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란 무엇일까요? 순수와 순진은 다릅니다. 순진은 어린 시절에만 간직할 수 있는 단어라면, 순수는 언제나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순수란 소신 있고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잘 알고 있어서 흔들리지 않음을 뜻합니다. 순수란 거짓이 없다는 뜻이고 책임을 질 줄 안다는 뜻입니다. 순수는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순수는 더 가치 있습니다.
-순수는 강하다(영화 '시'). 본문 中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이란 시리즈로 만났던 송정림 씨의 또 다른 에세이집이다. 넉넉해진 시간이 주는 나만의 선물로 책을 고르던 중 송정림 씨의 에세이집이 눈에 잡혔다.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이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책 제목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내 마음을 들킨 것인가. 요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에세이집은 책 속에서, 그림 속에서, 노래 속에서, 영화 속에서, 자연 속에서 삶의 중심을 잡고 일어섰던 여인들의 삶이 있다. 저자는 그녀들의 생의 전성기(화양연화)만을 뽑아냈고, 저자의 생각을 덧부쳐 여운 있게 담아냈다. 총 마흔여덟 편의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읽힌다. 주옥같은 글들이 많다.
제목처럼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인용된 마흔여덟 편의 이야기들은 어느 하나도 똑같은 삶은 없다. 그러기에 똑같은 결론은 없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일관된 질문은 이어지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이야기들(영화, 소설, 드라마, 노래.. 등등) 중에 눈물이 흘리고 가슴이 아파 슬퍼지는 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갔을 때다.
윤정희 씨의 주연이었던 '시'라는 영화가 있다. 오래전에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 혼자 많이 가슴이 아파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서 송정림 씨가 거론을 해줬고 속으로 반가웠다. 그 영화는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손자)의 할머니 입장의 영화였다.
손자와 친구들은 소녀를 자살에 이르게 했지만 괴로워하지 않는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죄의식은커녕 슬퍼하지도 않는다. 손자와 같이 죄를 지은 아이의 부모들은 돈으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죄를 지었지만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 넘어가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 미자 할머니(윤정희)는 사랑하는 손자의 마음에서 순수가 사라져 버린 것을 보고 슬퍼한다.
자살로 떠내려온 소녀는 바로 잃어버린 '순수'였다고 영화는 처음부터 단언한다.
이 세상에서 시는 죽었다고, 순수는 사라졌다고.
다행히 영화는 순수한 미자할머니의 결심과 행동으로 희망을 전하고 끝난다. 요즘 10대들에게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많은 책장을 접었던 만큼 좋은 글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나와 같은 독자들이 곳곳에서 공감대를 찾았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