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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이해의 다른 이름

오래된 친구들에게서 마주하는 나





한 소녀가 창턱에 엎드려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밖에는 소녀가 아끼던 강아지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소녀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여 한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가 황급히 소녀를 다른 창문으로 이끌었다.  그 창문 밖에는 할아버지가 평소 심혈을 기울여 가꾼 장미 정원이 있었다.  


아름다운 장미를 보고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는 동안 소녀는 조금씩 슬픔을 잊고 다시금 원래의 명랑한 모습을 회복했다.  할아버지는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얘야, 너는 잘못된 창문을 열었던 거란다."


- 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 놓아주는 법 내려놓는 법 中





제겐 한 해가 저물기 전에 한 번쯤은 꼭 얼굴을 마주 보자고 약속한 오랜 친구들이 몇 명 있습니다.  각자의 삶에서 뺄 수 있는 시간이 12월이란 걸 수용한 뒤로는 군말 없이 모두들 약속을 지키고 있는데, 일 년 치보따리를 풀어놓기에 하루 만남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선에서 타협점을 찾은 것도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만큼은 가벼운 수다로 일상을 마음껏 흩트려놓는 해방감이랄까.  그것이 소문의 근원이 되지 않는 편한 친구라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요.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나를 되돌아보는 즐거운 시간이니까요.


제한된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상대와 자신의 시간을 안배하려는 노력을 하며 배려하고 대화에 참여하는 몰입도가 최고에 달합니다.  식당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을 꽉 채워 눈치 보듯 일어나고, 커피숖의 순례까지 이어져도 완벽히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남긴 채 우리는 한 해동안 눌러있던 삶을 정리하고 헤어집니다.


살면서 가족 외에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솔직하게 토로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마음의 큰 재산 같다는 생각이 갈수록 깊어갑니다.  같은 연령대인 친구들은 비슷한 환경으로 시작했지만 각자의 성향과 가치관의 차이로 확연히 다른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매년 신기하게 느낍니다.  


오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친구가 바라보는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으로 비치는 나의 성격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 점은 나도 몰랐던 나의 성격이기도 합니다.  서로가 진심으로 고민하며 조언하는 이야기이기에 제대로 나라는 존재를 거울로 보는 듯한 시간이기도 하지요.  올 해도 어김없이 일 년치 이야기를 서로 배틀하듯 러프하게 기승전결로 이어졌고 내 순서가 끝나자 친구가 불쑥 그러더군요.


"넌 항상 사건의 중심에서 일을 만드는 것 같아.  하지 마! 너만 힘들잖아! "


일을 만들어?  저는 늘 사건을 해체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사건의 중심에 있다는 친구의 말은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사건이란 자신의 삶이 바뀌게 되는 계기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건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의 발생이기에 나의 원인은 아닙니다.  내가 힘든 이유는 사건의 발생에 대한 책임감, 해결하려는 고민과 내적 갈등으로 인한 불안감과 슬픈 감정, 그로 인한 피로감과 스트레스이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조언에 순간 발끈하는 짜증이 일었지만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라는 표현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전화통화나 문자로 전달받았다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을 말이었죠.  친구의 걱정 어린 눈빛과 따뜻한 손의 온기가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삶은 회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봉책은 해결책이 아니며 결코 자유로운 감정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서두를 필요도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어떤 형태로든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까지 미루고 회피해서 얻을 죄책감과 마음의 족쇄에는 자유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많은 순간을 '잘못된 창문'을 열어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창문을 잘못 열 수 있지만 닫으려는 노력도 본인만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괴롭고 질식할 것 같은 위기의 순간의 절실한 도우미는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볼지, 어디를 향할지 모두 내 손에 달려 있으니까요.  슬픔과 괴로움에서 하루빨리 기운을 차려 있는 힘껏 창문을 닫고 이쁜 꽃밭의 창문을 열도록 해야 하겠지요.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친구들입니다.  나를 걱정해 주고 자유로운 여유가 찾아오길 기다려주는 친구들에게 미련 없는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아무런 아쉬움이 남지 않게 하는 것도 내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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