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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철학이다

일상의 개방화, 일상의 철학화


한국의 철학계에는 수많은 바깥 철학과 옛 철학이 난무하지만 한국철학자들 스스로 오퍼상과 고물상이라고 자조할 뿐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수록 철학은 소수의 전문가들끼리 나누는 암호와 같이 세상과 단절되고 더욱 소외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에세이 철학'은 굳어진 사고를 풀고, 쉬운 일상어를 가지고 일상의 세계 경험을 대상으로 누구든지 사유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에세이 철학의 가치는 무엇보다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우리의 삶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역동성이 있다.  



에필로그 中



습관적으로 사고하고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삶의 깊은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칸트는 "철학이 없는 삶이 맹목이라면 삶이 없는 철학은 공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 즉 어느 정도 삶의 기반이 유지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올리며 표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개인의 글들이 전파를 통해 배급되면서 자유로운 글쓰기, 소통이 활발해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소통흐름에 동반하여 저자는 고급 교양 같은 철학의 이미지를 벗고 일상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문제의식, 비판의식을 편안하게 토론하고 철학적인 사고를 공유할 수 있는 '에세이 철학'을 내놨다.  


알고 보니 이 책은 10여 년간 SNS나 인터넷 신문, 잡지등에 실렸던 글들을 손을 보아 책으로 엮은 것이었다.  오랜 세월의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깔끔해서 놀랐다.  무엇보다 글들이 기존 서양철학책들과 달리 읽기 어렵지 않고 쉬운 일상어를 사용해서 좋았다.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철학적 사고의 편안함이랄까.


저자가 바라는 일상의 철학화는 매일같이 시청하는 뉴스의 사회면처럼 근접해서 다뤄지고 있었고, 시선의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문제를 다루는 면에서는 단호하고 엄격한 잣대를 요구해서 통쾌했다.  확신에 찬 저자의 글은 삶의 연륜과 학자로서의 독서량과 비례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일상에서 느끼며 다루는 문제로 시작해, 영화, 사회, 정치, 글쓰기, 역사, 대학, 교육등 대한민국의 총체적 문제들까지 구석구석 훑어 냈다.  방대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치밀하게 문제를 꼬집으며 피해 가지 않고 해결책과 대안을 제시했다.  철학은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는 학문이 아니란 사실이 좋았다.

다룬 내용이 방대한데, 개인적으로 철학을 접목하며 좋았던 부분은 사회, 영화, 역사 부문이었다.


먼저, 고령화와 저출생에 대한 암담한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하여 저자는 사회 일원으로서의 자세와 태도는 물론 해답도 제시했다.  뉴스 보도를 보더라도 2021년 전국 대학의 입학정원보다 신입생 수가 부족한 결과가 나왔다.  해가 갈수록 입학생 수는 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학령인구 감소는 지방대학의 통폐합 또는 폐교 수순을 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출산의 문제를 더 이상 개인의 책임으로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요지다.  국가와 사회의 획기적인 인식전환과 함께 전폭적인 대책과 책임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일상이 사회면을 다룬 것이라면 문화면은 영화일 것이다.  한국인의 여가가 '여행과 여행'이 아니던가.  영화는 한 시대를 풍미하기 때문에 토론주제로 부담 없다.  내가 본 영화 '암살'이 거론돼서 기뻤다.  우리나라 독립투사들은 지금도 대부분 못 산다.  반면 친일 쪽에 붙어 기생하던 부역자들은 떵떵거리며 잘 산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부끄러운 역사의 사건 속 영화 '암살'은 저자의 말 그대로 통쾌하지만 씁쓸한 영화다.  


나는 그 영화의 한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해방 후 경찰 간부 행세를 하던 염석진이 '반민특위 법정'에서 변절 행각에 대한 심판을 받지만 증거부족으로 풀려날 때도 화가 나지 않았다.  법정은 진실공방을 다투는 곳이다.  증거가 부족하다면 풀려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법정을 나와 시장통 구석에서 안옥윤의 총구에서 자백을 하는 장면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광복이 될 줄 몰랐다'라고 했다.  36년이란 일제강점기가 길었다 하지만 변절자는 광복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니.. 독립투사들은 독립조국을 의심하지 않았고 아낌없이 몸을 바쳤다.  투사와 변절자는 그 한끝 차이나는 믿음으로 민족을 택하기도 친일을 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최근대사는 중요한 격변기마다 어정쩡하게 과거를 처리하지 못하고 미래를 맞이하다 보니 역사학에 민족의 주체성과 자긍심을 담아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버젓이 친일파들이 넓게 포진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역사청산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저자는 이에 다른 제안을 펼친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이데올로기 싸움에 그칠 뿐 계급과 자본에 포섭된 영역은 좌우가 거의 비슷하게 공유를 하고 있다.  진보적 의식을 갖고 있지만 부와 불평등이나 그 밖의 여러 부분에서는 진보와 보수 간에 별 차이가 없다는 비판도 크다.  따라서 좌우가 공유하는 계급과 경제 영역에서의 정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뛰어난 유전자를 믿는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일본의 항복으로 얻은 광복에는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남북전쟁 후 미국의 개입으로 한순간에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지만 1960년 4.19 혁명,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 민주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혁명까지 근세사 속에서 민주주의와 주권이라는 정직한 대가를 요구한 시민혁명은 몸에 새겨진 경험이란 점이다. 민주주의는 법치를 따르고 합리와 정의를 요구하는 일관된 개혁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를 체험한 시민인 만큼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그만큼씩 키워나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집단지성이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군집의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과 정보, 지식이 공유되면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내고 강한 대중성을 띤다.  국가 경쟁력은 성숙하고 똑똑한 시민들의 힘에 의해 발전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스스로 계몽하고 발전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러한 흐름 속에 일상의 철학화는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삶을 이끌어 줄 것이다.  우리는 강한 민족임을 잊지 말자.



<일상이 철학이다 / 이종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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