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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유감

이제는 소원하지 않는다



비 섞인 바람들이 가을나무에 몇 가닥 붙어있던 나뭇잎들을 마져 밀어내고 있다.  창밖에 바람이 문을 열 때까지 흔들겠다는 기세로 움직인다.


덜컹거리는 창 앞에서 대치하듯 망설이다 문을 열자 기다렸던 공기가 코 안으로 들어온다.  제대로 숨이 쉬어지니 기분이 좋다.  젖은 낙엽처럼 방바닥에 딱 붙어있는 것만이 유일하게 통증을 줄어들었던 감기가 지나갔다.  일주일 만이다.  





한 때는 나도 '감기'에 걸려 결석했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학창 시절이 있었다.  도대체 감기는 어떻게 걸리는 것인지 궁금해할 정도로 나는 강체력의 소유자였다.  나는 건강해서 싫었다.  감기라도 걸려서 엄마가 시키는 일을 핑계 대고 하고 싶지 않았다.  돌림노래처럼 형제들은 수시로 감기에 걸려도 나는 이상하게 건강했다.


맞벌이하던 엄마는 집안일을 대부분 내게 시키셨다.  불만이었지만 거부할 핑계가 없었다.  내가 건강해서 싫었던 이유는 많았지만 술독에 빠져있는 아버지를 건져오는 일을 시키실 땐 끔찍할 만큼 괴로웠다.  무게감을 버티며 부축해야 하는 고단함은 둘째치고 술냄새로 힘들었다.


아버지는 월급을 받으시는 날엔 항상 선작이 있으셨고 집 근처에 도착해서도 곧장 오는 일이 없으셨다.  인적이 드문 버스종점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일은 여간 무서웠던 게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사춘기였다는 사실보다 술 취한 아버지를 케어할 책임만 강요하셨다.  운 좋게 버스에서 내린 아버지를 발견해 달려가도 아버지는 뿌리치며 선술집 문을 여시기 일쑤였고 문 앞에서 한 잔만을 외치는 아버지를 야속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월급봉투에 빈 돈의 출처를 찾는 엄마의 울부짖음은 술 취한 남편뿐이 아닌 술집으로 방관한 나에 대한 원망도 섞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난 내가 다른 형제들처럼 몸이 약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이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감기'라도 좀 걸렸으면 했다.  늦게 오시는 아버지와 함께 내 체력도 불만처럼 쌓여갔다.




산동네 살았던 우리 집은 겨울이면 연탄을 일일이 날라서 겨울을 보냈다.  새끼 끝을 묶어 연탄 두 장을 쌓고 양손에 불끈 쥐어 들고 집까지 날랐다.  힘든 것을 둘째치고 쪽 팔렸다.  행여 친구들이 볼까 손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거의 뛰다시피 했다.  연탄집에 시키면 될 텐데 구두쇠 엄마에겐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찬 바람이 볼을 침으로 찌르듯 아플 즈음이면 광에 연탄이 다 채워졌다.  콧구멍을 더 벌려 바람을 들이켰다. 그렇게 '감기야, 제발 좀 들어와라' 라며 소원했다.  하지만 연탄광이 비워지는 겨울이 지나도록 나는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걸리고 싶어 했던 감기가 중년이 된 후로는 예고도 없이 수시로 찾아온다.  나는 왜 감기만 걸리면 감기에 걸리기를 소원했던 학창 시절이 어이없이 떠오르는가.  그것은 아픈 기억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굴곡이 심한 시기의 기억은 고통의 크기만큼 반복학습하듯 떠오른다고 한다.  


이제는 그 의미 없어진 철부지 기억을 묻어두려 한다.  건강한 체력은 부모의 입장에선 걱정 끼치지 않는 고마운 자식이었을 것이다.  맞벌이로 소홀한 집안일을 도와주는 착한 자식이었을 것이다.  술꾼 남편을 혼자 감당하지 않아 든든한 자식이었을 것이다.  결코 아픈 기억이 아니다.  


이제는 다만 감기에 걸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소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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