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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물고기의 이석에는 살아온 정보가 낱낱이 숨어있다


이렇게 작은 멸치도 나이가 있다.  그렇다면 물고기의 나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람이라면 동사무소에 가면 주민등록 등. 초본을 떼어 보면 되지만, 물고기는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말로 물어볼 수도 없으니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사실 물고기 귀 속에는 평형기관 구실을 하는 이석이 있는데, 그 이석의 단면을 보면 나이테가 있어 나이를 알 수 있다.  게다가 비행기의 블랙박스처럼 살아온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 물고기의 비밀도 캐낼 수 있다.




바다생물에 관한 전문지식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낸 현대판 '자산어보'라 불릴만한 책이다.  이야기꾼처럼 재미있게 풀어낸 황선도박사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관장으로서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인간의 시선이 아닌 물고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생태복원에 진심인 분이셨다.


이 책은 우리가 일 년 열두 달 맛있게 먹고 있는 대표 바다생물을 소개하는 글이지만 생태계 설명은 물론 소개한 수산물과 관련된 속담, 낚시, 역사, 바다여행, 요리 그리고 작가의 철학을 녹여낸 글까지 읽다 보면 감동스러운 만찬을 받은 기분이 든다.  소개하는 이 책은 이미 절판되었지만 더 많은 내용은 보완하고 바다생물들을 추가하여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이란 책으로 나와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모든 생물들은 각자의 환경에 맞춰 진화해 왔듯이 물고기와 해양생물들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적응해 왔다.  다양하게 진화된 물고기의 형태를 설명하는 글에서 나는 문학적 정취가 풍기는 인상 깊은 글을 만났다.


"이렇게 동물들은 생긴 대로 산다. 아니, 사실은 사는 대로 생겨진 것이 진화의 결과일 것이다.  만물이 그러하니 사람 역시 외모를 바꾸어 삶을 바꾸려는 노력보다 내면의 인상과 자세를 바르게 하여 얼굴과 몸매를 가꾸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월 별로 소개하는 바다 생물들은 '이것만은 기억하고 수산물을 접했으면'하는 최소한의 지식처럼 읽힌다.  그런데 그 소개가 어찌나 재미있게 읽히는지 한 번씩 풍선 터지듯 웃느라 힘들다.  아래는 월별로 많이 잡히고 식탁에 오르는 수산물과 소개글이다.  내용을 읽고 싶게끔 잘 뽑아내지 않았는가!


1월 명태 - 사라진 명태를 현상수배합니다

2월 아귀 - 쓸모없던 물텀벙의 인생역전

3월 숭어 - 배꼽 달린 물고기를 아시나요

4월 실치와 조기 - 영광은 계속되어야 한다

5월 멸치 - 그 작은 머릿속에 블랙박스가!

6월 조피볼락과 넙치 - 서민에게 사랑받는 국민횟감

7월 복어 - 빵빵한 뱃속엔 뭐가 들었을까

8월 뱀장어 - 아직도 다 풀지 못한 산란 미스터리

9월 갈치와 전어 - 가을에 만난 은백의 밸리댄서와 고소한 뼈꼬시

10월 고등어 - 전지현 뺨치는 에스라인은 진화의 산물

11월 홍어 - 죽음을 뛰어넘는 지고지순 로맨스

12월 꽁치와 청어 - 과메기 원조 청어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대부분 익숙한 물고기들이다.  익숙하니 반갑고 사연이 궁금하다.  황선도박사는 오랜 연구결과를 접하며 다시 한번 정약전선생의 '자산어보'에 감탄했다.  나는 영화로도 본 기억이 있는데 추천하고 싶다.  아무튼 그가 21세기에 연구한 결과가 자산어보와 일치했을때 얼마나 놀라고 자랑스러웠을까.


이 중에서 '아귀'에 대한 글을 소개하고 싶다.  예전에는 못생긴 모양 때문에 잡으면 물로 도로 던졌다고 해서 '물텀벙'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아귀는 수심이 깊은 바다 밑바닥에 살면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몸 색깔도 주변의 모래뻘 색깔에 맞게 바꾸어 가만히 있다가 작은 물고기들을 유인한다.  아귀의 머리 앞쪽에는 안테나 모양의 돌기가 있는데 좌우로 흔들어서 먹이를 유인한다.  그러다 물고기가 속아서 가까이 오면 그 순간 큰 입을 벌려 통째로 삼켜 버리는 낚시 물고기다.


"정약전 선생은 '자산어보'에 아귀를 '낚시하는 물고기'라는 뜻으로 '조사어釣絲魚'라고 기록했다.  실제로 바다 깊은 곳에서 아귀가 먹잇감을 사냥하는 장면을 관찰할 수 있는 잠수 장비도 없었을 그 옛날, 선생의 통찰력이 놀랍다."



