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관계의 장이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고...
독고 씨가 들어줘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그거예요."
"뭐가요?"
"들어주면 풀려요."
(중략)
"짜몽이 그러는데... 게임하면서... 삼각김밥... 먹기 좋대요. 아들 게임할 때... 줘요."
(중략)
"아들한테…… 그동안 못 들어줬다고, 이제 들어줄 테니 말……해 달라고…… 편지 써요.
그리고…… 거기에 삼각김밥…… 올려놔요."
- '삼각김밥의 용도' 본문 中
오랜만에 훈훈하고 재미있게 웃으면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몰입하다 콧물 흘리며 운 한국소설이다. 청파동 어느 허름한 골목길에 자리 잡은 작은 편의점(ALWAYS)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처음엔 단편소설집인 줄 알고 읽다가 편의점에서 이어지는 개개인의 일상사, 인생사를 접하면서 스멀스멀 가슴 밑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마음이 따스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코로나시국에 나온 소설집이다. 편의점의 알바 시점에서 손님들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편의점 상품을 소재로 이어지는 테마 에피소드는 저자의 센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읽고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이 세상은 사람들의 편견으로 오해가 시작되지만 결국 소통을 통해 사랑으로 완성된다"는 점이다. 그 소통의 방법은 상대와 마음을 나누는 작은 실천일 테다.
소설을 자연스럽게 읽히는 방법을 아는 작가를 만난 것 같다. 치매기가 살짝 있는 70대 편의점 여사장의 지갑을 서울역 노숙인이 찾아주면서 그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런데 그 곰 같은 노숙인은 알콜성 치매로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 과거 역사선생을 했던 편의점 여사장은 지갑을 찾아준 그에게 선의를 베풀고 싶어 한다. 편의점 야간 알바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소설은 그렇게 자신의 재산을 사회적 약자와 같이 나누며 살고자 하는 정의로운 정년퇴임 선생님의 마음을 느끼며 따뜻하게 시작한다.
그녀는 어느 악덕 편의점 사장들과는 다르다. 후미진 골목의 편의점이라 손님이 북적이지 않는 곳임에도 직원들의 대우는 철저히 준수하며 지급한다. 직원들 입장에선 편한 곳이다. 솔선수범하는 여사장과 직원관계는 존경하는 선생님과 학생같이 인간미가 느껴진다.
덩치 크고 어눌하고 과거를 기억 못 하는 곰 같은 '독고'씨가 알바로 들어오고 이야기는 펼쳐지는데 마치 하나의 점이 봉우리가 되고 그 봉오리가 꽃이 피는 봄처럼 편의점에서 벌어진 자잘한 인생사들이 끊김 없이 흡입력 있게 읽힌다.
이 이야기는 알콜성 치매 '독고씨'가 들어가면서 붙여진 '불편한 편의점'이고, 편의점과 연결된 가려진 사람들의 인생사(편의점 알바를 하며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던 주간타임 아가씨, 아들과의 관계단절로 속 태우는 오여사의 하소연, 퇴근길 혼술족, 진상고객, 편의점 사장의 허당아들등)가 웃다가 울게 만든다. 그리고 정말 궁금했던 알콜성 치매 독고씨의 과거가 밝혀지는 독백이야기를 끝으로 이 소설은 끝나게 되는데 책을 덮을 즈음엔 나도 모르게 슬픔과 감동으로 눈물을 떨궜다.
소설은 압축된 여러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 있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모두 살아보지 못했기에 소설로 충분히 경험할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인간은 편견 덩어리다. 내 입장에서 내 주장을 펼치며 나의 의견을 관철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삶은 한 사람의 주장으로 덮일 공간이 아니다. 관계의 장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편의점 _ 김호연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