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서 '깜보야!'라고 부르니까 화장실 앞에 있던 깜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나에게 다가온다. 그 모습이 그야말로 오직 나만을 보기 위해 사투하는 영화의 한 장면 이상으로 감동을 준다.
깜보를 보는 나도 눈물이 절로 나왔다. 깜보가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깜보를 껴안았다. 아마도 깜보는 오직 나를 보기 위해서 명줄을 놓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깜보야'라고 부른 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저승길로 가던 자신의 걸음을 마지막으로 다시 되돌린 것은 아닌지 모른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 특별한 감정은 나와 깜보만이 나눌 수 있었던 감정이다. 깜보와 그렇게 만난 다음 날 깜보는 이승을 떠났다.
전자 출판물 '얼룩소'란 곳에서 '에어북'공모의 선정작품이다. 브런치 이웃분이기도 하고 철학에세이를 다루는 분이 어떤 시선으로 반려견과 생활을 했을지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은 '유기견(깜보)'을 집으로 데려와 10년 6개월을 동거하고 떠나보낸 저자(견주)의 감정을 담은 이야기다. 저자는 영화 '베일리 어게인(2017년 상영)'에서 개가 4회 차 환생 끝에 자기 주인을 찾아갔던 것을 비유하며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있는 깜보를 글로써 환생시켰다고 고백했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흐려지게 마련이지만 활자화된 저자의 글이 언제 어디서 읽든 과거라는 공간 속에서 활기찬 깜보가 소환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집안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다.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반려견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상호적이고 상대적이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책에서도 말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해서 인간과 다른 개의 행동 양태나 반응, 생각하는 방식등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개통령이라 불리는 강형욱 씨가 프로그램에서 말썽을 피운다며 지적된 개들을 진단하다가 결국 견주들을 야단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주인공 '깜보'입장에서 견주를 생각해 보니, 날 많이 아껴주고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견주를 만나 행복하게 살다가 갔다고 고마워할 것 같다.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대장을 보기 위해 기다려준 깜보의 모습과 저자의 눈물이 담긴 대목을 읽을 때는 감정이입이 되어 울컥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깜보는 굉장히 영리하고 활발하며 한 사람의 견주(대장)만을 위해 충성하는 지고지순한 아이였다. 개들은 주인을 지키려는 습성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산책을 할 때 항상 앞장선다고 한다. 깜보는 특별히 훈련을 시키기 않았음에도 주인의 느린 보폭을 맞춰 다섯 폭 정도 앞장서서 걸었다. 차멀미 경험 이후 장거리 여행이 있으면 스스로 음식조절까지 조절했다는 글을 읽었을 때는 참으로 신기했다. 또 반려동물 입장불가 숙소에서는 한 번도 짖지 않았다고도 했다. 주인의 눈치를 파악하고 아침까지 소변도 참은 일화는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영리하고 나만을 따르는 개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가 몽골에서 1년간 깜보와 헤어져 있을 때 아마도 상태가 많이 악화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대장이라 믿는 사람하고만 산책하던 활발한 아이가 답답한 집안에서만 있었으니 우울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생사의 길은 같다. 죽음을 통해 존재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굳이 수치를 검증하려 하지 않아도 생활 주변에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개들이 적지 않다. 또한 연관산업이 발전하지만 아직도 반려동물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적 배려나 제도적 장치는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동네에 '개장수'가 돌아다녔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대였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소유물 격인 애완동물이란 용어가 먼저였고 이후 사람과 서로 의지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반려동물'이란 말은 최근 몇 년 사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 잡혔다. 그러다 보니 과도기랄까 휴가철마다 버려지는 동물들이 꽤 발견된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들린다.
나는 어려서 개를 많이 길렀다. 이른바 잡견으로 여러 마리를 키워서 살림이 보태는데 일조했다. 삶의 동아줄이 돈이라는 가치관을 가졌던 엄마는 맞벌이로도 부족해 달동네에 살면서도 개를 키우기로 결정하셨다. 개밥을 주는 것도, 개똥을 치우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귀찮고 힘들었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집안에서 존재감이 없이 자랐던 나에게 충성심이 강한 개들에게는 대장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잡종견이라 할지라도 개들에게는 엄연한 서열이 존재했다. 가족 중에서 나를 가장 많이 따랐고 좋아했다. 나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오는 개들의 검은 눈동자들의 느낌이 부담스러웠지만 사랑받는 느낌이 더 컸다. 어쩌면 나에게 개에 대한 기억은 유년시절 일찍이 깊은 애정과 이별을 동시에 배운 최초의 사건이기도 하다.
아무리 팔 목적으로 키우는 개일지라도 성견이 되어 개장수와 셈을 치르고 끌려가는 모습을 본 날은 슬퍼서 많이 울었다. 사람만 봐도 사납게 짖어대던 개들이 이상하게도 개장수 앞에선 꼬리를 숨기고 끙끙대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라 가슴 한편에는 아픔이 있다. 얼마 전 개식용금지법이 통과되어 개인적으로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줄었다.
반려동물을 입양해서 키우는 인구는 갈수록 증가할 것이다. 그저 외롭다고 절대적 사랑을 받고 싶어서 입양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가족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책임질 각오가 먼저다. 그게 인간적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