또 우리가 애정하는 서민밥상의 생선 '고등어' 얘기도 재미있게 읽었다.  고등어 또한 무리 지어 이동하는 물고기인데 엄청나게 빠르다고 한다.  하루종일 헤엄쳐도(1500미터를 14분대에 헤엄치는 박태환 선수와 맞먹는 빠르기) 지치지 않는단다.  표영어류(떠 살이 물고기)이기 때문에 전후좌우 포식자(위로는 갈매기, 아래로는 상어 등등)로 위험하기 때문에 위장술로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다.


"이들 떠살이 물고기는 대체로 등 쪽이 푸르고 배 쪽은 은백색이다.  등 색깔이 푸른 것은 먹잇감을 찾아 배회하는 바닷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바다색과 구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특히 고등어 등에 있는 녹청색의 물결무늬는 물결이 어른거리는 자국과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물 밑에서 수면을 보면 햇빛이 투과되어 은백색으로 보이는데, 고등어 또한 배가 은백색이어서 물 밑에 있는 포식자가 위를 쳐다보았을 때 분간하기 힘들다."



또 재미있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일본에서 고등어를 '사바'라고 일컫는데 우리나라에선 약간 의미가 바뀌어 '사바사바'라고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느 한 일본인이 나무통에 고등어 두 마리를 담아서 관청에 일을 부탁하러 가는데, 도중에 어떤 사람이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사바'가지고 관청 간다고만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와전되어 '사바사바 한다'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전해졌고, 주변에서 '누구는 사바사바를 잘해서 잘됐다'는 이야기를 한 번 정도는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 년 열두 달 물고기들이 모두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너도 생선이냐?'라고 할 정도로 작고 힘없어 보이는 멸치를 2만여 종의 물고기 중 수산물의 대표로 꼽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제목은 내용을 함축하는 대표주자이기 때문이다.  멸치는 바닷속 먹이사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선이다.


멸치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바닷속 먹이사슬에서 낮은 단계에 속하기에 많은 산란으로 자신을 지킨다고 한다.  포식자들에게 쉽게 잡히는 약한 존재기 때문에 몰려다니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선택을 는데, 자연의 이치를 이용하는 최종 포식자인 인간에게는 한꺼번에 포획당하고 있다.  


황선도박사는 한꺼번에 끄는 그물로 모조리 휩쓰는 방법보다 남해 죽방렴처럼 자연스레 조류에 따라 죽방렴 안에로 들어온 멸치를 잡는 생태적 어업을 추천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과학개발이란 명분으로 해양수산물을 더 많이 어업 하려 노력하지만 생태계 입장에선 자연을 훼손하고 순리를 거스르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신기한 소득이라면 멸치뿐 아니라 단단한 뼈를 가진 경골어류에는 귀 속에 '이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석은 척추동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물고기에 있는 이석에는 그동안 살아온 정보의 비밀이 남김없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물고기의 이석도 몸의 균형을 감지하는 평형기관의 구실을 하고 위치감각을 담당한다.  과학자들은 이 이석을 쪼개거나 갈아서 단면을 보는데 나무의 나이테 같은 무늬를 통해 몇 살 먹었는지, 심지어는 몇 년, 며칠에 태어났는지를 알려 주는 일일 성장선까지 찾아낸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석에 나타난 미세한 성장선을 분석하여 멸치의 산란 시기를 찾아냈다.  그러니 이석은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같인 셈이다.  너무 신기하지 않은가.


"이석에 나타난 미세한 성장선을 분석해 보니 서해안 멸치는 산란 시기에 따라 3개의 산란군으로 나눌 수 있는데, 늦여름(수온 20~26도) 산란군이 그보다 수온이 낮은 봄과 이른 여름에 산란한 멸치보다 더 빨리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이 빠른 덕에 짧은 시간에 혹독한 겨울을 날 수 있을 정도로 자라서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참 자연의 이치란 죽으란 법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생태 정보 하나를 알아내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지라, 자연과학에는 투자하고 그냥 기다려 줄 일이다."



우리 집 밥상엔 '멸치볶음'이 항상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올려진다.  멸치는 영양학적으로도 아주 훌륭하다. 칼슘, 칼륨, 오메가 3 지방산이 풍부하다.  성장기는 물론 치매예방에도 추천식품이니 많이 섭취하자.  


물고기에 대한 몰랐던 상식과 그와 관련된 스토리텔링 시간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사실 많은 반성을 했다.  그동안 바다를 그저 수산물을 얻어내는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닷속 생물들의 연구에 남의 일처럼 소홀하다.  바다도 자연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해 8월부터 일본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었는데, 망망대해에 사는 바닷물고기들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 결과 없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바닷물고기를 어업하고 먹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환경 역류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을 심심찮게 발견한다.  지구종말의 조짐처럼 느껴지는 것은 과도한 걱정일까.  나는 인간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더 이상의 삶의 여유가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먹을 만큼만 생산하고 먹을 만큼만 어획했으면 좋겠다.  다 좋다 치고 경제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산생물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게 바닷물고기에 대한 예의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 황선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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