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전장의 백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선언하고 나면 모든 게 종결되는 것처럼. 전쟁이끝나면 곧바로 평화인 경우는 없다.
특히 피해를 입은 국가라면 그때부터가 오히려 아픔의 시작이다. 전쟁통에는 생존만이 문제였다면, 전쟁이 휩쓸고 앗아간 모든 것들을 복구해 나가며 겪는 고통이 삶의 일상이 되는 것은 가장 슬픈 풍경이다. 이권이 부딪히고, 신념이 충돌하고, 분노 분출 외에는 방법이 없을 때 우리는 다툰다.
쌍방과실이라 분노가 식으면서 자연스레 화해를 하는 경우라면 이상적이지만, 여기서는 한쪽 과실이 조금 더 클 경우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상하게도 피해 입은 자들을 위로하는 이야기는 차고 넘치는데, 피해 입힌 자들을 성찰하게 하는 이야기는 적다.
사과를 하는 쪽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주도권을 갖는 착각을 한다. 물론 사과하는 일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인지 '사과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에 심취해서 포커스를 상대가 내 사과를 어떻게 받는지에 맞추기 시작한다.
'미안하다고 했잖아'라는 말. 이 문장만 봐도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짜증이 밀려오지 않는가? 그만큼 사과를 하고 받을만한 일에서 중요한 건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이후의 과정인 것 같다.
사과를 받을 입장일 때를 떠올려보자. 상대가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순간은 마치 끓는 냄비가 올라간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는 것과도 같다. 더 끓일 의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바로 식지는 못한다.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때, 흔들리는 동공으로 잔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미안한 줄 알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등등이 단골 대사다. 물론, 이 말을 하지 않는다면 베스트다. 그러나 사과를 하는 입장에서 사과를 받는 태도에 점수를 매길 권한은 없다.
사과를 받은 사람 쪽에서 필요한 겸연쩍은 시간이란 게 있다. 마지못해 내민 손을 잡아주고, 다시 웃으며 이야기 나누기까지 떼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몹시도 무겁다. 이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다.
소중한 관계를 이어가는 비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화해하는 거라고 대답한다. 호시절에 잘해 주는 건 쉽고도 당연한 일이다. 소중한 관계일수록, 거리가 가깝고 가까울수록, 갈등이 생길 확률은 높다.
그러니 이 갈등을 어떻게 어루만져 다음 단계로 가는지가 중요하다. 잘 마무리된 다툼만큼 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건 없다. 잘못을 저지른 경우라면 차라리 당신에게 이 관계를 더 견고히 만들 기회가 주어진 거다. 잊지 말자. 사과는 A/S 기간이 가장 중요하단 걸.
작사가 겸 방송인 '김이나'씨의 에세이집이다. 명곡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노래의 작사는 김이나 씨가 평정했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곡들이 정말 많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래 속 그녀의 가사는 음악과 절묘하게 어울려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으로 선택받고 있는 것이다.
작사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고 한다. '말과 태도사이'의 작가 유정임 씨는 작사를 쉽게 생각하고 도전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결국 포기했을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라고 고백했다.
노래에 스며든 가사는 '글'과는 다른 생활언어로 표현해야 하는데, 책은 눈으로 읽지만 노래는 귀로 느끼기 때문이란다. 개인적으로 나는 악동뮤지션의 노래도 좋아하는데, 이찬혁은 작곡과 가사 노래까지 완벽한 뮤지션이다.
아무튼 최근 음악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는 그녀의 심사평을 듣고 있노라면 청취자들의 감정을 대리하듯 표현해 줘서 너무 즐겁게 시청하고 있다. 청각이 좋다는 것은 교감을 제대로 한다는 반증과도 같다. 노래를 듣다가 자신의 상황처럼 감정이입을 하고 눈물을 훔치는 그녀를 보면서 섬세하고 마음이 따뜻한 여인일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의 관계에서 언어의 비중은 과히 지배적이다. 그녀의 에세이집에서는 우리의 보통의 언어 속에서 마찰되는 부딪침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솔직하고 섬세하게 터치하고 있다.
그중에서 '사과'에 대한 고찰은 과거의 나를 위해 말하는 듯했다. 나를 대변해 주는 듯한 시원한 감정적 지적을 읽을 때 이미 이 책의 매력은 차고 넘쳤다고나 할까. 노래를 듣다가 어느 한 구절, 한 가사에 꽂히고 그 노래의 매력에 빠지듯이 '사과'에 대한 비유 글 하나로 이렇게 시원해 본 적이 내 기억엔 없다. 한 조각의 단어도 놓치고 싶지 않아 욕심껏 모두 옮겨봤다.
우리가 살면서 나도 모르게 착각하고 있는 내 안의 두려움에 대한 고찰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단지 내 자신이 거부하는(싫어하는 종류의 한 사람일 뿐) 사람이라는 단정도 합당한 진단이었단 생각이 든다. 어느 정신과의사의 상담보다 후련했다.
우린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어 안달하며 살고 있다. 그 완벽함의 강박이 사회적 조직 안에서 또 다른 정체성을 탄생하게 만드는 것일 테다. 그녀는 말한다.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는 쪽을 선택하면 어떻겠느냐고.
나는 근래 그동안 모두 움켜쥐었던 관계의 한쪽의 끈을 의도적으로 놓으며 살고 있는데 약간의 불안감만 있을 뿐 생각보다 힘들지 않아 견딜만하다. 아니 그보다 더 편해졌다는 편이 맞을 테다.
노래 한 곡 듣는 기분처럼 가볍게 읽었다가 뜻밖에 편안한 휴식을 만난 듯 개운해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