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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자본주의 체제가 곤두박질치지 않으려면


다시 한번 말하건대 칼 마르크스의 사상은 19세기 유럽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는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밖에 없는" 절대빈곤의 나락에 빠져 있지 않다. 지난 한 세기의 경제. 사회적 변화는 마르크스의 사상과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 세기를 뛰어넘어서까지 인류 문명의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는 것은 그가 추구한 가치이지 그가 선택했던 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자기 수정과 그간의 사회. 경제적 변화를 이유로 그가 추구한 이념적 가치까지도 부정하려는 모든 시도 역시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경제적 평등에 의해 뒷받침되는 자유, 소외되지 않는 노동, 정당한 근로에 의한 소득,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불합리한 관습과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 개인의 자유롭고 전면적인 발전 등 그가 옹호한 "영원한 진리"는 아무리 먼 미래라 할지라도 인류 문명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中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최소한의 기초지식은 있어야 할 것 같아 집어든 책이다. 저자 유시민 씨가 오래전에 집필한 이 책은 경제학적 측면을 부자와 빈민의 관점(지배자와 피지배자)에서 경제학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학자(인물)와 연대별로 풀어줬기 때문에 무엇보다 서양 경제학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저자가 이 책을 출간할 당시 소견을 읽어보면 보통사람이나 학생들은 경제이론 배후에 놓인 철학과 사고방식을 대략적으로 알기 바란다고 쓰여있다.


웬만한 사람들도 다 회자되는 아담 스미드의 '보이지 않는 손'의 시장원리는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이라는 사실을 제일 먼저 깨우치면서 이 책은 시작된다. 그렇게 오래전 사람의 경제학이 현대에도 여전히 거론된다는 사실이 나는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스친다. 영국의 경제학자들의 시초는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실력자들이 많았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역사 속에 수많은 경제학자의 논리가 거론되기에 체계적으로 정리가 솔직히 어렵다. 어차피 공부할 목적이 아니었기에 패스하고 그들의 논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가 궁금했다. 고전경제학파로 분류되는 시대에는 '지주'와 '자본가'그리고 '노동자'가 있었다. 지금은 지주와 자본가가 통일되어 사용되지만 당시에는 그랬다고 한다. 자원배분과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고 최소한의 작은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 아담 스미드를 제외(중립적)하고 그를 계승한 맬서스와 리카도는 지주의 입장과 자본가의 입장에서 경제 현상을 해석했다. 저자는 이들을 "부자"의 입장에 기울어져 경제를 설명했기에 "부자의 경제학"으로 분류했다. 현재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경제학 교과서들은 대부분 부자의 경제학인 신고전학파 경제학과 케인즈 학파의 이론을 주로 다룬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누른 역사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빈민의 경제학"이란 말은 역사적으로 빈민의 편에 서서 경제를 설명한 학자로 인해 나누어지게 되는데 독일 민족주의 경제학자 '리스트'의 등장이 시초다. 당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선진국 영국에게만 유리하다는 판단하에 '보호무역론'을 발표한 것이다. 이후 수많은 빈민경제학자들은 부동산의 불로소득의 조세 및 토지세 부과등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부자들의 횡포를 고발하고 시정하기를 요구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빈민의 경제학은 왜 퇴보하였는지 학습하지 않는다. "부자의 경제학"에 속하는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총수요 측면과 총공급 측면을 종합하여 자신들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지만 "빈민의 경제학"의 경제학자들과 소비에트 경제체제를 살펴보면 이들은 모두 경제 내의 총수요와 총공급 중 어느 특정한 영역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또한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에 입각하여 총공급 측면을 주로 분석하였으나 기술의 진보에 따른 생산량 증대를 간과하였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마르크스의 사상이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은 그의 유토피아적 소망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자유경쟁 자본주의가 그 내적 운동법칙 때문에 필연적으로 거대한 독점자본을 출현하고 있고 그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1870년대에 살았던 마르크스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윤율이 경향적 저하와 신기술의 부단한 도입, 그로 인한 주기적 공항의 도래도 예언했다.


우리는 어찌 되었든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인류는 지금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 노력의 가치는 공동체의 행복이 아닐까. 가난한 노동자의 삶이 무시되고 부자의 삶만을 추구하는 것을 다수가 원하는 삶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자본주의 문제는 빈민의 경제학이론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 유시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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