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한 겹 벗겨 내고 본 북유럽 이야기

한누와 야코라는 핀란드인 두 명이 길에서 만난다.  한누가 야코에게 말한다.

"술 한잔 할래?"

야코가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은 한 누의 집으로 간다.

두 사람은 보드카 한 병을 말없이 마신다.

다음 병을 따면서 한누가 야코에게 묻는다.  

"그런데 어떻게 지내?"

야코가 짜증을 내며 대답한다.  

"우리 여기 술 마시러 온 거 아니었어?"



- 말수 적고 술 좋아하는 '핀란드인'의 성향 일화 中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북유럽은 샘날 정도로 부유하고 평화로우며 행복지수와 복지제도가 높고,  남녀가 평등한 대우를 받고, 어느 나라보다 진보적이다.  유럽에 대한 동경이랄까.  그들 국가의 교육과 복지를 따라 가려 정부의 대안 시도들이 그런 나의 동경에도 한몫했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 국가가 지상천국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세계 여행이 사치스러운 여가가 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고, 각종 매스컴의 솔직한 탐방도 북유럽 예찬론에 금이 가는 이유다.


저자 '마이클 부스'는 영국 언론인으로서 가벼운 터치감으로 이 책을 통해 스칸디나비아 5인방의 실체(이왕이면 흠을 잡겠다고)를 보여주기 위해 책을 냈다.  저자의 안내를 받고 좀 더 그들의 디테일한 문화와 제도를 살펴본 뒤 여행을 간다면 더 즐겁지 않을까 자연스러운 호기심에 책을 열어보게 만든다.  저자는 10년 동안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에 살면서 직접 답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써내려 갔다.  언론인 특유의 삐딱한 시선은 북유럽을 무조건 애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셈이다.


그런데 막상 독서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재치 있는 입담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중력 있게 읽히지 않았다.  스칸디나비아 5개국의 역사와 제도.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설명하는 저자의 내용들이 일단 일목요연하지 않았고, 정치얘기를 하다 역사 쪽으로 또 갑자기 그들의 축제문화, 성향등으로 자리이동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게 읽어야 할 포인트를 놓치는 기분이랄까..


또 그들 나라의 기본적인 역사와 지식을 갖추지 않고 읽는다는 찔리는 양심이 저자가 날리는 유머를 제때제때 이해 못 하는 한계에 부딪쳤고 본의 아니게 산만한 기분을 받으며 나의 특기인 끈기도 기력을 다해갔다.  차라리 내 생각에는 두세 개 국가만 집어서 역사와 함께 지금의 그들의 국민성향이 정착되기까지 정도만 조금 자세히 써내려 갔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들었다.  아니면 일화를 바탕으로 그 나라의 국민성을 알려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짧게 소개하고 지나간 핀란드인의 성품이 그려지는 글에서 웃음이 터졌고 그제야 핀란드인의 정서가 공감이 갔게 때문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아무튼 오랜 시간에 걸쳐 읽은 북유럽 국가들의 요약분(마이클 부스가 집어낸)은 아래와 같다.


1. 덴마크

- 1600년대에는 스칸디나비 일대를 호령한 북유럽 최강의 강대국이었고, 바로 바이킹의 본원지국이었다.

- 세계에서 가장 사교적인 국민(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든 어디서든 다들 사이좋게 지낸다)이다.

- 독일과의 전쟁으로 북방의 거대한 반도 영토를 잃었고 그로 인해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라는

  개척정신과 함께 '휘게' 정신에 젖어 '휘겔리'한 스타일로 살고 있다. (시종일관 편안하고 자기만족적, 소시     민인척 - 부자가 적고 가난한 사람은 더 적을 때 평등하다고 믿음)

- 돈육 생산에 있어 타의추종을 불허하고,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돼지를 외부에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 국민 대부분이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데 반해 세계에서 암 발병률이 가장 높다.

- 살인적인 날씨, 규범을 벗어난 모든 대상과 사람을 향한 공포, 야망을 불신하고 성공을 멀리한다.

-  소득의 직간접세가 72%(극악무도한 세금)가 넘고, 국가가 해결해 준다는 생각에 나태지수가 세계 2위다.

