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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사: 근대

어느 나라도 우리의 자주와 자유를 원치 않는다


"세도 정치기에 매관매직은 안동 김 씨에 의해 자행됐지만, 이 시기 매관매직의 주범은 고종과 민비였다.  500년 조선의 역사 중에 왕과 왕비가 관직을 팔았던 유일한 시대가 이때였다.  이들은 그 와중에 구식 군인들의 월급을 떼어먹기까지 했다.  임오군란은 민 씨 정권의 부정부패와 개화정책에 반발하여 구식 군인이 들고일어난 사건이다.  성난 구식 군인들과 빈민들의 구호는 다음과 같았다.  


"민비를 잡아 죽여라."


(중략)


민비의 요구로 조선에 들어온 청군 사령관 위안스카이는 지금의 용산에 터를 닦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용산의 청군 기지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주둔지가 되었고, 해방 이후 70여 년이 넘은 지금까지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울 한복판에 무려 140년 동안 외국 군대가 주둔하게 된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민비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읽을수록 암울하고 답답하고 알수록 화가 나는 역사다.  학창 시절, 망해가는 근현대사를 공부하며 외울수록 어찌나 울화통이 터지는지 답답함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국가가 무능하니 그 안의 백성들은 개돼지만큼의 존엄도 갖지 못하던 시기였다.


저자 황현필 씨는 역사바로잡기 연구소를 설립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데 열정적인 분이다.  대중적 강의를 위해 현재  '황현필 한국사' 유튜버 채널 운영 중이며, 구독자수가 100만이 넘는다.  나는 가끔 역사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그의 채널을 보며 역사의식을 보충하곤 한다.


그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역사부터 올바르게 알자는 취지로 책을 발간 계획 중이다.  이 책은 시리즈물의 첫 번째로 흥선대원군의 등장(1863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수없이 분분한 역사물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시대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 좌빨이라며 토시를 달 사람들을 향해  쐐기를 박으며 힘차게 시작한다.  


"역사가의 해석을 듣기 싫거든 사료를 찾아보라"  






일본은 우리 역사를 식민사관(정체성론 중세 부재론)으로 해석하여 우리나라의 역사에는 근대(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확실하게 느껴지는 시기)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 민족 역사의 무지를 뜻하며 조선 후기에는 이미 시전상인, 공인, 사상, 독립수공업자들이 자본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또한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란 책에서도 말하듯이 보편적 역사법칙에 따라 외부에서 이식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했음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흥선대원군 이전의 역사와 이후가 많이 바뀜에 따라 '근대'를 흥선대원군부터 1910년 8월 29일 경술년 국치일까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판단했다.  이후 집필 예정인 저자의 역사 시리즈는 이 책을 필두로 일제(1910~1945년), 해방정국(1945~1948), 현대(1948~ 현재)로 예정되어 있다.  


이 책은 그의 유튜브 강의를 듣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투명하고 직설적으로 진행된다.  무능한 정권과 일제의 참탈이라는 역사 앞에서 비분강개형 역사서술이 펼쳐지지만 시각이 분명할 뿐 근거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료를 바탕으로 하여 저자가 이끄는 서사의 힘은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듯 흥분된다.  그는 후손들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분명하게 제시해 준다.  


역사는 '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라고 말한다.  문자로 재구성한 과거이야기란 뜻이다.  역사가의 사명이라면 그 시대의 문명과 과거를 통합 관찰하여 인간과 권력의 관계를 밑그림 삼아 시대를 그려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하여 현존하는 실체적 사실(야사 포함)과 자신의 감상을 덧붙여 다양한 해석을 붙인다.  이는 헌법으로 보장된 표현의 자유다.  이러한 독립된 자유는 연극이나 뮤지컬, 드라마나 각종 영화로 퍼져 나간다.  우려되는 것은 개인의 그릇된 재평가로 인한 각색으로 말미암아 대중들이 팩트로 인식하는 현상이 생길 때다.  그리하여 철저한 문헌 사료의 고증이 참고되지 않은 역사물들이 비판과 질타를 받는 것이다.


조선 말기부터 이 땅의 백성에게는 임금이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에겐 무능하고 자주적이지 못한 고종이 있었다.  왕국의 군주였음에도 고종은 아버지에게, 부인인 민비와 그 집안의 여흥 민 씨에게 기댔다. 그래도 안 되겠으면 자신이 의지할 곳을 나라밖에서 찾았다.  국고를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인식하고 스스로 매관매직에 앞장서 자신의 내탕금을 늘린 군주였다.


고종이 나름대로 국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측면으로 애써 평가하려는 이들에게 저자는 따끔한 일침을 날린다.



고종은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며 나라까지 잃었음에도 그는 대단히 풍족하게 살았다.  국권피탈기 고종의 행동들은 그저 황제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된 후 고종의 독립운동이란 것들은 모두 자신의 황제권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고종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최소한 잃어버린 강토의 회복과 일본의 식민통지 아래 신음하는 만백성의 자주성 회복을 천명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기껏 한다는 것은 유생들에게 편지나 보낸 것이었다.


"임병찬아, 나를 다시 황제로 만들어다오."



백성의 생명과 재산은커녕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이 땅의 '열등한' 백성들은 '우월한' 일본인 발밑에서 식민 백성의 길로 들어서며 근현대사는 끝난다.  


모든 망조의 뿌리는 내부에게 자란다.  스스로 파괴되는 과정에서 맥없는 숨결을 탐지한 외부의 힘이 마지막 숨통을 조이려 들어올 뿐이다.  침략이다.  우리의 역사의 모든 외침이 그랬다.  우리 스스로 무너지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하지만 아픈 역사도 우리 역사다.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며 나라에 대한 비판의식은 가질 수 있지만 무조건적인 비하 또한 역사에 대한 억지다.  비록 우리의 근현대사가 속상하고 가슴 아프지만 속살 깊은 상처의 기억을 통해 깨달은 바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근현대사를 다룬 이 책에서 기억해야 할 정신은 비록 패배했지만 백성들이 무엇으로 고통받는지 또 무엇을 대신들에게 바라는지 정확하게 전달된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이라 할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은 핍박받았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혼란과 대립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폐정개혁'을 제시하며 지혜를 모았다.  연대와 협동정신만이 국가를 살리고 백성을 위하는 길임을 확실히 전달한 역사다.


제1차 봉기 당시 동학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했음에도 외국 군대의 철수를 위해 자진해산을 하는 아량을 보였다.  제2차 봉기 때는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했다.  설령 동학농민군이 우금치를 넘어 경복궁까지 진격하여 일본군을 몰아냈다고 하더라도, 동학농민군은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학농민운동의 반봉건 정신은 갑오개혁에 반영되어 신분체 철폐 등에 큰 영향을 끼쳤고, 동학의 반외세 정신은 이후 항일의병 운동의 토대가 됐다.  동학농민운동은 일종의 쿠데타도 아니었고,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해결을 위한 생존권 투쟁도 아니었다.  동학농민운동은 나라 사랑과 백성 사랑이라는 큰 가치를 지닌 아름다운 농민운동이었다.  




남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은 주도권을 뺏기는 일이다.  어느 나라도 우리의 자주와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이것 하나만이라도 챙겨서 각성하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의 자주를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일에는 우리 모두가 가장 예민하고도 과격하게 반응해야 한다.  전쟁할 수 있는 힘은 평화와 공존한다.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 나라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자주국방이다.  


우리는 아픈 과거를 가졌지만 강한 미래의 역사로 후손에게 남겨줄 수 있다.  



<요즘 역사: 근대 / 황현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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