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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지(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

폭로된 진실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의 기억은 괴물이다. 우리는 잊어도 그것은 잊지 않는다. 그것은 기록을 다른 데 남겨둘 뿐이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기록을 유지하기도 하고 기록을 숨기기도 한다.

그것은 그것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기록을 우리의 확장 속으로 불러낸다.

우리는 우리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


- 존 어빙 John Irving




먼저 책 제목이기도 한 '클루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 대략 나름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지만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

. 공학 기술의 완벽한 산물이 아니라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잡동사니들을 이어 맞춘 역사의 구조물이자 창조물.

. 잘 어울리지 않은 부분들이 조화롭지 않게 모여 비참한 전체를 이룬 것.

. 대안적 장치가 있음에도 그냥 받아들인 상태


우리는 인간의 신체에 클루지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인정한다. 네발짐승에서 두 발로 살아가게 된 자연선택(진화)의 결과물이 인간의 삶에 전혀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단 한 개의 기둥인 척추는 인간의 전체 몸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요통에 시달리는 이유기도 하다. 어디 척추뿐인가.


눈의 망막도 머리 앞쪽이 아니라 뒤쪽을 향해 설치되어 있다. 우리의 망막은 빛 에너지를 흡수한 뒤 이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시신경으로 뇌에 전달하고 뇌가 해석한 전기적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복잡한 절차를 거친 뒤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형편이다.


이 밖에도 인간에게 유리하지 못한 진화를 통해 발현된 클루지이지만 네발짐승의 진화(자연선택)로 인한 불합리한 완성품이기에 인간은 일단 인정하며 과학기술과 교육의 힘으로 어떻게든 관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인지능력 또한 클루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은 공부(인정) 하지 않았다. 다만 인지(행동) 심리학이라는 형태로 현대에 이르러 관심 있는 학자들에게 주목되는 실정이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다양한 인지행동 실험을 통해 인간의 불합리한 마음을 이해하려는 심리학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으로 김경일교수가 다양한 방송과 책을 통해 인간의 지적 능력의 허점을 알리고 있다.


이 책은 출간되지 꽤 오래된 책인데 '역행자'의 저자가 추천도서로 지목되면서 다시금 회자되었고 리커버 에디션으로 출간되었다. 인간의 본성(마음)을 파악한 뒤 자신의 인생에 적용한다면 분명히 바뀌게 될 거라는 확신에 찬 자청(역행자의 저자)의 영향이다.


읽어보니 세간에 나와있는 인간본성을 다루는 심리학책을 총망라하듯 다루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체계적이고 본질적으로 타협점 없이 비판한 책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치다. 아무리 과학기술과 문화적 발전이 있어 진보를 했어도 우리의 뇌 역시 신체의 일부이기도 하고 선행인류 조상 때부터 10억 년 이상의 시기에 걸친 유전형질의 대부분은 인간의 진화 마지막형태 이전부터 끌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금까지도 보여주는 행동(정치적, 모성적, 종교)은 99%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침팬지의 행동과 유사하기까지 하다. 즉 우리의 뇌는 언어 이전에, 신중한 사고 이전에, 우리와 같은 생물이 존재하기도 전에 진화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체계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만큼 영리한 유일한 종이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주의 깊게 짠 계획을 순간의 만족 때문에 내팽개칠 만큼
어리석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인지적 구성에 존재하는 여러 불완전한 결함들을 나열한다. 얼마나 인간이 모순덩어리이고 불합리한 존재이고 객관적인 평가에 익숙지 않은지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결함에 대한 예시로 "확증 편향, 정신적 오염, 닻 내림, 틀 짜기, 부적절한 자기 통제, 반추의 순환, 초점 맞추기 착각, 동기에 의한 추론, 잘못된 기억, 제한된 정신능력, 애매한 언어 체계, 정신장애에 대한 취약성"등을 다룬다.


그동안 읽었던 여러 심리학 도서들이 단편적으로 다룬 주제들을 모두 집결한 종합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빽빽이 인지적 오점제시와 함께 방향성까지 제시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힌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인 클루지를 이겨내는 13가지 제안은 인지적 행동에 따라오는 여러 결함(함정)들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는 저자의 당부기도 하다.


1. 대안이 되는 가설들을 되도록 함께 고려하라

2. 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라

3.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가 아님을 명심하라

4. 여러분이 가진 표본의 크기를 결코 잊지 말라

5. 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

6. 막연히 목표만 정하지 말고 조건 계획을 세워라

7. 피로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는 되도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8. 언제나 이익과 비용을 비교 평가하라

9. 누군가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10. 자신에게 거리를 두어라

11. 생생한 것, 개인적인 것, 일화적인 것을 경계하라

12.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13. 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



우리는 인지적 산맥을 정복하지 못한 채 불완전한 형태로 현재에 이르렀다. 인지적 취약성은 현재도 진행형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흡족하고 소득 있는 독서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항상 결론은 교육인 것 같다. 우리의 교육은 구글(정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주입식 암기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인간이란 종은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선천적으로 속기 쉬운 존재다. 다 큰 성인이 보이시피싱으로 큰돈을 날리고 가짜뉴스에 현혹되어 극렬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과학적 추론은 결코 자연적으로 또는 자동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공부해야 한다.


오래전 우리 집 작은애가 초등학생일 때 '과학의 날' 글짓기로 '과학기술부장관'상을 탄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암기칩을 발명해 인간의 뇌를 쉬게 해 주자'는 내용이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암기할 것이 많아 싫었는지 짐작이 갔다. 당시 나는 작은애가 어른이 되면 미래의 아이들은 달라져 있을 거라 용기를 주었지만 21세기 지금도 사각의 틀 안에 있는 우리의 아이들은 암기교육으로 괴롭다.


"정보시대에 아이들은 정보를 찾는 데 아무 어려움도 겪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정보를 해석하는 일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십 대들은 인터넷에서 읽은 것이면 무엇이든 액면 그대로 믿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누가 웹 페이지의 저자인지, 그 사람이 어떤 자격을 지니고 있는지, 해당 정보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또 다른 출처의 정보가 있는지 등을 거의 무시하거나 오직 가끔씩만 검토한다.

.. 나는 일상적 논증에 대해, 오류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해 또는 통계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고등학교에서 수업한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클루지'를 다 읽고 드는 생각은 지식에 관한 지식을 성찰하는 메타인지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클루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완벽히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다 건강에 좋지 않은 술을 많이 마시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잠을 잊은 채 TV시청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클루지를 읽었으니 그 빈도가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완벽하지 않다는 성찰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클루지 / 개리 마커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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