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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미술관

예술작품에 녹아있는 스토리텔링 속으로.


고전주의 그림은 '읽는 그림'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이며, 수많은 오브제는 어떠한 도상학적 의미를 갖는지 하나하나 해석해 나가며 그림을 읽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감상 전 반드시 '사전 지식'이 필요하죠.  만약 고전주의 작품들로 전시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다면 우리가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아, 생각보다 모나리자는 작구나!'뿐일 것입니다.




인간의 뇌구조는 기본적으로 스토리를 좋아한다.  인간만이 자신의 과거(지식, 논리, 감정 경험)라는 프레임에서 필요할 때마다 소환하여 지금 현재 새롭게 나타난 상황들과 의미를 스토리로 완성해 해석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주의' 미술작품은 예술가의 서사를 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작품들은 예술가가 늘 은밀히 꾸어 온 꿈들의 외적표현인 셈이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 JTBC <톡파원 25시> 등에서 활약하며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창용 씨가 자신만의 컬렉션으로 상상의 미술관을 만들어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이른바 읽는 그림책이다.  가상의 미술관인 책으로 초대하여 읽는 독자들에게 '영감, 고독, 사랑, 영원'의 방이라는 테마로 작품 속에서 예술가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관람포인트를 놓치지 않게 도와주고 있다.  서사를 품은 작품들을 저자가 풀어주니 재미있게 읽힌다.


아는 작품도 많이 나와 우쭐했고 전혀 몰랐던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들도 이야기와 함께 새롭게 만나 즐거웠다.  무엇보다 저자의 친절한 스토리텔링은 너무나 만족스럽다.  연령층 구애 없이 편히 접할 것 같다.


그동안 무심코 보았던 작품을 다르게 바라보게 도와준 두 작품이 있다.  먼저 '입맞춤(프란체스코 하예즈)'이다.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비밀리에 동맹을 맺게 된다.  독립운동가였던 하예즈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와의 동맹과 영원한 승리를 기원하는 작품을 그린 '입맞춤 1859(프란체스코 하예즈)'을 그린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국기를 연인의 옷에 투영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각 국기에 들어가는 색이 하나씩 모자라는데 연인의 옷 색상이 공유하면 국기의 삼원색이 완성된다.


또 일본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그린 '달과 까마귀 1954(이중섭)'이 알고 바라보니 새롭게 읽힌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흉조로 알고 있는 까마귀를 그린 그림이라 그가 삶을 포기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길조'로 통한다는 사실이었고 이중섭은 일본유학자 출신이었때문일본으로 건너가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염원을 그린 그림이라는 해설 때문이었다.  물론 저자의 해석이지만 타당성이 크게 보인다.  


아름답기에 비밀스러운 '입맞춤 1859'와 새는 외롭지 않다'달과 까마귀 1954'


태양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고흐전에서 찍었던 '해바라기- 두 번째 버전 1888'


개인적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참 좋아한다.  반 고흐는 평생 2천여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고 채색화만 900여 점에 달한다.  화가로써 활동한 시기가 9년 정도이니 3일에 한 점씩 쉬지 않고 그린 셈이다.  '해바라기 화가'로 유명한 고흐지만 생전에는 팔아본 작품이 단 한 점뿐인 불행한 화가였다.  


작년 겨울에 광명에서 주최한 몰입형 체험 전시 '반 고흐, 더 이머시브 전시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대규모의 미디어 아트에서 체험한 그의 작품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여운이 남아 있을 정도다.  아래는 당시 미디어 아트 안에서 찍었던 사진들이다.


미디어 아트로 감상했던 '별이 빛나는 밤 1889'
꽃피는 아몬드 나무 1888 와 해바라기 1888


이 중에서 고흐가 애정을 가진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도슨트(Docent) 이창용 씨는 '꽃피는 아몬드 나무 1888'을 꼽았다.  평생 형을 지원하고 끊임없이 활동할 있도록 후원한 동생 테오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이 담긴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동생 테오는 조카의 선물인 이 작품을 아들의 방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또한 아들의 이름도 '빈센트 반 고흐'로 지었다.  삶 속에서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은 절대적 믿음이며 굳건한 응원이다.  고흐는 조카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과는 다르게 희망을 안고 건강하게 삶을 잘 살아가길 바랐을 것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데 유난히 밝은 태양 뒤의 그림자가 짙듯이 고흐가 지나 온 아픔, 슬픔,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꽃피는 아몬드 나무 1888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무엇일까, 기다림


'기다림 1853~1861(장 프랑수아 밀레)'


그 밖에 밀레의 '기다림 1853~1861(밀레)'이란 작품은 저자의 스토리 소개가 없었다면 아마 눈길도 주지 않았을 작품이다.  작품은 구약성서 '토빗기'를 바탕으로 추정하여 그려진 작품인데 생활고로 힘들어진 토빗은 어린 아들에게 멀리 떨어진 친족에서 맡겨둔 돈을 찾아오라 심부름을 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고 무슨 변고를 당한 것이 아닐까 매일 저녁 죄책감에 아들을 마중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밀레'는 화가라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고 가족들은 그의 직업을 인정하며 시골을 떠나도록 응원한다.  하지만 성공한 화가가 되기까지 20여 년이 흘렀고 그를 그토록 기다렸던 가족들을 그는 무덤 앞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 죄송함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저자가 이야기하고 나서 이 작품을 보는데 밀레의 회한이 느껴진다.  가족을 다 잃고 얻은 영광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또 한 명의 예술작가의 스토리는 '외로움과 고독'의 질병으로 철저히 물들어간 뭉크의 이야기다.  그림만 익숙했지 그의 생애를 이제라도 알게되어 다행이었다.  '절규 1893'라는 작품 이해도 미안하지만 처음 접했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약간의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나는 불안으로 몸을 떨며 서 있었다.  그 순간 자연을 꿰뚫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았다." - 뭉크


'절규 1893(에드바르 뭉크)'
'태양 1909 (에드바르 뭉크)'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던 뭉크의 불안하고 초조한 심리 상태를 나타낸 '절규(뭉크)'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다.  그는 평생 온갖 병을 달고 살았다(류머티즘, 폐결핵, 기관지염, 뇌졸중, 총상, 열병, 환각, 스페인 독감, 공황장애, 우울증 등).  삶 자체가 죽음과 연결 지을 만큼 우울과 절망으로 세트 된 셈이다.  계속되는 사랑의 실패와 가족 대부분이 세상을 떠나고 남은 여동생마저 정신병원에서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그려진 '절규'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려 된 그림이라는 사실에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그런데 '태양 1909'도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상반되어 어리둥절할 뿐이다.  


'태양 1909'는 바위 위로 해가 힘차게 떠오르는 모습이다.  저자는 고통스러운 자신의 삶 속에서도 행복을 꿈꾸며 버티고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정신병원을 오가던 뭉크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충분히 병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는 더 이상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우리가 예술작품을 통해 공감을 하는 것은 내면의 감정과 충돌되지만 이내 이해하고 흡수되고 파장되기도 하면서 위로받는다.  이처럼 독자의 해석은 예술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넓게 확대되고 깊어질 수 있다.  



<이야기 미술관 / 이창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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