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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익숙함에서 벗어나라


그들이 당신에게 전문성을 강요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로만 당신을 평가하려 한다고 해서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그것이 전부인양 맹목적으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  사회와 국가는 당신의 영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회와 국가는 오직 당신의 노동력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노동자로 살기 위해 이곳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작가 채사장의 '열한 계단'이란 책이다.  이 책은 작가의 지적인 성장에 있어 내면에 균열을 일으켰던 사건(스토리)과 함께 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총 열한 계단의 인문학적 질문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깊은 우물 밖으로 힘겹게 나온 과정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 그간의 그의 책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고, 읽으면서 나를 다시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혹시 아직도 읽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면 놓치지 마시고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어려서부터 자기 밥벌이는 하며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부모의 행동에서 진리처럼 받아들여졌고, 규범의 사회에 던져져서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삶이 효과를 봄으로써 모범답안처럼 확신에 이르렀다.  


하지만 인간은 자본주의체제가 원하는 삶에 맞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회의감에 몸서리를 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내면의 충만함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원하는 전문성은 갖춰졌을지 모르지만 성장을 멈춘 노동자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저자는 '불편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뒷걸음치는 듯한 인생을 느끼는 것은 외부의 자극이 없기 때문이고, 자기만의 우물 속에 갇혀 있어서다.  노동에 저항해야 한다.  여행자가 되어 사회가 국가가 종교가 요구하는 의무와 평가에 등을 돌려야만 주체적인 나로서 존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맞다.  우리는 교육과 관습, 규범에 지나치게 얽매여 산다.  그것이 진리라 믿고 싶어 한다.  그래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눈을 떴지만 한 곳만 바라보는 경주마와 다를 게 없는 삶이다.  이 책은 우리의 사고에 망치를 든 책이다.


'열한 계단'이란 이 책을 통해 나는 그가 걸어왔던 불편한 생각들과 동행했다.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던 그가 '죄와 벌'이라는 문학책을 읽고 비범한 인간이 세상을 변모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그에게 구원은 문학뿐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면서 첫 번째 계단이 시작한다.


'죄와 벌'은 문학작품으로 대부분 읽은 책이다.  나는 중학생시절 읽었는데 비범한 인간과 평범한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비범한 인간이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악한 수단을 저지르더라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논리는 타당한가, 도서관에서 혼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이제는 그 고민의 허점을 잘 알고 있다.  피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비범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과  평범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비범한 일인지도 안다.  하지만 이러한 청춘의 고민은 청춘이기에 아름답고 또 다른 계단으로 오르는 불편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작가의 불편한 계단은 문학의 첫 경험 이후 종교, 철학, 과학, 역사, 미스터리까지 표류하지 않고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의 첫 번째 계단이 문학이었듯이 우리의 아이들이 삶에도 저항을 깨닫는 시작이 문학이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결론 없는 문학은 질문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의 불편한 삶의 질문은 삶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을 넘어서 초월까지 진출한다.  대단한 독서가란 생각이 든다.  한 권의 책 안에 이렇게 다양한 사유가 담겨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불편한 독서는 삶을 한층 끌어올리는 정반합의 과정이다.  자신이 믿고 있던 내면이 '정(正)'이라면 그와 모순되어 대치하는 '반(反)'의 독서로 위기가 오지만, 그 위기를 딛고 올라서면 '정'도 아니고 '반'도 아닌 새로운 정신으로 성숙하는 '합'을 이루게 되며, 그 합은 다음 계단을 위한 '정'이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죄와 벌'에서 주인공이 구원을 받았던 종교의 시작으로 인해 기독교, 불교의 탐구로 이어진 뒤 철학과 과학, 역사, 사후세계로 추진력 있게 독서를 이어간다.  역시나 니체와 헤겔이 빠짐없이 등장했고 그의 철학에 대한 고찰이 심도 있게 이어졌다.  그리고 논란이 될 불편한 종교얘기는 믿음이 확실한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상상하며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죽음 이후의 세계 분야인 미스터리 서가까지 진출한다.  


수많은 종교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에서 하나같이 죽음이전까지만 자신 있게 서술하는데 반해 저자가 끄집어낸 '티베트 사자의 서'이야기는 낯설지만 굉장히 흥미로웠던 시간을 갖는다.  '티베트 사자의 서'라고 불리는 이 서적은 칼 융이 '가장 차원 높은 정신과학'이라고까지 칭송하기도 했다.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이해되는 책으로써 죽은 사람이 깨달음을 통해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하는 방법론을 서술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고 기회가 되면 좀 더 심도 있게 읽을 계획이 있다.


임사실험을 통해 인터뷰한 내용이 있는 책들을 종합해 보면 자신이 믿는 종교에 따라 보이는 환영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곤 하는 데, 이 '티베트 사자의 서'를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이 나는 흥미로웠다.  즉 죽음 이후의 세계는 마음의 환영이란 것이다.  나의 의식은 본래 텅 비어 있고, 색도 없는 빛이다.  선과 악의 형상이 나의 내면에서 비롯되어 천국과 지옥이 나의 머릿속에서 펼쳐진다는 내용으로 자신과 우주의 경계가 모호한 초인, 범아일여(梵我一如)다.  결국 초월까지 다다라서야 계단 끝이 보였다.


현실에만 안주하는 사람이 있다.  또는 현실 너머의 삶에 매달려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진리의 깨달음은 선체험이 우선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어떤 사람이 풍부하게 해석하는 것은 삶의 고통과 다채로움과 복잡성을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깨달음과 깨부숨의 반복을 통해 내면의 지평이 넓은 사람만이 느끼는 행복이다.  결론,  성장하려면 불편한 책을 읽어야 한다.



"불편함은 설렌다. 어떤 책 속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방금 새로운 대륙에 도착했다는 존재론적 신호다. 이제 기존의 세계는 해체될 것이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 더 높은 단계에서 나의 세계가 재구성될 것이다. 하나의 계단을 더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불편함을 권한다"



<열한 계단 / 채사장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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