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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노동, 진짜 노동

가짜 노동이 진짜 노동이 되는 사회로

OECD 국가들의 시간과 성과에 대한 개요를 나타낸 표(1990~2012)



이 표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사실을 보여준다.  가장 적은 시간 동안 일하는 곳에서 근무시간당 생산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이 표는 몇 시간을 일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하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파킨슨의 법칙을 매우 잘 설명하는 독립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근무시간을 늘리는 것은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과잉 노동은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라는 '관료제 노동'의 민낯을 까발렸던 '가짜 노동'은 우리에게 많은 놀라움을 준 책이다.  '가짜 노동'이란 책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었던 노동의 실체를 낱낱이 보여주었고 가짜 노동에서 벗어나 진짜 일을 하며 노동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여기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가짜 노동'이란 업무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속이나 의미가 없는 행위를 포괄적으로 말하는 업무정의라 할 수 있다.


최근 출간된 '진짜 노동'이라는 책까지 읽고 나니 전작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드디어 해소된 기분이라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느낀 종합적인 감상을 적어본다.


'가짜 노동'의 서막은 사회적 통념을 깨는 시도인만큼 반박할 수 없는 폭넓은 시야와 지식을 갖춘 인류학자 '데니스 노르마르카'와 철학자인 '아네르스 포그 엔센'이 동원되어 실질적인 통계 자료 외에도 노동 전문가와의 대화, 다양한 조직에서 가짜 노동을 깨달은 사람들의 솔직한 인터뷰를 통해 왜곡돼 있던 노동의 실체를 만나게 해 주었다.  우리는 여기서 노동의 본질을 찾았고 신기술과 자동화라는 업데이트 과정에서 놓치고 있었던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위 그래프('진짜 노동' 발췌)는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전환되면서 짧은 근무시간일지라도 이전과 동일하거나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표라 할 수 있다.  파킨슨의 법칙처럼 현대인들은 시간에 맞춰 일을 하고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파킨슨의 법칙은 영국의 해양사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이 발견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1955년 '이코노미스트'에 자기 생각을 요약해 발표했고 그의 발상과 가설에 붙여진 개념이다.  


"일은 그것이 완수에 허용된 시간을 채우도록 늘어난다."


당시 해양사학자이자 군대 장교로 복무했던 그는 대형 군함이 62척에서 20척으로, 장교수는 31%까지 감소하였음에도 기지에서 일하는 인력은 40%가 증가하고 특히 행정팀은 78%까지 급증하는 희한한 사실에 주목한다.  관리 조직의 규모도 함께 줄어들어야 하는 때에 오히려 관리직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관료제의 도입이 원인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보다 앞서 1932년에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세계대전 동안 생산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증대상황을 확인하고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기존 대비 절반 이하의 노동시간으로도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하루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했고 많은 지식인이 동의했지만 종전 이후 실현되지 못했다.  이는 코로나 펜더믹시절 디지털 회의로도 충분한 소통을 경험했어도 해제이후 대면식 회의가 재기된 것과 비슷한 이유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신기술의 발달로 효율성 향상 및 자동화로 인해 업무를 훨씬 빨리 완료할 수 있음을 자각함에도 근무시간을 동결하는 쪽으로 결정되고 있는 점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러셀은 신기술과 자동화는 작업을 용이하게 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다 큰 여가를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늘날 그것들은 작업 단계를 감시하고 오히려 노동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신기술로 인해 게으름을 피워볼 기회가 늘어나기는커녕 일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일을 하게 되고, 관료제에 숨은 가짜노동자들은 무모한 게으름만을 강요당할 뿐인 것이다.  현대의 가짜노동의 양상은 휴머니티에 등을 돌린 형태라 할 수 있다.


가짜 노동이라는 시간의 늪에 놓여있는 이들의 업무환경은 아래와 같다.('진짜 노동' 발췌)


만일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10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10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일에 25시간이 주어진다면 놀랍게도 그 일은 결국 25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기만적이거나 의도적으로 속이려 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달성해야 하는 업무는, 써야 하는 시간에 비례해 중요성이 증가하고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잉여 인력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근무시간은 뭔가에 사용돼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대한 천천히 일하고, 삼중으로 확인하고, 잠깐씩 딴 데 신경을 분산시킨다.  그러다가 어디까지 했는지 깜빡해서 다시 시작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세부 사항을 연마하고 나면 드디어 목표에 도달한다.  그리고 당초 예상보다 2배 혹은 3배의 시간이 더 걸린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우스꽝스럽게 들릴 것이다.  



우리는 산업화의 발달과 일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조직이 늘어나고 세분화된 일의 양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복잡성을 일종의 자연법칙처럼 간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한 확신은 가짜 노동을 양상하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짜 노동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리자의 직책을 맡고 있는 고학력자들이 가장 무의미한 업무를 한다는 갤럽 조사를 근거로 말한다.  따라서 행정, 관리 및 감독 업무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가짜 노동 또한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인 컨설턴트 회사인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 내놓은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세상은 복잡한 곳이며, 조직 내의 모든 문제가 직원들의 책임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조사한 1,000개가 넘는 조직에서 직원들은 실적적 업무 수행 능력이 억눌리고, 일이 지연되며, '부가가치가 없는 업무'를 수행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복잡성(또는 복잡성의 정도)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고학력 행정관리에서 일하는 고급인력들임에도 실질적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조사에 응한 복잡성의 조직에 일하는 기업의 40~80%에 해당하는 시간을 그들은 낭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지만 가치 창조와는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가짜 노동이다.


