 점이었다. 저자는 신경정신과 전문의로서 대한민국 마음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라는 타이틀로 꽤 심도 있게 이미 책을 출간을 했다. 집필 당시에는 산 끄트머리 불씨였다면 지금은 중턱까지 타오른 상태랄까. 나는 읽는 내내 잿더미로 변한 마우이섬이 곧 우리나라로 겹쳐 떠올라 몸을 떨었다.


정신질환 병명이 있다면 그나마 치료하거나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마음의 체력저하가 불러온 우발적 범죄가 늘어난다면 이 사회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빠르게 올 수 있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상황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나를 건드려서 화가 난 것뿐이라고 항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자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저자는 "선을 넘은 자기 중심주의의 강화"가 부른 참극이라고 말한다. 오직 나를 중심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에 익숙한 채로 성장한 아이(정신적)가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 중심성의 궤도를 벗어날 수 없으니 충동적이고 욱하고 화를 내며, 화를 낸 다음에도 그 행동을 반성하기보다는 원인에 대한 정당한 반응을 했다는 방어적 해명을 하며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발적, 충동적 범죄를 저지른 행동에 대해 시민들은 흥분하며 이유를 빠르게 얻고자 수사기관을 추궁한다. 은둔형 외톨이라서, 게임중독에 빠져서라는 등 이해하기 쉬운 이유를 빨리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또 그들에게 철저한 응징과 법적책임을 짓게 하면 해결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있는 일련의 비슷한 느낌의 사건들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죄인에게 관대하게 죗값을 경감할 수 있는 실력 있는 변호사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부모세대가 그들의 범죄에 동의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 자기 자아의 확장판으로 통제하고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는 자기애가 완벽한 아이로 키웠을 뿐, 성인이 되었을 때 불안한 현실의 타석까지 책임져 주지 못했다.


이기적 부모는 이기적 아이를 만들어낸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무조건 내 아이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내 아이가 잘되기만을 바라면서 반칙을 일삼는다. 그런 부모를 보면서 아이도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겨 그런 방식을 자기의 것으로 내면화한다. 남을 위해서 양보하거나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결국은 더 낫다는 생각에 도달해 보지도, 그런 경험을 몸소 겪어볼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 보니, 뭔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을 환경에 맞추거나 상대방과 관계를 조정하기보다 "여긴 도대체 왜 이래?"라고 분통을 터뜨리며 감정적 반응부터 하게 된다. 여전히 어린아이의 자아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년이 된 아이는 한두 번 도전하지만 쓰디쓴 현실은 실패만 돌아올 뿐이다. 부족한 실력을 쌓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인식은 불편할 뿐이다. 경제성장기에 노력으로 성취 가능했던 경험이 있는 부모세대는 더 이상 도전하지 않고 방구석에 있는 자식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이 모두 범죄자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탈되는 우발적, 충동적 행위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본다면 참을성 결핍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게 될 것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이 왜 문제인가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친구와 나눌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내 주장만 하기보다 양보하거나 상대의 사정을 감안해야 나중에 더 큰 보답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이기적인 아이는 결국 이기적인 부모탓이다. 지금 위태롭게 견디는 청년들의 내면을 불안하다 걱정만 하지 말고 어른으로써 손내밀 기를 바란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는 미약한 정신을 소유한 청년들이 견딜 만큼 편하지 않다. 조직에 들어간 그들은 자기 에너지의 90퍼센트 이상을 소모하고 간신히 10퍼센트 만을 챙긴 채 귀가한다. 저자는 '1인분으로 살아가기도 벅찬' 현실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이 자신만의 동굴을 찾고 마치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기도 하다.


지금 청년들의 삶의 전략은 이전 세대와 많이 다르다. 더 이상 꿈과 희망을 위해 모험을 떠나는 만화 속 주인공으로 살기 어렵다. 밖에서 보면 패기가 없고, 무기력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생존을 위해 불필요한 베팅을 하지 않고, 에너지를 비축하고, 안전 지향적 선택을 하는 것일 뿐이다. 외부 환경이 썩 우호적이지 않기에 일차적으로 생존과 안전을 택한 까닭이다. 그들은 먼 미래를 보면서 지금의 고통을 참기보다 현재의 안위를 걱정하며 땅을 보고 뚜벅뚜벅 걸을 뿐이다. 제발 지쳐 쓰러지지 않은 채 다음 보급지까지 도착하기만을 바라면서.




가슴이 아파온다. 사회는 갈수록 개인의 선택에 책임을 지도록 강요하고 있다. 10퍼센트의 에너지 밖에 없는데 개인의 결정에 무게를 가중시키니 폭발일보 직전인 것이다 다. 모든 사건을 파헤치면 간단한 원인이 있질 않다. 개인마다 정신적 용량을 담을 컵이 있다고 저자는 비유했다. 가득 채워지고 넘치면 폭발하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이 그들의 충동적 팽창에 일조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문제의 원인은 사회에서 찾아야 한다. 작은 자극에도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는 그들이다.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 하지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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