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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생각을 바꾸다


부자가 명품이나 고급차를 구입하는 것과 같은, 과시하기 위한 호화 소비만이 차이적 소비가 아니라는 데 주의해야 한다. 부자가 자신들이 부자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드러내기 위해 페라리나 포르셰 등 '알기 쉬운 고급차'를 타고 다니거나 고급 주택지로 이름난 지역에 사는 것도 물론 차이적 소비의 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중략)
우리가 어떤 선택을 무의식적으로, 아무 목적 없이 행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선택’하고 다른 것은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기호가 생겨난다. 이 거북한 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기호의 지옥에서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뒤집어 말하면, 무언가 기호성을 갖지 않거나 또는 갖더라도 희박한 상품과 서비스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아실현적 소비는 시장 성장의 최종 단계에서 발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때 자아실현이 자발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마찬가지로 '타자와의 차이'라는 형태로 규정된다면, 그 상품 나름대로 서비스가 어떠한 차이를 규정하는지를 의식하지 않는 이상 성공할 만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보이기 위해 돈을 쓴다' 본문 中



철학이라고 하면 일상과는 동떨어진 가치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삶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 '야마구치 슈'는 비즈니스 스쿨을 통해 기업에서 강의를 하며 인문 지식을 기업현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는 자물쇠를 여는 열쇠가 되어 눈앞에 닥친 일들을 통찰하고 해석하는 데 철학은 어떻게 삶에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철학이라는 학문에 다소 거리감을 느끼는 일반인이라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철학은 읽으면 마치 보기 쉽게 정리된 '유튜브 썸네일' 같은 역할이랄까. 어려운 철학자의 고찰이 이렇게 쉬운 해석이었어? 하고 용기를 갖고 완독 하게 만든다.


이 책에서는 사람의 행동에 대한 이해, 조직의 행태들, 사회 현상을 짚어내는 핵심 콘셉트를 사고의 논점에서 50개의 챕터를 통해 기술해 놓고 있다. 아는 철학적 내용도 다수 있었는데, 저자가 해석해 주는 철학자들의 사고를 읽으면 현실에서는 이렇게 해석되고 적용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


미리 말하지만, 이 책은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러기엔 저자가 다룬 사상가 및 학자들이 너무 많고 철학이라는 학문을 어떻게 정치, 경제, 사회에 어떻게 접목(무기로써) 적용하여 아웃풋을 낼지에만 많은 부분 할애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내 나름대로 유용했던 부분을 찾아 정리해 보았다.


매년 소비트렌드책이 나올 정도로 과잉소비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하는 소비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의 계급질서와 상징적 체계'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생산된 물건의 기능보다 상품이 상징하는 위세와

권위,차이적 소비를 통해 기호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되는 것은 생산물이 아니라 기호인 것. 즉, 현대인들은 사물에 의한 구원을 찾으면서 소비의 계급적 제도에 순종한다고 비판했다. 지금도 기업들은 이런 부분을 마케팅으로 파고들고 있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남다른 사고력에 감탄했던 것은 니체의 '르상티망'에 대한 해석이었다.


이솝우화에 '여우와 신 포도'이야기가 있다. 여우가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았다. 결국 이 여우는 "이 포도는 엄청 신게 분명해, 이런 걸 누가 먹겠어!" 라며 가 버렸다. 이는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의 전형적인 반응을 보여 준다. 여우는 손이 닿지 않는 포도에 대한 분한 마음을 '저 포도는 엄청 시다'라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해소한다. 니체는 바로 이 점을 문제로 삼아 우리가 갖고 있는 본래의 인식 능력과 판단 능력이 르상티망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르상티망'이란 철학에서는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으로 표현된다. 즉 시기심이다. 니체는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개인은 상황을 개선시키려 하기보다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기준을 바꿔버리거나, 정반대의 가치판단을 주장해서 르상티망을 해소하려고 노력한다고 보았다. 가질 수 없는 게 아니야, 갖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스스로 다독임으로써 상황을 역전시키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설파한 '성서'와 노동자는 자본가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한 공산당 선언'이 르상티망에 기인한 가치판단을 역전시키는 전형적인 콘텐츠라고 말한다. 우리가 재미있게 기억하고 있던 이솝우화 하나를 철학자 니체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 어젠다를 정한 후 상황을 정확히 통찰한 것이다. 우리가 철학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자세는 이렇게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된다.


이 밖에도 현대인들의 사회적 습관, 이해 못 할 행동들이 어떤 철학적 사유로 바라봐야 하는지가 철학자들의 사유와 함께 현실에 비유하며 신랄하게 설명해 준다.


이제 지구촌은 냉전시대가 가고 만연한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유의사와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철학자들은 개인의 양심은 권위에의 복종에 가려져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한다. '에히리 프롬'은 그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란 책에서 "자유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을 동반한다."로 말한다. 인용된 아래 본문 내용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프롬은 자유로부터 벗어나 권위에 맹종하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성격 특성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프롬은 하층 및 중산계급 중에서 나치즘을 반기며 이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기 쉬운 성격이며 자유의 무게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존과 종속을 추구하는 성향임을 밝히고 이를 '권위주의적 성격'이라고 명명했다. 프롬에 의하면, 이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권위를 따르기 좋아하는 한편, 스스로 권위를 갖고 싶어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을 복종시키고 싶어 한다. 한마디로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첨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거만하게 구는 인간'이다. 이 권위주의적 성격이 파시즘 지지의 기반이 된 것이라고 프롬은 강조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과 판단이 들까 궁금하다. 우선 우리가 믿고 따르는 사회적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또한 표준화된 사회와 관료적인 조직시스템에서 행해지는 악행에 대해 눈감지 말아야 한다. 나치독일이 유대인 학살 계획을 꾸밀 때 600만 명을 처리하기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이히만 유대 민족에 대한 증오나 유럽 대륙에 대한 공격심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출세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그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신분차별 제도가 만연했던 시대가 지나고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차별과 격차가 근절되지 않고 오히려 더 차별과 격차가 심화되는 요즘, 우리는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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