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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성묘 그리고 산책

조용히 음미하는 시간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 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 조병화




추석에 저희 집에서 차례를 지냈지만 한글날 연휴가 있는 주말에 천안에 있는 큰아이 집에 들렀다가 하루 쉬고 시어머님께 인사드리고 왔습니다.  이제는 당일치기로 먼 거리를 뛰기엔 피로가 쉬이 풀리지 않아 성묘는 이렇게 연휴가 있어야 가능해져 버렸네요.  예전 벌초 때 심어놓은 잔디가 제법 자리를 잡았는지 남편은 이곳저곳을 힘 있게 밟아보며 흡족해하더군요.  추석 성묘객이 한 차례 휩쓸고 간 선산자리는 쓸쓸한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우리는 시어머니가 생전 좋아하시던 치킨을 앞에 두고 절을 올렸습니다.  


묵념을 하고 땅 속에 계시는 시어머님은 어떤 모습일까, 잠시 상상하다 슬픈 마음이 들어 고개를 돌렸습니다.  자연처럼, 우리의 인생살이도 바람 불지 않는 날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인생의 바람 앞에서 좌절하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이렇게 누구나 예외 없이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산다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불필요한 감정으로 소모된 시간들이

부끄럽게 느껴지다 흩어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남은 삶은 좀 의연해져지고 싶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가을정취를 느끼려 계룡산 갑사에 들렸습니다.  조용한 가을을 맞이하기에는 산사처럼 좋은 곳도 없으니까요.  산사와 가까워질수록 조용하고 안정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더군요.  남편의 고향 근처에 있는 절이라 중학교시절엔 소풍을 자주 갔던 곳이었다네요.  


어디든 그렇지만 대웅전까지 가는 길은 행렬하듯 서있는 여러 나무들과 조우하며 인사하는 시간입니다.  몇 년생인지 가늠할 수 없는 고목들의 행렬에 눈이 커지고,  언제 쓰러졌는지 안쓰러운 고사목들을 보다가 그 틈바구니 사이로 열심히 숨을 쉬는 이끼와 작은 가지들을 발견할 땐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졸졸졸 어느 바위틈에서 나오는지 모르지만 작은 새처럼 들리는 물소리의 합주를 들으며 오르니 가슴속에 뭉쳐져 있는 먼지들을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 같더군요.  자연은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주고 경직된 감정을 치유해 주는 곳입니다.


도심이었다면 바닥에 밟히는 은행들이 불쾌한 냄새로 받아들여졌을 텐데 산속에서는 풀냄새와 어우러져일까요, 우리는 진미를 뽐내는 명품요리를 하나씩 떠올리며 웃었습니다.  시장기가 돌았습니다.




산책이 목적이었으므로 우리는 대웅전까지만 오르다 내려왔습니다.  먼 곳으로 힘들게 떠나지 않아도 우리나라 곳곳에 아름답고 편안한 자연이 즐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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