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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마주할 용기

남편의 관상동맥 스탠트시술


나는 당신이 얼마든지 불행을 동기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보다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생각한다.  희망이 없다, 운이 없다, 는 식의 말로 희망과 운을 하루하루 점치지 말라.  희망은 불행에 대한 반사작용과 같은 것이다.  불행이 있다면, 거기 반드시 희망도 함께 있다.  부디 나보다 훨씬 따뜻하고 성숙한 방식으로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며 함께 내일을 모색해 나갈 수 있는 어른이 되길.  그리고 행복하길.



- 살고 싶다는 농담  中



지난 금요일 남편은 관상동맥 스탠트 시술을 받았습니다.  당일 이른 시간 입원 수속을 밟았고 무사히 시술이 끝나 여섯 시간 경과를 본 뒤 당일 퇴원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남편의 건강검진 진단결과에 '관상동맥협착증' 수치가 높게 나와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유난히 수치가 높게 나와 서울아산병원에 정밀검진을 받는 것으로 예약을 했었습니다.


사실, 남편이 퇴직을 앞두고 2018년에 '심방세동(부정맥)'치료를 받은 경력도 있어서 마음 한편에 걱정주머니가 늘 있던 형편이었어요.  당시 100미터 달리기 한 사람처럼 며칠을 땀을 흘린 적이 있었는데, 심장에 과도한 무리가 간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약물치료로 잠잠했는데, 올해 건강검진서 결과에 정밀진단을 받으라고까지 지적을 받으니 아무래도 그냥 넘기면 안 되겠더군요.


그래서 지난 11월에 관상동맥조영술을 받았는데 '무증상 심근허혈'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증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데 심장을 향하고 있는 동맥이 사진으로 보니 흐릿했습니다.  의사는 스탠트시술을 권했고, 의논 끝에 시술을 결정했습니다.  마음의 결정을 했지만 남편은 시술일이 다가올수록 긴장하는 눈치가 역력했습니다.





시술 당일날, 제가 선뜻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않자 간호사는 당일 스탠트시술 환자가 30~40명이 될 정도고 기계적으로 할 정도라며 전문성을 믿고 걱정 말라고는 했지만 보호자를 안심시키는 말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시술과 수술에는 불의의 사고도 내포되어 있기에 서약서 사인을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긴장되는 일임에는 분명할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사히 시술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 서두른 탓인지 눈꺼풀이 서서히 무너지더군요.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 의자에 기대 눈을 잠시 감았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결에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려 화들짝 눈을 떴습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나 중환자실에서 남편을 잃은 어느 여인의 격한 울음소리였습니다.  가슴속 동굴에서부터 찢겨 나오는 복받침이 울음으로 뒤바뀐 슬픔이란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습니다.  그녀를 달래는 친구들, 장례식장을 갑자기 걱정해야 하는 아들의 웅얼거림,  자책과 함께 들리는 그녀의 울음은 짧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짐작되는 타격감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지더군요.  제 눈물은 작년 친정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상기였고 남편의 시술이 혹여 잘못될까 하는 두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술이 완료될 때까지 문 앞을 지키려 했던 각오도 잊은 채 참을 수 없는 괴로움에 도망치듯 병원 밖으로 향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병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좀 더 살 수 있었을 거라는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삶에서 죽음은 불행과도 같지만 치명적으로 함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삶에서 분리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우리는 언젠가 동일하게 삶을 종료할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두 손잡고 똑같은 날짜에 죽을 수도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불행을 인정하는 삶의 태도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 생각이 바로잡혀야 주체적인 자신의 삶을 이끌 힘이 나오니까요.



몇 시간이 흐르고 간호사님의 전화를 받고 보호자대기실로 올라갔을 때는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남편을 만났고 결과적으로 시술은 잘 끝나있었습니다.  남편은 시술 도중 잠깐 쇼크가 왔었는데, 가족 생각해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는 후일담을 듣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군요.  역시 남편은 단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소중한 마음은 사랑의 감동입니다.  올해 환갑인 남편은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살겠다고 다짐까지 해주네요.  



불행은 창 밖의 눈과 바람입니다.  우리는 내 삶에 언제든 닥칠 창 밖의 눈과 바람이라는 불행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문명의 혜택을 받으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남편 스탠트 시술을 결정하기까지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기건강검진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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