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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3단계

긍정적 노화를 향하여


긍정적 노화란 사랑하고 일하며 어제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배우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다.


- 행복의 조건  中





그동안 우리 부부는 활동과잉이라 할 만큼 직장과 집안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은퇴시기까지 직장생활을 했다.  남편은 아쉬움이 남았는지 연장선상에서 몇 년간 무기계약직을 더 하기로 결정했지만 표정은 밝다.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목표)이란 오로지 성공을 향해 달리도록 세팅되어 있기에, 그동안 우리는 달성되고 나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로를 동반했다.  



게다가 우리 부부는 조직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임감까지 무장한 일꾼으로 떨어지는 오더를 피할 성격들도 못되었다.  집안일도 남편과 내가 서로의 역할만 다를 뿐, 시어머니와 같이 산다는 명제아래 경조사는 물론이고 병시중까지 도맡아야 했다.  항상 뛰어다녔고 넘어졌다.



나는 한 주도 마음 편히 쉬질 못했던 것 같다.  주말이면 남편 와이셔츠, 아이들 교복, 내 남방까지 산떠미였다. 일주일치 시장을 보고 밑반찬을 준비했다.  경조사가 없는 주말을 고맙게 생각할 정도였다.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서로의 피로가 보였고, 서로가 불쌍해 다독이며 퇴근길 술잔이 그나마 유일한 위로였다.  



그러다 은퇴시기가 목전까지 찾아왔는데, 아니 그보다 50십이 넘어서면서 우리는 조금씩 배터리가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맞벌이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이너스 통장잔고는 우울함을 보탰다.  남편과 나는 건강상태가 예전과 다름을 느꼈고, 무엇보다 활발하지 않았다.



딱 그즈음 의사의 처방이 백기를 든 삼일 만에 시어머님은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것을 평소에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우리의 노년대비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한 사람의 생이 끝나고 처참해진 우리의 몸과 마음의 폐허를 바라보면서 재정비가 필요했다.  그게 우선되어야 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경제상황, 미래의 연금 등 모든 것을 남김없이 오픈했고 신뢰를 쌓았고 안심했다.  아이들에게 짐은 되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한 사람 죽음은 남은 가족 삶을 소중하게 바라보게 해 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삼일장의 장례로 가족의 일원은 사라지지만 남은 가족에게는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전폭적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한 태도는 남은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30년 넘게 함께 한 남편은 고난과 고통의 세월을 함께한 결속력 강한 친구였다.  


인간의 삶에는 저마다 독특한 후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다른 후반전이다.  삶의 과정은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항상 고통스럽지도 않다.  단지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여유를 갖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을 90세로 본다면 크게 세 등분으로 나뉠 것이다.  30세까지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자립을 준비하는 시기, 60세까지는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으로 사회에서 삶을 다지는 시기, 이제 남은 30세는 인생을 즐기고 자신을 사랑하는 시기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대략 60세까지의 과정을 고난을 극복하며 무사히 다져온 듯싶다.  이제 30년이 남았는데 또 세분화하면 10-10-10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0년은 부부가 서로 건강한 시기, 10년은 부부 중 한 명이 아프거나 죽는 시기, 남은 10년은 홀로 투병 가며 죽음을 맞이하는 시기일 것이다.



나는 논술시험처럼 남은 삶의 시간들을 10 단위로 쪼개놓고 생각하며 차감하듯 아끼며 살아가려고 한다.  나는 막연한 낙관주의자보다는 오히려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살아보니 삶은 냉정하게 바라볼 때 길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점점 주름이 깊어가고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근육이 조금씩 빠질 테지만 앞으로 10년 이상은 함께 행복하게 건강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늘어나면 그만큼 더 고마운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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