고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고치며 힘들어하는 그들의 노동은 무엇인가.('진짜 노동' 발췌)


모든 조직들은 늘 수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제안과 평가, 전략, 발표 및 권장 사항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무언가를 원하거나 어딘가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말하는 위원회, 프로젝트 그룹, 이사회 등을 구성한다.  실제로 무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족하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은 구체적인 사례 보고서, 권장사항, 조사 또는 결론이 있는 분석 작업이나 어떤 지역에 대한 검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검토 및 보고서는 항상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권장 사항으로 마무리된다.


(무언가에 대한) 가시성 향상

(무언가에 대한) 더 많은 지식

(무언가에 대한) 더 나은 문서 작업

(무언가에 대한) 더 많은 집중

(무언가에 대한) 더 나은 개관



책을 읽다 보면 현대 조직에서 만연한 프로젝트 중심의 문화가 얼마나 비효율적인 가짜 노동을 생성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끼게 된다.  많은 조직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을 관리하고 진행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직원들에게 불필요한 압박(회의, 문서작업, 복잡한 보고체제)으로 이어지고 실제로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진짜 노동'에서는 가짜 노동과 진짜 노동을 구분하고 이를 위한 비판적 태도와 새로운 가치 개념을 탐구하도록 돕는다.  불필요한 회의, 과도한 문서 작업, 목적이 분명치 않은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가져야 하며 진짜 노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직원과 조직 내 한계설정 방법도 알려주고 있다.


무엇보다 관료제의 병폐인 복잡성의 정리는 가짜 노동을 없애는 중요한 시작이다.  그것은 조직원들이 규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가짜 노동을 줄이고 진짜 노동에 집중할 수 있는 첫 단계다.  불필요한 규제와 활동을 합의함으로써 자율적인 규칙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진짜 노동' 발췌)



"필요한 것은 경영진이나 관리자들이 관료주의로 인한 조직의 소화불량을 피하기 위해 기존의 조항을 없애기 전에는 새로운 절차나 새로운 규칙 또는 새로운 복잡한 '표준운영절차 SOP'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도입하려는 새로운 조항보다 더 많은 조항을 제거하자.  이때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는 일은, 더 이상 누구도 유지하기를 원하지 않는 과거의 규칙을 도입했던 바로 그 사람이 담당하는 것이 좋다.  이런 식으로 탈관료주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새로운 규칙을 추가하는 것을 자제할 수 있고, 그 결과 조직은 자연스러운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다.   


몇 년이 지나면 규칙을 무효화하는 실험도 해볼 수 있다.  아무도 적극적으로 요청해오지 않을 때 중복되는 업무와 규칙이 자동으로 없어지도록 말이다.  이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만료일에 도달한 규정이나 관련 항목을 주기적으로 보고하고, 이것이 유지되기를 원하는 직원이 여전히 존재하는지 또는 비즈니스를 전혀 창출하지 않은 고객이지만 9개월 동안 정기적으로 그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직원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런 일들은 대개 어느 시점에 누군가가 무언가를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입했던 불필요한 업무다."



이외에 우리 스스로 가짜 노동을 줄일 수 있는 조직 내의 제안은 많을 것이다.  조금 뻔뻔해지고 당당해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는 현실에서 갈등을 기피하기 때문에 가짜 노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시간 낭비로 인한 무기력을 감내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조직의 윗선의 설득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방법을 먼저 강구해야 할 것이다.  더 큰 의미에서 조직의 이익, 직원의 만족도, 회의가 원하는 효율성을 제안해야 한다.


인간은 뭔가 유용하고 의미 있는 일을 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진짜 노동을 원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시간이 생산성이라는 등식이 규범화되면서 긴 노동시간만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인해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묶여 지내고 있다.  하지만 노동 생산성은 낮은 편이다.  가짜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데이터 사업 회사인 IIH 노르딕은 직원들이 더 적게 일하면 더 많이 생산과 매출을 일으킨다는 것을 깨닫고 주 4일제 노동을 도입한다.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았고 스트레스 지수는 최저 수준을 보였다.  조직 문화의 가장 바람직한 샘플사례로 거론되는 노르딕은 개인과 조직이 함께 만족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왜 그런 일을 하는지는 까먹은 채 KPI를 통한 결과지표만 쫓아 일을 하고 있다.  직원들은 어떤 목표 달성을 상사와 합의를 했고 이 합의는 생산 또는 성과에 관한 무언가를 말해준다는 개념의 늪에 빠져 실제업무를 잊은 채 숫자에 가려진 전문성에 묻혀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내 것으로 만드는 힘은 현실에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 고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가 알아서 바뀌기만 기다리기엔 너무 늦다.





<가짜 노동 / 진짜 노동 _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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