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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_칼 세이건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

1990년 밸런타인데이에 60억 km 떨어진 명왕성 궤도에서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사진


애플파이를 만드는 데에는 밀가루, 사과, 설탕 조금, 비전泌傳의 양념 조금 그리고 오븐의 열이 필요하다. 파이의 재료는 모조리 설탕이니, 물이니 하는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분자는 다시 원자들로 구성된다. 탄소, 산소, 수소, 그 외의 원자들이 파이의 재료가 되는 분자들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이 원자라는 것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수소를 제외한 나머지 원자들은 모두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고 보니 별이 우주의 부엌인 셈이다.  이 부엌 안에서 수소를 재료로 하여 온갖 종류의 무거운 원소라는 요리들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이다.  별은 주로 수소로 된 성간 기체와 소량의 성간 티끌이 뭉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수소는 대폭발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수소 원자는 코스모스가 비롯된 저 거대한 폭발 속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애플파이를 맨 처음부터 만들려면, 이렇게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별들의 삶과 죽음' 본문 中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영혼은 정말 있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시간이 흘러도 가슴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꿈을 꾼 새벽엔 영혼의 메시지일까, 꿈의 해석을 쫓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에 위로가 되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에 구입했지만 책장에서 세월을 먹고 있던 '코스모스'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서를 미뤘던 것을 후회했다.  특히 '별들의 삶과 죽음'을 읽을 땐 인간의 죽음에 대해 나는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죽겠지만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언제까지나 남아서 지구 어느 곳인가, 더 넓게는 우주 어느 곳인가에서 또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이과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문장의 표현력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자주 놀랐던 것 같다.  빅뱅이 일어나 우주의 탄생 그리고 우리 모두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별이 우주의 부엌'이라는 말로 애플파이를 표현할 과학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글에 감탄하고 다시금 책날개를 살펴보니 칼 세이건은 인문학, 물리학, 천문학 등을 두루 섭렵한 천재다.


칼 세이건은 어려운 천체과학에 대해 알기 쉽게 표현하고 설명함으로써 천체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지지가 끊기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또한 한 순간 뜨거웠다 사라질 위기의 과학이 아닌 지속적인 국가적 지원을 받기 위해 언론을 활용할 줄도 알았다.  태양계를 향해 탐사를 시작한 보이저 1호에 카메라를 탑재해 우주를 촬영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계기는 인류의 큰 동요를 이끌어내어 천체과학의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학창 시절 배웠던 기억과 인문학적 설명이 겹쳐진 이 책을 통해 쉽게 우주를 항해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은 도심 속 조명으로 가리어진 별들이 시골에 가면 밤하늘에 아름답게  펼쳐져 감탄했던 기억의 소환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우리들이 사랑하는 별이야기는 우리가 별에서부터 시작된 인류였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질문을 던진다. 인류는 본능적으로 밤하늘을 그리워했다.  수많은 나라의 국기 안에 별들이 있는 것이 하나의 예다.


현재 우리는 우주로 탐사선이 보내기도 하고 천체를 컴퓨터로 계산할 수 있지만 천체과학의 역사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역사의 순환이랄까. 우리의 과학도 수많은 부침과 역사 속 승자의 손 끝에서 사라졌는데, 칼 세이건은 2,500년 전 과학의 탄생의 전성기였던 이오니아 국가와 이집트의 알렉산더 대왕의 국가 안렉산드리아의 패망을 너무나 아쉬워했다.  책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그들의 잊힌 역사를 들춰내는 것을 보면서 과학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강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과 부속 박물관의 기록물들(세계의 모든 지식이 체계적으로 집대성)이 사라진 것은 과학의 암흑기를 자처한 불행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떠한 기록일지라도 연속성이 주는 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수수께끼로 묻혔던 과학은 16세기 요하네스 케플러(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원이 아닌 '타원'궤도로 돈다는 것을 확인), 아이작 뉴턴(미적분 창시, 만유인력 법칙), 에드먼드 핸리(76년만 다시 혜성이 접근한다는 예측- 2061년이 되면 돌아온다)등 천재적 돌연변이 유전자의 인류 덕분에 다시금 과학의 지평이 넓어지게 된다.


이 시기를 거쳐 드디어 우리 인류는 코스모스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고 달에 아폴로를 보내고, 금성과 화성으로 탐사선을 보내기에 이른다.  과학의 르네상스시기가 도래된 것이다.  이 부분을 지나는 독서에서는 앞전 암흑기와 반대돼서 그런지 신나게 읽었던 것 같다.  또한 내 기억도 새록새록 나면서 '화성'에 인간이 살 수 있을 거란 기대감과 함께 '화성 침공'이란 영화가 꽤 흥행했던 기억도 났다.  하지만 수로가 발달하고 인간이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미국의 NASA 바이킹 탐사선의 전송사진으로 꿈이 깨졌고, 천국이라 믿었던 금성은 늪지도 유전도 탄산수의 바다도 없는 표면 480도의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지옥이었음을 인류는 확인하게 된다.  칼 세이건은 지구의 환경이 지옥과 같은 금성의 현실로 근접할 위험성을 지적한다.  현재 금성의 표면이 처한 상황을 보노라면 화석연료를 지나치게 의존하는 지구에서도 금성의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를 좀 더 소중히 다루어져야 할 존재란 사실을 잊고 산다.


