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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m I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인류의 흔적



독지가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부하는 것을 보면 뭉클함을 느끼고 나중에 나는 더 기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만의 생명력을 지니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되는 이것이 바로 '밈 meme'입니다. 강의에 심혈을 기울이는 교수의 강좌에 학생들이 더 많이 모이고 그 학생들 중 일부는 이를 본받아 나중에 교수가 됩니다. 그리고 후에 자신의 스승보다 더 나은 강의를 합니다. 이때 이익을 보는 것은 교수일까요, 학생일까요? 아니면 학생의 학생일까요? 이익을 보는 이는 어느 누구도 아닙니다. 모두는 죽을 것이고, 남는 것은 잘

가르치려는 생각뿐입니다. 이것이 밈이지요.




이 책은 고려대학교 핵심 교양과목인 '생물학적 인간'의 강의로 '석탑강의상'이라는 학내 우수 강의상을 18회나 받은 독보적인 내용을 대중 교양서로 정리한 책이다.


의과대학 나흥식 교수의 'What am I'란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과학과 인문학의 절묘한 설득에 빨려든다. 인문학의 오래된 질문인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에 대한 대답을 생물학적으로 심플하게 찾아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왜 이타적으로 사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본질적인 대답인지 독자 스스로 자연스럽게 알게 만든다.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은 다양한 시각의 접근이 허용되어서인지 창의적으로 읽힌다. '생물학적인 나'에 대해 환경과 인간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과학이야기는 일반인이 읽어도 충분한 흥미와 이해를 가질 만큼 재미있다.


표제에서 짐작했듯이 'What am I(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본질적인 질문)'란 이 책은 인간 본연의 생체질문으로 시작해서, 지구의 생물량 중 1만 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인간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게 해 줌과 동시에 그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지를 느끼게 한다. 또한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시대로 들어가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처해야 하는 자세까지 광범위하지만 기본적일 수 있는 지식들로 가득 차 있다.


'인간 유전자의 사냥속성'을 이용해 저자가 긍정적인 결과물로 직접 도출해 낸 실험이 기억에 남는다. 그가 몸 담고 있는 외과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습실험이었다.


10명으로 구성된 공통 보고서를 내게 하는 조별과제였는데 심사 후 조원 모두에게 동일한 점수를 주는 원칙을 고수한다. 조별과제에는 항상 방관자가 있게 마련인데 저자는 방관자의 이득을 방지하기 위해 보고서를 받은 뒤 임의로 한 학생을 콕 찍어 구술시험을 시행했다. 구술시험 점수 또한 조원 모두에게 동일하게 부여했다. 그랬더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조원들 스스로 서로가 서로의 교사가 되었고 전체적인 학습효과로 상승한 것이었다. 낙오자 없었단 얘기다.


이는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황야에서 10명 이하의 작은 집단으로 사냥을 성공시켰던 상생의 태곳적 본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실험이다.


한 명이라도 방심하면 포위망이 뚫려 먹이를 놓치고 모두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생물학적 인간'의 잠재의식을 강의에 이용한 것이다. 흥미로운 실험이었지만 나는 줄 세우기식 점수평점이 아닌 전 조원 모두의 이해하기를 유도한 이 실험이야말로 현 교육상으로 매번 지적되는 주입식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미국 행동과학연구소에서 공부 방법에 따른 학습 효율성을 비교한 결과를 보면 24시간이 지나서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공부 내용이 '강의 듣기'는 5퍼센트, '읽기'는 10퍼센트, '집단 토의'는 50퍼센트, '서로 설명하기'는 90퍼센트였다고 합니다. Modified team-based learning은 새롭게 시도한 수업 방법이었지만 그 선택은 옳았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원시인과 같은 상생을 염두에 둔 사냥 본능을 유전자 깊숙이 갖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 책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적 인간으로서의 관찰과 과학적으로 들여다본 인간의 일반적인 궁금증을 풀어 주고 있다. 혈압과 피에 대한 내용, 소변에 모든 것, 당뇨병의 비밀, 산모와 태아의 관계등 재미있게 읽힌다. 특히 '산모와 태아의 관계'는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저)'의 내용이 클로즈업되면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산모의 유전자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빨리 분만하려 하지만 태아의 유전자는 더 크기 위해 분만을 늦추려 한다. 즉 산모와 태아 유전자는 적대관계라 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결론처럼 태아와 산모 사이에도 분만 시기를 두고 충돌하는 것이다.


분만 후에 산모가 산후우울증이 흔한 이유는 태아가 머문 태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태아가 머문 태반은 엔도르핀을 분비해 영양분을 태아 쪽으로 많이 오게 만든다. 태아는 엔도르핀을 이용해 엄마를 기분 좋게 만들어 자기 건강을 챙기는 것이다. 분만하면 태반과 함께 엔도르핀이 사라져 금단현상을 겪듯 산모는 산후우울증에 빠지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아기가 젖을 빨면 엄마의 뇌에서 옥시토신과 함께 엔도르핀이 다시 분비되어 우울증이 완화된다.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의 책에서도 배웠듯이 대립되는 생명체의 끝없는 다툼은 유전자의 속성이자 자연현상일 뿐이지 유전자가 마치 인간의 사고처럼 바깥세상을 조작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학습과 훈련으로 창의성의 상징인 거대한 문화유산인 밈(Meme)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태곳적 습성을 현재까지 가지고 있으면서도 창의적인 밈으로 계속해서 진화하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내가 책을 읽고 당장 얻은 소득은 소화기관이 열린회로라고 알게 된 뒤로는 음식물의 표면적을 넓게 해 주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천천히 씹어 넘긴다는 사실이다. 물론 빠르게 씹고 소화도 잘 시키는 하이에나처럼 위산이 센 사람이 간혹 있기도 하단다.


인간의 생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내용이 있지만 과학과 더불어 설명을 해주니 이해가 쉽게 되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괴로운 이유를 지구자전주기와 맞물려 설명해 주는 대목을 읽는 데 웃음이 터졌다. 그러니 자신이 의지가 부족해 게으르다는 죄책감에서 너무 괴로워 말자.


나는 무엇보다 나흥식교수가 인간이라는 동물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도 창의적인 존재로써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문학적 요구가 좋았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임을 망각하지 말 것이며 지구의 모든 것을 인간의 관점에서 동정 혹은 독차지하려는 것 또한 대단한 자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선택어업'과 '균형어업'에 대한 내용에서 어린 물고기를 풀어주는 어설픈 동정심은 오히려 바닷속을 열등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물고기들로 가득 차게 한다. 치타도 허약한 놈을 골라 사냥하고 있다는 점을 들며 균형어업(잡을 수 있는 물고기 양을 정하는 것)만이 자연파괴를 덜한 길이라 말한다.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생태계 안에서 다른 동물들에 비해 조금 지능적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지능의 발달은 인간을 비롯한 하나뿐인 지구의 모든 생태계의 보전을 위해 문화적으로 진화(밈 meme)돼야 바람직하다. 아주 먼 훗날 이야기지만 지구도 태양도 소멸될 테니까..


조급한 인간들은 인간이 이룩한 문명으로 인해 지구에 생존하는 자연자체를 완벽하게 파괴하면서 달리고 있다. 인간이 지배자라는 인간 중심 세계관은 자연파괴는 물론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미 지구촌 곳곳이 전쟁과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은가.


만물의 영장이라 착각하는 인간도 한낱 동물일 뿐이고 때가 되면 죽는다. 생물과 환경에 대한 겸손한 태도와 함께 다른 생명체와 평화롭게 살아갈 궁리를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다.



<What am I ㅡ나흥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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