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가을산책은 어디든 좋다

쉽게 얻어지는 결과는 없다



나무는 한 자리에 서서 계절을 여행한다.  모든 유기체가 그렇듯 나무도 물을 품고 있다.  물이 얼어 팽창하면 세포가 터진다.  죽지 않으려면 겨울 여행을 잘해야 한다.  동물은 세포에서 당을 태워 열을 내지만 식물은 다른 방법으로 추위를 견딘다.  겨울이 다가오면 잎에 보내던 수분과 영양분을 끊는다.  그래서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_ 랩 걸(호프 자런 지음) 요약'  中



주말 도로는 차량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것처럼 많아 신호마다 걸렸고 거북이 운행을 했다.  남한산성에 가까워질수록 이 모든 차량들이 가을 정취를 느끼려는 사람들로 대동단결 되었음을 깨달았고 남편과 나는 산 중턱에서 선회를 결정했다.  사실 어디든 가을을 느끼면 되는 일 아닌가.  우리는 산 중턱까지 창 문을 열고 오르며 소나무향을 맡은 것으로 만족하고 율동공원으로 향했다.


율동공원은 자연호수공원을 끼고 데크를 조성해 놔서 산책이나 운동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 공원 주차장도 이미 만차여서 우리는 음식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사장님의 허락으로 그곳에 주차한 뒤에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율동공원은 잔디광장, 놀이터, 자전거도로도 조성되어 있었는데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반나절 가량 쉬러 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행 없는 우리는 호수만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오리 가족들의 자맥질만이 잔잔한 호수에 물결을 일으켰다. 평화로웠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해서 거울 같은 호수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가을 하늘이 파란 것은 공기가 건조해지고 수증기가 적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외선 쪽에 더 가까운 파란빛이 산란이 잘 되니 어느 계절보다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과학의 지식으로 가을 하늘이 유난히 파란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가을의 날씨는 낮에는 쾌청하지만 아침저녁은 기온이 급격이 떨어져 일교차가 크다.  가을나무들은 이에 매서운 겨울이 다가옴을 직감한다.  그들은 겨울을 잘 견뎌야 살 수 있는 생존의 기로에서 과감히 잎에 보내던 수분과 영양분을 끊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영양분을 잃은 나뭇잎은 붉거나 노랗게 변한다.  나무들이 가을의 정취를 선사하려고 그런다며 인간이 오해할 뿐이다.  


나무들에게 겨울을 버틴다는 것은 생존의 힘과 결부된다.  나무는 뿌리가 완전히 안착되는 유형기가 있기까지 햇볕이 아무리 유혹해도 하늘을 향해 몸집을 함부로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어두운 땅 속 어딘가에 있을 물길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려 튼튼하게 골격을 만들고 웬만한 가뭄은 너끈히 이겨 낼 근성을 먼저 키운 뒤 일어설 준비를 한다.  세찬 비바람을 견디고 굳건히 살아있는 성목은 오랜 시간 내공을 쌓은 결과물이란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때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또한 인생에서 정말 좋은 일 또한 순조롭게 찾아오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수많은 담금질 뒤에 딱 그만큼의 성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가을의 정취는 그런 과정을 인정한 뒤에 만끽해도 늦지 않다.


하나의 풍경처럼 조화로웠던 하늘과 호수 그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나무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다웠던 이유를 굳이 찾자면 나는 자연의 조화에 감사한 마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삶이다.  장사하는 집에 오래 주차하기 미안해 우리는 그 정도로 만족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충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은 감 하나는 희망이어야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