과학의 발전이 있는 만큼 과학은 단념이 빠른 학문 같다.  그 어떠한 확실성이 입증되면 바로 그동안의 논리를 접는 어찌 보면 쿨한 학문인 것이다.  확인된 팩트 위에 다시금 가설과 이론을 형성하고 또다시 진보를 향해 달린다.  수많은 역사와 함께한 과학자들이 집념에 가까운 논리와 검증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우뚝 선 과학이라는 학문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칼 세이건이 요구하는 결론은 지구라는 존재를 다시금 바라보라는 것 같다.  우주의 질서 속에서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인 이 지구를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를 알려주는 것이다. 현재로선 우리가 머물 곳은 지구뿐이란 사실을 확인받았다.  그렇다. 천문학은 겸손한 학문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과학책임에도 문학작품 못지않은 칼 세이건의 문체에 놀랍기 그지없었다.  '코스모스'라는 책을 처음 넘긴 독자라면 칼 세이건의 마음이 새겨진 첫 장의 문구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코스모스 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코스모스를 정관 한다는 것이 미지未知중 미지의 세계로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 당연한 반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책 제목이기도 한 코스모스(cosmos)는 카오스(chaos, 혼돈, 불규칙)와 대치되는 말로써 질서, 규칙성, 우주를 뜻한다. 천체는 은하, 별, 성단, 성운(성간가스와 티끌구름)을 비롯하여 태양계와 같은 수백만 개의 은하에 있는 별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 위성, 혜성, 유성체가 거대한 질서로 움직인다. 코스모스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은 수학적 논증의 끝판왕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공과 같이 둥글다고 추론한 역사상 첫 번째 인물이다. 그는 수학적 논증의 객관성 및 확실성만이 인간지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인지세계라고 말했다.  


뭐랄까.  이 책은 판도라의 상자를 처음 열어본 사람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고, 귀중한 물건과 건들면 안 되는 물건들의 판단을 고백하는 심정이랄까.  그의 떨리고 벅차고 웅장한 기운이 활자로 자주 전달되었다.  이 책은 과학책으로 분류되지만 철학적 비유가 남다르다.  예를 들면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라든가, '별의 자식들'이란 표현들이다.  거대한 우주이야기를 문학적, 철학적으로 쉽게 이해시키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지구가 속해있는 태양계에 대한 설명은 '별들의 삶과 죽음'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공부하는 기분으로 읽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간단히 정리하면 지구는 언젠가 우주 어디선가 일어났던 초신성의 흔적이며 수많은 별들의 죽음으로부터 태어났다.  지구상에서 생명이 탄생한 과정도 엄청나게 재미있다. 태양에서 나오는 자외선 복사가 지구 대기층에 들어와 그곳에 있던 원자와 분자에서 전자를 떼어내면서 대기 중에는 천둥과 번개가 남무 했고, 이 복잡한 유기화합물의 화학반응은 에너지원으로 작용되고 이 과정에서 생명이 태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구의 생명의 근원은 태양이다.  태양 에너지는 다양한 식물을 탄생시켰고 모든 동물(인간포함)들이 식물에 기생하며 살게 되었다.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처럼 유전의 관점인 돌연변이가 유전 형질의 변화를 추동한다.  자연은 돌연변이를 통해서 생명의 새로운 존재양식을 찾아내는 데 고에너지의 우주선입자들이 돌연변이를 촉발시키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의 진화도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광대한 우주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질량의 큰 별들의 극적인 최후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킨다. 즉 우리는 가장 근본적 의미에서 코스모스의 자녀들인 것이다.


빛의 속도로 800억 광년의 거리를 가게 되면 4,000억 개의 은하를 만날 수 있는데, 그중에 먼지만 한 별인 태양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과학시간에 배웠던 수금지화목토천해 행성들이 태양계를 돌고 있는데, 무한한 우주 속 지구는 창백한 점 하나일 뿐이다. 그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한 존재인 셈이다.


보이저 1호가 명왕성을 지날 때 찍은 지구의 모습을 보면서 칼 세이건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진을 보면 참으로 먼지 같은 존재가 바로 지구다.


바로 저곳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입니다.  우주를 뒤덮은 거대한 어둠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지구는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종이 이주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다른 세계에 대한 방문,  현재로선 우리가 머물 곳은 지구뿐입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함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자만심이 어리석음을 더 잘보여 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를 말입니다.



인류가 최적의 상태로 살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인 지구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극단적 이상기후를 우려하고 있다.  지구 평균기온을 1.5도 기준점을 제시한 바 오래되었다. 기준점이 초과될 경우 폭염 일수는 길어지고 폭풍과 산불이 더욱 강해져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재앙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그러한 전조현상이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위기는 단순히 걱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구 생태계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인간의 산업화 활동으로 인해 지구온도는 경고 수준 가까이 접근해 버렸다. 아직까지 우주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적의 행성은 오직 지구뿐이란 사실을 자각했을 때 스스로 자멸하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지금 지구를 걱정하는 건 어린아이들만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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