- 미루기 끝판왕 국민성은 그들의 생산성과 일치한다.

- 덴마크인은 평소 연락하는 친구가 대단히 많으며, 타인을 믿는 신뢰 수준은 세계 최고다.

- 저자는 덴마크를 폭탄 세금고지서와 축축하고 따분하고 생기 없고 지갑 열기가 무서울 정도로 비싼 물건을 불친절하게 파는 상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


2. 핀란드

-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지난 세 기초에 러시아 혁명의 기운을 받아 독립에 성공한 나라.

- 핀란드는 독립의 와중에 내전으로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고,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듦

- 과묵하기론 세계 1위,  모범적이며 완벽히 정직한 민족(침묵을 미덕으로 여기고 대화는 미니멀리즘을 추구)

- 폭음과 사우나 문화를 너무 사랑하는 나라다.

- 서유럽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고, 항정신제, 인슐린, 항우울제가 가장 많이 팔린다.  

- 핀란드인은 상대가 5분 이상 이야기하면 무언가 숨기려는 것으로 의심한다.

-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국민을 꼽는다면 핀란드인이라 말했다.  

  판타스틱이라는 단어를 '핀타스틱 Finntastic'이라 할 정도다.  

  신뢰성과 언행일치의 끝판왕 국민들이다.  그만큼 정치인들도 깨끗하다.


3. 아이슬란드

- 모범적인 북유럽 국가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별종나라다.

- 과도한 폭음과 무절제가 느껴지는 나라다. (위스키 한 병에 8천 달러를 써도 아무렇지 않다고 느낀다.)

- 그럼에도 아이슬란드는 신기하게도 세계에서 책 구매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4. 노르웨이

- 북해에서 발견된 석유로 부자가 된 나라다.

- 부자나라답게 노르웨이 생산인구의 3분의 1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정부보조금만으로 살아간다.

- 고갈될 석유에 대비해 미래 세대를 위한 엄청난 국부펀드를 조성해 놨다.

- 문해력, 수학, 과학 실력은 유럽 평균을 밑돈다.(공부하고 일할 이유가 없어서일까)

-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늘 혼자 지낸다.


5. 스웨덴

- 스웨덴 남성은 지나치게 독립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추구해서 남녀관계도 개인주의가 철저하다.

- 스웨덴인은 핀란드에 버금가는 침묵의 나라다.

- 세계 여느 나라보다도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민자들이 잘 정착되는 모범국 가다.

- 민주화 국가임에도 국가의 역할이 과도하게 많은 나라다.  스웨덴 국민들은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 스웨덴은 복지사업의 민영화, 소득세율 인하 등 북유럽의 큰형 역할 국가.


부담스럽게 독서를 마친 이 책이 당장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그것 하나만은 알게 된 것 같다.

세계 어느 곳도 유토피아국가는 없었고 그 나라만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 빛과 어둠을 간직한 채 그들만의 고통을 삼킨 채 그들만의 삶으로 구축되었다는 점이다.  북유럽사회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정치나 제도이전에 먼저 지금까지 관념적으로 유지되어 내려오는 문화적 전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관습법처럼 통용되고 있는 '위게, 폴켈리, 라곰'이다.  그것은 '느긋함, 아늑함, 유쾌함'과 같은 정서다.  


이 중에서 '라곰 Lagom'은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적당히'라는 뜻이다.  바이킹 시대 술통을 돌려가며 마시는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사람이 너무 많이 마셔버리면 다음 사람이 마시지 못하니 적당히 나눠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우리는 규모의 경제의 힘으로 너무 많은 소상공인들을 어두운 터널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빈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더 이상 평등하지 못하다.  '적당히' 나눠 같이 살아가는 세상은 힘든 요구인가.  


다소 과하게 풍성했던 내용이었단 생각이 드는 책이었지만 혹시라도 북유럽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검증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때론 삐딱한 시선도 삶을 더 풍성하게 바라볼 여유를 갖게 될 테니까 말이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마이클 부스 저>

매거진의 이전글 보통의 언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