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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회학

쇠퇴의 필연앞에 선 중년



조정자가 어려운 것은 외줄을 타는 광대와 같다는 것이다.  균형을 잡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조금만 치우쳐도 반대편의 억센 줄 흔듬으로 자신을 유지하기에 급급해지다가 결국은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양쪽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독재자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들이 대학과제로 읽고 책장에 꽂아두었던 오래된 책이다.  벌써 10년이 넘은 것 같다.  '중년의 사회학'이란 이 책에서는 386세대와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사회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요즘은 많아야 두 명 정도의 자식을 두지만 그 당시는 대부분 집안에 형제가 많았다.  현재 기준으로 본다면 정년퇴임을 해서 자영업을 하거나 최고 임원층에 있을 즈음의 나이대다.  격동의 시대를 거쳤고 수많은 변혁과정을 겪은 지금의 그들은 철저한 자본시장으로 변모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까 생각하며 읽게 된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더미에서 일어선 경제성장의 주역은 바로 386세대였다.  사회의 구축이었던 그들에 대한 진단이 현재의 우리들이 너무나 소홀했다는 미안함이 이 책을 탄생시키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주역이면서도 주목을 덜 받아온 세대인 한국중년의 생애사를 사회학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전쟁직후에 태어난 베이비붐세대인 그들은 한국사회의 격동기를 모두 체험한 말 그대로 혼돈의 세대를 거쳤다.  정치변혁기를 맞아 지식인의 상징이었던 대학생 데모로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고,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평생직장이라고 믿었던 곳에서 IMF 외환위기로 거리로 내몰렸다.  구조조정이라는 매서운 칼바람을 경험한 것이다.  


경제적 기반을 미쳐 확립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교육비 부담이 가장 큰 생애주기에 미래대비 없이 실업의 위기를 맞았던 그들의 고충을 우리는 기억 저만치로 밀어버렸다.  이렇게 급격한 사회적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그들은 전통과 근대, 그리고 탈근대의 공존으로 인한 혼란을 겪었고 이념 대립과 같은 사회적 간극의 확대로 불안을 몸으로 체험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들은 편안한가.  아니다.  사회는 그들에게 시대적 간극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민주화가 정착되었지만 오히려 세대 간 갈등이 커지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와 젊은 대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역할을 그들에게 모두 전가시키는 것은 억지다.  균형의 조정자가 된 그들은 외줄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에 본인의 가치관과 시대적 변화 속에서 갈등하고 쇠퇴하고 있는 연장자일 뿐이다.  어느 날 돌아보니 그들은 진화를 멈춘 독재자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리어왕에는 이런 글이 있다.  노인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건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감수하기 때문이라고.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기억 저편의 자리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삶의 우울을 우리는 이해해줘야한다.  


더 이상의 진화를 멈추고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그들에게 지혜로운 처방전은 없는 것일까.  '쇠퇴하는 아저씨 사회의 처방전'의 저자 야마구치 슈의 책을 읽어보면 '쇠퇴의 필연'이란 글이 있다.  조직의 리더는 구조적으로 시간이 경과하면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의 책에서 제시하는 386세대와 베이비붐세대의 역할이 좋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제 그들의 시대는 쇠퇴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모두 청산하면 되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  우리가 살아있는 존재의 근원은 부모세대로부터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얽혀있는 복잡한 사회적 문제들은 어쩌면 그들의 이해서부터 시작해야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이 원하는 지배형 리더십과 다짐받고 싶어 하는 꼰대형 리더는 외면받는 시대란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옳다.  


현장에서의 경험이 존중받고 싶어 하는 그들의 욕구가 충족되려면 열정을 무기로 새 시대를 여는 실학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권력을 내세우지 않는 서번트 리더십이 필요하다.  즉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리더십이다.  영화 '인턴'을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조직에서 지위는 실적이나 능력과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만이 잊히기 두려워하는 그들이 선택해야 할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중년의 사회학 / 정성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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