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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나이듦에 대한 지적 탐구


어떤 사람에게는 나이 듦이란 후회, 걱정, 인색, 빈곤을 뜻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에게 나이 듦이란 자발적인 봉사, 깊은 이해, 조언, 제공하기, 재발견, 용서, 그리고 점점 잦아지는 건망증일지도 모른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나이 듦이란 은퇴와 증여, 그리고 당연히 과거의 저축 및 소비와도 연관이 있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이란 제목을 읽을 때, 나는 얼마나 정의로운 화두인가 생각 다.  이 정의로운 화두를 이끄는 책의 내용은 세계 100대 지성으로 꼽히는 '마사 누스바움'과 경제 전문가인 '솔 레브모어(시카고대 로스쿨  전 학장)'의 에세이(대화)로 엮고 있다.


서두에 '지혜롭게 나이 들기 위한 지적 여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만큼 죽음을 다루지는 않는다.  나이 듦에 있어 준비해야 하는 것들(경제적, 다짐, 철학, 윤리관 등)을 전반적으로 거론하며 인생 후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지적 고민들을 두 학자의 전문분야를 한껏 살려 철학과 경제(현실)라는 측면에서 다양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솔직히 지루하고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두 거장의 대화는 한평생 다뤘던 지식의 깊이만큼 경제적, 학문적 접근법이 달리한 사안에 대해서도 치우치지 않는 팽팽한 시소 같다는 느낌을 받게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교합점을 찾아가는 시간은 참으로 유익했다.


이 책의 주제들은 인생 후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들을 논리적으로 다룬다.  그 8번의 지적 대화들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내용들이다.  


1. 나이 듦과 우정(왜 나이 들수록 우정이 중요한가)

2. 나이 들어가는 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3. 지난날을 돌아보며(회고적 감정의 의미)

4. 리어왕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5. 적절한 은퇴 시기를 생각한다(언제까지 일해야 바람직한가)

6. 중년 이후의 사랑

7. 노년의 빈곤과 불평등에 관하여(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8. 무엇을 남길 것인가



우리의 삶은 긍정적인 마인드와 착한 마음씨만으로 살기엔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  이제 노년의 삶은 의학발달로 인하여 자식들과 같이 늙어가는 시대가 되었다.  다시 한번 인생을 잘게 나누어 생각하지 않으면 곤란하게 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들은 대부분 퇴직 후 임금절벽의 경험은 물론이고 노후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많은 것도 아니다.  솔직하게 이제라도 자식들에게 부모의 고단함을 이해시키고 스스로 자립하도록 돕는 게 옳다.  또한 노년의 빈곤과 불평등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반의 고민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크다.


반면 돈 많은 노인들은 고민이 없을까.  두 학자는 '리어왕'을 회자시키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녀들에게 어떻게 공평하게 유산을 나눠줄 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노년의 부모와 좋은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도 실용적으로 제시한다.  법률적인 제안(자식들이 싸우지 않도록)을 유언장으로 남기는 방법은 꽤 지혜롭다고 느낀 부분이었다.  어디 유산뿐일까.  나는 웰다잉을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본인 스스로 미리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 과거를 향하는 여러 가지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은 유용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더 늦기 전에 존경하는 어른의 기준은 무엇인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나도 이제 중년이 되고 보니 내 운명은 어떤 경로의 경험이든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란 생각이 든다.  자아성찰은 가치 있는 일이며 완전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지혜로운 노년은 어떤 모습인가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회고적 감정들을 통해 내가 과거에 했던 행동들을 되새기고 가치 있었는가에 대한 판단의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우리가 여러 노년층을 보지만 존경하는 어른은 그러한 가치 있는 회고적 시간을 보낸 사람에 한정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노인을 존경하진 않는다.  우리는 매끈한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노인보다 주름살 뒤에 감춰진 인격이 흥미롭고 눈동자가 반짝이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것이다.


아무리 100세 장수시대라 할지라도 은퇴, 건강, 경제권약화, 배우자 사별까지 막을 수는 없다.  허탈감을 최소화하려면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고 마지막까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잘 자라면 다른 사람을 어떤 목적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알게 된다. 아이들이 교육을 정말 잘 받으면서 자랄 경우 그들은 자신과 아주 가까운 가족 및 친구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 전반의 대의에 대한 생각도 하면서 일련의 귀중한 책임들을 형성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우리 모두 두 번째 아동기에 들어선다. 이 시기에는 자아의 절박한 요구와 육체의 본능적 요구가 그동안 형성했던 좋은 습관들을 방해하고, 우리를 넓은 세상의 가치와 멀어지게 만든다. 우리는 이와 같은 도덕적 위험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최선을 다해 그 위험과 맞서 싸워야 한다. 되도록 품위와 유머와 겸손을 보여주면서.




노년기에 이타성을 발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유머감각이라고 한다.  키케로가 카토와 오랜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저자들은 '유머'와 '험담'라 추측한 것처럼.  평소에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자제력, 운동, 식생활, 독서, 대화, 우정을 통해 내 안에 탑재되도록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두 석학들은 날마다 하는 좋은 운동이라 비유했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 마사 누스바움, 솔 레브모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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