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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무용함에 가치를 찾는 삶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 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


..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서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밀란 쿤데라의 신작 '무의미의 축제'를 읽다 보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던 시간으로 복귀된 기분이었다. 뭔지 모를 이야기를 쭉 열거해 놓지만(그것은 작고 하찮은 것들이라고 치부해도 좋을만한) 독서가 진행될수록 작가의 의도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제껏 벌어졌던 모든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되고 의미심장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무의미의 축제'란 제목에서 풍기는 의도가 그것을 의미한다.  누구에겐 큰 걱정과 상념이 다른 이에겐 하찮은 걱정으로 치부되는 관념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걱정의 당사자는 간절한 현실의 사색이다.  누군가에는 무의미한 생각이 걱정하는 이에게는 삶의 본질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중의 하나인 '알랭'의 '배꼽'에 대한 집착이 그렇다.  그는 배꼽티를 입은 여성들과 마주친 후 배꼽이야말로 이 시대, 남자를 유혹하는 힘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생각이 깊어지고 이는 어릴 적 자기를 낳고 단 한 번만 본인과 마주쳤던 엄마에 대한 막연한 의식의 발로라 결론을 짓는다.  삶의 허무성, 자신이 사과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점을 찾아내고 과거와의 엄마와 대화를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소설 속에는 다섯 주인공 외에 많은 부분 스탈린과 칼리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자고새 스물네 마리 이야기는 하나의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넘어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시대의 무거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전립선 문제로 쩔쩔매는 칼리닌을 향해 퍼붓는 박수와 찬사(진실보다 보이는 가벼움에 대한 찬양)를 통해 무의미한 인간이 가장 중요한 인간임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라몽이 언급한 친구 카클리크에서 현실로 비유되는데, 그럴싸한 남자(바람둥이)보다 그냥 보잘것없는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는 상황과 일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의 결론은 마지막 장면에 집결되어 요약돼 있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는 그것은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항상 언제나 우리의 곁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하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방송매체와 신문들에서 거론되는 화두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무의미했던 본질이 의미로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매체는 심각하게 거론하고 어떤 매체는 쉽게 다룬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일들이 존재감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 의미에는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저울질된다.




<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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