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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활짝 핀 꽃은 계속해서 핀다

시아버님 기제사와 내 생일

일단 한번 활짝 핀 꽃은 영원히 계속해서 어디선가 꽃을 피운다는 것을

우리가 모른 척 내버려 두지만 않는다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이 기억하면 당신도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 행복의 조건 中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큰애는 할아버지 기제사와 엄마생일을 미리 치른 뒤 어젯밤에 다시 천안으로 내려갔고, 작은애는 오늘아침 일찍 일주일간 부산출장길에 올랐습니다.  조용하고 무탈한 일상을 맞이하고 있는 감사한 월요일입니다.


제 생일 삼일 전엔 시아버님 기제사가 있습니다.  달력에 동그라미로 일정을 챙길 때마다 내 생일의 기쁨보다 삼일 앞서 챙겨야 하는 시아버님의 제사일로 차분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남편의 나이 10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저는 시아버님의 얼굴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결혼하고 흑백사진으로 남겨진 액자 속 얼굴이 고작이죠.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 한 번도 뵙지 못한 시아버님이지만 기제사일이 불과 며칠상간이란 사실이 제 생일을 미리 축하해 주시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며느리사랑은 시아버지란 말도 있듯이 제 생일을 앞두고 제사용품을 준비하다 보니 과일이며 음식이 풍족하니까요.  


연상기억이라고 해야 할까요.  

결혼 전 없이 살던 친정집에서도 몇 날 며칠 엄마의 돈걱정이 일상을 우울하게 하다가도 제 생일만 돌아오면 돈이 생겨 김장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밥상에 김치가 유일한 반찬일 시절이었기 때문에 김장을 한다는 것은 겨울을 든든히 보낼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김장김치 속을 너무 많이 먹어 속이 쓰리던 생일이었지만 '네가 복덩이 인가보다, 네 생일 때는 꼭 돈이 들어오네'하시던 엄마의 밝은 표정이 떠오르곤 합니다.  셋째 딸로 태어나 맏며느리였던 엄마의 불행에 짐을 줬다는 죄송함이 생일날만큼은 벗어나게 해 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할아버지 기제사와 엄마생일이 삼일 상간으로 있으니 우리 아이들이 출가해도 분명히 찾아올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상상하면 시아버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남편 형제 카톡방에 시아버님 기제사를 지낸 사진을 올릴지 물으니 남편이 부담된다고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부모님 제사일도 모르고 놓친 형제들의 불편한 마음까지 헤아리는 모습을 보면서 책임감이란 게 이런 거로구나 깨닫게 됩니다.  


사람마다 기념일을 바라보는 방향은 다를 테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불행을 겪고 난 사람은 오히려 더 견실하고 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죠.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잃어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한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사랑의 회복이기도 하고요.  제사를 지내면서 남편은 10살 때 잃어버린 아버지를 떠올리고, 저는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시아버지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죽음과 엄마의 생일을 경건히 받아들이겠죠.  과거와 현재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시간을 경험합니다.


노량진수산시장에 들러 참치회를 사 와 가족들과 오붓하게 즐거운 생일 보냈습니다.  작은애가 우쿨렐레로 생일노래를 불러줘서 더 흥이 난 생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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