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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어도 읽습니다

폐문 독서와 마주해야 하는 이유


교육과 교양을 비교해 보면 교육은 대상이 있어 주어진다면, 교양은 스스로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교육은 학제에 따라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나 교양은 비체계적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쌓을 수 있다.  단선적인 교육은 내적 성장과 외적 성장을 추구하나 교양은 내적인 성장에 치중한다고 본다.  교육의 내용은 문화유산이든 학생의 경험이든 교과 내용의 분량에 한계가 있으나, 교양을 구성하는 요소는 사람에 따라 폭과 깊이가 다르다.  예를 들어 교사라면 교과 외 지식을 자기 연찬을 통해 얻어 형식지와 암묵지를 스스로 쌓아간다.




정조시대 규장각 감사관으로 활약한 이덕무는 '책만 읽는 바보(간서치)'로 잘 알려져 있다.  이덕무는 지독한 독서 편력만큼 빼어난 문장 실력, 탐구정신, 기록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인물로 조선 최고의 문장으로 꼽힌다.  


이 책의 저자인 노충덕 씨는 간서치로 불렸던 이덕무를 롤모델로 삼아 자신의 인생을 독서에 올인했고 독서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이 시대를 읽는 방법을 책에서 찾았다고 고백한다.  


책 제목은 지극히 가볍고 평범하게 선정되었지만 내용은 묵직하고 간단하지 않아 읽힘이 더디다.


이 책은 독서의 중요성을 모든 면에서 강조하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독서를 통해 개인의 성장 및 관계의 이해, 각 분야의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독서의 장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독서인구 통계치를 보면 늘어나기는커녕 매년 줄어들고 있다.  빠른 답변에 갈망하는 현대인들에게 손쉽게 지식의 질의에 답변을 주는 쳇 GPT의 등장까지 독서인구의 추가 감소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하지만 쳇 GPT는 텍스트만을 학습하기 때문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식이나 맥락적 이해가 부족하다.  특히 틀린 정보에 대해서도 그럴듯한 답변을 제공함으로써 질의자의 비판적인 추가적인 지식이 필요한 사항이다. 무엇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지식의 통찰력과 철학적 역량이 미흡하다.  결국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탐구하는 마음으로 느린 독서가 답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도서관처럼 느껴지는 저자의 방대한 지식의 열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책을 읽으면 사회, 역사, 인문, 교양, 정치등 누르면 연관 책들의 문장이 족집게처럼 바로 튀어나올까.  자판기 같은 지식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인생이라며 탐구하듯 삶의 방법을 책에서 찾는다고 한다.


저자는 독서가 주는 선한 영향력을 강조하며 개인의 성장 및 사회를 이해하는 역할에 책을 중요한 도구로 활용됨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의 성장에 있어 독서만큼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나아갈 방향을 찾게 해주는 도구도 없을 것이다.  개인의 인식 확장은 사회라는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함은 분명하다.  삶의 깊이와 인격적 성숙을 갖춘 사람이 많을수록 독립적이고 긍정적이며 인문적 용기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박한 저자의 문사철이 녹아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움직이는 현재를 읽는 것에 막힘이 없었는데, 광범위한 지식의 전달에 비해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독자의 한계가 느껴져 나는 솔직히 힘들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책들을 몇 권정도 친절하게 소환하고 저자만의 자세한 해석이 곁들여졌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  


방대하게 소개되는 책들의 교훈, 그 책 속에 담긴 배경지식, 결론으로 이어지는 함축된 단어들까지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흔히 사용하는 일상적인 단어의 교환 없이 무서운 선생님이 가르치는 교실에 앉아 수업받는 기분이랄까.  선행학습 없이 도전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던 것 같다.


저자는 확실히 다독으로 인한 역사, 정치, 사회, 교육문제에 대한 대안(증거)이 확고했다. 역사적 사건을 통해 현재의 사회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관련 책을 증거처럼 여러 권 제시했다.  참고해야 할 수많은 책들의 목록을 제안받는 기분이었다.  


철학의 흐름을 돕기 위해 저자가 할애한 '문제의식에서 결별하기' 쳅터의 한 문장을 인용한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니체의 '낙타'는 죽었고 권리만 앞세운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생각은 그리스나 중국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중위도 지역에서 발생한 사상이리라.  기후변화가 거의 없는 열대기후 지역에서 발생하기 어려운 사고다.  철학사 개관의 기준으로 여길 수 있는 사이토 다카시의 '철학 읽는 힘'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발전시킨 아랍 세계의 역할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옴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어가며, 살인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왜 아리스토텔레스가 공개되지 않기를 바라는 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서 독자는 니체의 인간정신의 3단계 중 하나인 '낙타'를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또 그리스와 중국의 기후상황이 영향을 끼치게 한 사상이 어떠했는지 파악하고, 사이토 다카시의 책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알고 비교해야 한다.  옴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책에서 중세의 수도원에서 일어난 기괴한 연쇄살인의 원인이 '웃음'이었다는 것이 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연관되어 있는지도 당연히 알고 있다는 전제다.


동서양의 철학을 개관한 내용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반갑게 소환된 반가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의 답변마저도 '에포케(epoche)'로 짧게 결론지었다.  에포케가 무슨 뜻인가 구글에서 찾아보니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한 말로써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다 안다고 믿는 '판단 중지'를 의미했다.  그제야 나는 이해의 탄식이 나왔다.  아마 이후부터 나는 모르는 문장과 당장 이해 못 할 단어는 모르는 채로 무심히 넘겼던 것 같다.  아무튼 어려운 독서였고 더 많은 독서와 문사철에 대한 이해가 시급했다.


고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변화에는 일관되게 흐르는 질서가 있다.  그 질서를 가장 높은 차원에서 관념으로 포착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내놓은 생각을 읽고 나의 교양으로 독립성을 찾는다.  그것이 독서에서 얻는 소득일 것이다.  저자의 해박한 독서가 극소수의 지식인들 외에 많은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되길 개인적으로 소망한다.


나의 지적 한계는 접어두고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많았다.  무엇보다 저자가 전달하려는 핵심 가치가 '독서'였기 때문이다.  독서는 단순히 취미를 넘어서 삶을 대하는 가치관을 세우게 하고 일상을 풍요롭게 바라보게 한다.  독서를 하는 시간, 자세에 대한 저자의 기준은 명확해서 좋았다.  


저자는 순수하게 책 속의 작가와 소통하기 위해서 폐문(閉門)을 선택함으로써 누구의 방해도 거부했다.  저자의 다독은 탁월한 폐문의 결과였고 생각해 보면 스스로 깨닫는 시간 속 자신이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사범대와 교육대학원에서 지리를 공부하고 교직에 몸 담았던 만큼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과 아쉬움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 좋았다.  한국 교육의 현주소와 교수에게 필요한 자질, 그리고 가정에서 훈육해야 하는 교육 역시 명확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역사에 대한 탐구로 뽑아준 책들의 소개는 편향될지도 모를 나의 지식의 늪을 구제해 주었다.  


이 책을 읽고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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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어도 읽습니다 / 노충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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