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청년세대는 상류층보다는 하류층의 삶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지금의 청년들은 경쟁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언젠가 밑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와 두려움을 일상적으로 안고 있다.
- 공정하지 않다 본문 中
가을엔 우물처럼 깊은 하늘을 빨려갈 듯 바라보게 됩니다. 시선을 거둘 즈음엔 언제나 여름을 안으로 품은 감나무가 잡힙니다. 주렁주렁 열려있는 것에 감탄하고 수확을 걱정하지만 어느 날 보면 손이 닿기 힘든 곳의 한 두 개만 위태롭게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매년 같은 풍경입니다. 저 높은 곳에 아슬아슬 남아 있는 감은 햇빛을 많이 받아 더 튼실하고 더 맛나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동네는 감나무도 많지만 주민들이 우호적이라는 것을 아는지 까치도 유난히 많답니다. 아파트를 둘러싼 둘레길을 걷다 보면 까치들도 주민들과 함께 땅 위를 어슬렁거리며 동행하기도 하지요.
집으로 가는 길, 먼 거리에서 아파트 입구에 우뚝 서 있는 감나무를 발견했습니다. 머리 위로 날갯짓 소리가 들리더니 까치가 조준하듯 남은 주홍감 가지에 정확히 착지하더군요. 까치가 다디단 감을 쪼아 먹는 모습을 한참을 재미있게 지켜보다가 사진을 찍었는데, 소리가 거슬렀는지 힐끗 눈길 한 번 주더니 날아가 버립니다.
사실 새들은 욕심 많은 사람처럼 배부르도록 먹지 않습니다. 그래야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기 때문이죠. 저 까치는 자기 몫만큼만 먹고 다른 새들에게 감을 양보하고 간 겁니다. 아침저녁 찬 기운을 느끼고, 나무에 한 두 개만 달린 감을 볼 때면 돌아가신 신영복교수님이 생각납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교수님은 종자로 쓰기 위한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담론을 제시하셨습니다. 남은 감은 위태롭지만 희망입니다. 남겨진 감은 새들의 허기를 달래고 종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인내하는 마음으로 후일을 생각합니다.
길거리를 지나다 신호등에 걸려 건널목에서 대기하다 보면 그 짧은 대기시간에도 많은 배달 오토바이가 정차하는 걸 보게 됩니다. 차로를 두 겹이상으로 채워지는 오토바이 행렬에 행인들은 소리 없이 놀랍니다. 신호가 바뀌면 많던 오토바이들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심심찮게 들리는 오토바이 사고뉴스를 떠올라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목숨을 건 배달이니까요. 저소득층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빈부격차가 악화되었다는 기사들이 오버랩되면서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암울한 현실이 고스란히 비치는 삶의 현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기회의 평등만이 부정의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도덕이라고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이라는 관념이 정착되고 능력주의가 강화된 현실은 어떻습니까. 현실적으로 공평한 기회 제공이 어렵고 능력발휘 여건 자체가 조성이 힘든 저소득층에겐 스스로를 탓하며 굴욕감만 커질 뿐입니다. 이미 우리는 잘 사는 집 아이가 입학시험 준비에도 더 유리하고 합격률도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갈수록 객관의 지평이 좁아지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충격이 고스란히 저소득층의 몫이 되는 세상은 민주주의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자본주의체제에서 완벽한 평등이 어렵더라도 서로가 다른 삶의 영역에서 만날 수 있는 자격조차 주워지지 않는다면 윤리를 논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감 하나 없는 세상은 희망조차 빼앗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