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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들이 불편하다

거리를 두는 이유


우리는 항상 유아기로 거슬러 올라가 한 사람의 역사를 관찰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유아기 때 받았던 인상들이 아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삶의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응답해 나갈 것인지 방향을 미리 가리키기 때문이다.  유아기 때부터 받아 온 압박은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고, 그의 인생관과 세계상의 형성에 원시적인 방법으로라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 아들러의 인간이해 中




나는 셋째 딸로 태어났다.  맏며느리였던 엄마가 세 번째만큼은 실수하지 않으려 삼 년이라는 텀을 두었지만 실패했다는 말씀과 나의 출생을 대한 직접적인 푸념의 기억은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있다.  엄마의 억울함은 사 년 뒤 남동생의 출생으로 막을 내렸지만 맞벌이를 했던 부모님은 동생을 돌봐야 하는 책임을 언니들이 아닌 내게 주워졌다.  당시에는 형제들은 부모처럼 서로를 돌보는 정서였다.  


나는 여자아이로 태어났지만 여자로 취급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은 우울한 그늘로 기억된다.  남자 같은 이름에서부터 상고머리, 치마대신 늘 착용했던 바지까지 어린 시절 사진 속 나의 정체성은 남동생이 태어난 이후에도 부모로부터 오랜 기간 외면당한 증거로 남아있다.  언젠가 여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겠다고 이발소를 도망쳐 공동화장실 담벼락에 숨고 저녁밥까지 굶는 궐기를 하고서야 머리카락을 사수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 다가가면 엄마는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밀어내며 거부하셨다.  나는 엄마가 스킨십이 없는 분으로 믿었다가 동생이 엄마품에 항상 어린 새처럼 안겨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어린 마음에도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이 아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늘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남동생을 미워하진 않았다.  미워하기엔 동생은 너무 연약했다.


언니들은 연년생이라 친구처럼 어울렸지만 나이차이 있고 뚱뚱하며 열등한 나를 끼어주지 않았다.  그녀들의 눈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생각하면 원인제공을 한 엄마 때문이라는 슬픈 마음이 들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돌아가신 분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언니들은 공주였고 동생은 왕자였다.  나를 하녀로 만든 것은 엄마였다.


가정은 작은 사회집단이다.  권력이 있는 엄마가 사랑을 주지 않는 자식은 형제간에도 소외된다.   여자들 틈에 있었지만 동생은 남아선호사상을 등에 업고 안전을 보호받았다.  항상 새 옷이었고 손에는 과자봉지가 들려있었다.  


나는 이쁘게 치장하고 다니는 언니들이 부러웠다.  반면 부모의 뒷배가 든든한 연약한 동생에게는 질투심이 들었다.  샌드위치 아이였던 나는 삶이 참으로 불공정하다는 사실을 이른 나이에 깨달았던 것 같다.  이 불공평한 세상을 벗어나는 일은 결혼밖에 없고 그 시기가 올 때까지는 참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호시탐탐 기회만 보는 죄수처럼 빨리 자라고 싶어 안달이 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기심과 질투심을 구분해서 설명했다.  질투는 상대가 가진 걸 자신이 갖지 못해 슬퍼하는 것이고, 시기심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상대가 가지고 있어서 슬픈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슬퍼하는 초점이 본인의 질투심이라면 나의 능력 미달로 인한 내면의 고통이라 힘들다는 말이다.


내가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까지는 수십 년이 흘러야 했고, 결혼해서 금쪽같은 아이들을 낳았을 때서야 마음속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우선 나의 출생은 내 선택이 아니었으므로 나의 잘못이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어찌 되었든 부모입장에서 기대치 없는 아이라면 내 인생은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했다.  내 삶의 가치는 오로지 내가 결정지을 수 있다는 믿음은 아주 단순한 결론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절박감.  내가 믿는 것은 오로지 독서와 사색이었고 나 스스로 삶을 치유하구원받아야 했다.  


같은 가정에서 자란 형제라 할지라도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환경에 대한 상황을 영리하게 해석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열등한 자식이라면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취하면서 그만의 독특하고 독립된 존재로써 성장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경험했다.  


원인을 제공한 친정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치매의 강에 머물고 계시니 형제들이 수면 위로 나타났다. 어느새 그들도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어 늙어가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란다.  어린 시절 고정된 관념 그대로 성장한 불편한 언니들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엄마의 아집과 아버지의 우유부단함을 고스란히 유전받았다.  객관적이지 못한 논리와 타당성 없는 명분으로 나를 이용하고 제압하려는 행동은 유년시절 모습과 어찌나 변함이 없는지 억지스럽기 짝이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일관되지 못하고 공평하지 않은 애정은 자식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부모는 자식의 성격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요즘 언니들의 자식도 대물림처럼 영향을 받게 될 거란 생각을 하면 업보의 순환고리처럼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유년기로부터 시작해 일정한 행동노선을 유지해 온 그들이 성숙해졌으리란 기대는 과분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 그 아이가 아닌데 언니들은 과거 속 열등한 동생으로 대한다.   단호할 필요성을 느낀다.   부모의 잘못된 훈육의 고통을 내가 받을 이유가 없다.  나는 혈육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남보다 못하다는 걸 느낀다.  무례한 사람은 온정을 베풀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들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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