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축제없는 삶은 여인숙 없는 기나긴 길과 같다




부모님은 우주는 막대하고 우리 인간은 궁벽한 곳에 있는 작은 행성에서 눈 한 번 깜박할 순간 동안을 살아가는 아주 작은 존재라고 했다.  또 두 분의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라는 말도 나에게 들려주었다. 




2023년 내 독서목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코스모스'다.  이과생이 아닌 내가 과학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던 충격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해석에 목말라했던 것 같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영혼이 정말 있다면 신앙심에 의탁하면 해결되는 것일까, 그 의문투성은 많은 독서로 이어졌지만 갈증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탄생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란 별이 주로 수소로 된 성간 기체와 소량의 성간 티끌이 뭉쳐져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줬다.  태양과 지구의 자전 그리고 달의 중력이 어우러진 우연의 산물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삶 근원에는 우주의 탄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광활한 우주 속 그저 작은 행성에 불과한 별에서 태어난 인간이 진정으로 고민하며 살아야 할 일은 삶과 죽음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해 줬다.  그는 삶을 긍정하고 매일의 일상에 감사해하며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이로움을 느끼라고 말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유전자를 받은 딸 저자 '사샤 세이건'은 14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삶 속에서 가치관이 정립되고 성격형성이 충분히 갖춰진 시기다.  그녀는 아버지의 그리움을 과학적 훈육 방식대로 해결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


내가 아버지한테로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대기 중의 공기 입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같은 공기로 호흡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새도 가끔 그 생각을 한다.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이 공기 입자 중 일부가 아버지가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공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공기를 들이마신다니 얼마나 친밀한 행위인가.



누구보다 과학적인 교육으로 무장했을 딸자식의 에세이집은 어떨까, 나는 살짝 흥분하며 책장을 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아쉽게도 정통 유대교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사샤의 외가 쪽 집안에서 시작되어 작가 자신의 탄생, 성장, 결혼 그리고 또 자신의 딸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었다.  저자는 모계 쪽에 영향을 아무래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뭐랄까, 칼 세이건은 지구에서 우주로 뻗어 나갔다면 딸은 우주비행을 마친 지구인이 공항에서 마을로 들어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저자의 의도가 확실한 방향을 잡았을 때부터는 단념이 빨랐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깨달은 거지만, 사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자신도 모르는 사회적 관습, 규칙, 행사, 절기, 무속신앙등은 물론이고 스스로 설정한 날까지 엄청난 기념일 속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 달력을 넘겨 보면 각종 절기며 종교, 국가 기념일들이 알아서 빨갛게 강조하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저자는 각국의 전통, 의식들까지 세세히 거론하며 알려준다.  본론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싶을 즈음에는 문득 지구인들, 참 와글와글 재미있으면서도 복잡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맞다. 웃음이었다.  우주입장에서 보면 먼지보다 작은 지구인들이 견디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기념하는 무수한 것들 안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 말을 하고 싶어 했다.  우주의 광활함 속 이토록 작은 존재가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원시시대부터 생존의 위협을 느끼던 인간은 아마도 무속의식을 통해 결속하고 협동하며 믿음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것이 기록이 되었고 우연의 발화가 의미 있는 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의 신앙, 의식들이 설사 비과학적이더라도 마음의 안정과 서로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나나 당신이나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죽는다.  또 우리 종도 멸종하거나 아니면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태양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지구상의 생명이 끝날 것이고 우리가 아직 예측하지 못한 많은 일이 우주에서 일어날 것이다.  만약 우주가 계속 지금과 같이 확장된다면 1000조 년 뒤에는 마지막 별마저 죽을 것이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 사샤 세이이건 저>

매거진의 이전글 1일. 1 미술. 1 교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