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제약사가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려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100개 넘은 물질을 실험하지만 모두 실패했고,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은 바이오젠의 아두카누맙만 논란 속에서 허가했다. 많은 연구자가 이 결정을 비판했고, 유럽 규제 당국은 유효성 등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제약사가 낸 승인 신청을 거부했다.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탓에 치매 치료제 개발은 무척 어려운 과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치매 예방약으로 잘 나가는 약이 있다. 바로 글리아티린으로 알려진 콜린알포세레이트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2019년에 무려 3525억 원이 건강보험에서 지출됐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식구들이 간단하게 요기할 밥상을 차린 뒤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켠다. 잠결에 들리는 방송매체의 소음은 나의 기상독촉보다 식구들의 현실복귀가 빠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는 정규방송인 뉴스가 나오기까지 최면술의 암시처럼 같은 표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광고가 어제와 똑같이 흘러나오고 있다. 나는 며칠 전 성분은 같다며 약사선생님이 추천하신 잇몸약을 구입했지만 혹여나 더 효과가 좋지나 않을까 잇몸약 광고를 보며 잠시 흔들린다.
현대의 광고는 비단 의약품뿐만 아니라 개인의 비판적 사고력을 둔화시키기에 충분하다. 광고 상품을 복용하거나 구입하면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을 거라 현혹하기도 하고, 지금처럼 방치하며 살면 안 된다며 위협이나 겁을 주기도 한다. 나약한 소비자가 되지 않으려면 그저 전원버튼을 끄는 수밖에 없지만 사방에 포진된 접근성 좋은 매체 속 광고의 공격까지 막을 도리가 없다.
이 책은 2013년에 출간 이후 10년이 지나 달라진 사회 및 의료 환경을 고려하여 새롭게 필진을 꾸려 작업한 개정 증보판이다. 필진인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는 1987년 6월 항쟁 때 민주화를 위해 뜻을 모은 약사들이 모여 1990년에 창립한 단체다. 제약사가 광고하는 약효의 효능만 믿고 비판 없이 약제를 구입하는 수많은 소비자를 위한 노동조합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건약'은 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소비자의 건익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대형 제약사와 소송 전을 치르기도 하고 효과가 미약한 약제에 대한 퇴출운동도 하는 등 말 그대로 건강사회를 위한 믿음직스러운 파수꾼 역할을 하는 단체다. 이 개정 증보판도 그 일환의 하나로 보인다.
다행히 우리는 광고가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이용한 제약사의 홍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수많은 약제복용의 부작용을 알리는 사건보도로 이미 학습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약에 관련된 제약 산업의 불편한 진실은 물론 약과 돈 그리고 인간의 질병을 이용한 약제 산업의 자본화까지 불편한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안 먹어도 되는 약 등 똑똑한 소비자가 되는 법까지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올바른 의약품 고르는 법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약에 대한 상식들이 알차게 정리되어 있어서 고마웠다.
인상 깊었던 내용은 짧게 기록해 본다.
.에너지드링크제는 극소량의 비타민이 내는 대사 기능 향상 효과를 빼면 커피를 뛰어넘는 특별함은 없다.
.우울증 약 복용은 대부분 이익보다 위험이 크다. 이해하고 사랑이 더 효과가 좋다.
.감기약은 신중하게 복용해야 한다. 졸음을 일으키고, 전립선 치료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소변보기가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안압을 올리는 성분도 있다. 고혈압환자나 심장 질환자도 주의해야 한다.
.강도 높은 스테로이드 외용제는 2~4주 넘게 연이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코로나팬더믹 당시 다국적 제약사의 독점개입을 보며 약제산업의 자본화를 확인했다. 그들은 인간의 건강과 질병을 볼모로 권력을 행사했다. 다국적 제약사에 밀리지 않으려면 공공제약사가 필요하다는 필진의 의견에 그래서 눈길이 간다.
코로나팬더믹에서도 체험했듯이 전염병조차도 부자와 빈자를 차별했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위험해도 생계를 위해 문밖을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의미에서 약제만큼은 약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되어야 하며 약이 있어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윤이 낮아 생산할 수 없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버스, 지하철, 기차, 전력, 수도, 가스처럼 의약품도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의약품에 공공재 개념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공공 제약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신종 플루가 유행할 때 유일한 의약품인 타미플루와 예방 백신은 한 다국적 제약사가 독점한 탓에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해 방사능이 누출되면서 요오드제 품귀 사태가 벌어졌다.
언제 쓸지도 모를 요오드제를 생산할 제약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공공 제약사면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약값 협상을 할 때도 공공 제약사가 필요하다. 일부 다국적 제약사들은 공급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약품 공급을 조종 거부한다.
제약사들이 이윤 논리로 어쩔 수 없이 생산을 중단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일 테지만 이럴 때 공공 제약사가 있다면 소비자는 값싸고 약효 좋은 약제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약사의 결정으로 사라진 약으로 값싼 백내장 치료 안약인 '카다린'이 있다.
대한민국은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초고령사회에서 만나는 사회적 질병에 대해 모두가 초보자인 셈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강한 만큼 두려움과 걱정으로 복용하는 많은 약제들이 난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세상에 치매 예방약인 '콜린알포세레이트'가 해마다 급속도로 처방되는 것이 그 예다. 이 약은 뇌에 전달하는 신경막 세포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콩이나 달걀 등 식품을 먹어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의약품으로 허가조차 받지 못해 건강기능식품으로 팔리고 있는 것이다. 치매 예방약은 없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에서도 퇴출운동을 했고, 2026년에는 퇴출될 예정이라고 한다. 결국 골고루 먹고, 즐겁게 웃고, 적당히 운동하는 삶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필진으로 구성된 약사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의외로 '모든 약은 독이다'라는 점이다. 약의 위해성을 깨닫고 그만큼 조심스럽게 사용하라는 의미다. 약은 용도에 맞게 정확한 양을 써야 한다. 많은 약화 사고는 오용과 남용 탓으로 생긴다.
약을 필요한 곳에 쓰지 않고 엉뚱한 질환에 사용한다든지 지나치게 많은 양을 사용하면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약을 더 많이 더 자주 먹는다고 해서 병이 빨리 낫지는 않는다는 것. 오히려 부작용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미성숙한 어린이에 대한 주의는 어른들의 책임이다. 어린이는 약을 흡수하고 분해해서 배출하는 기관이 어른처럼 성숙하지 않아 더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약을 참 좋아한다. 큰 효과가 없는 건강기능식품 하나 정도는 모두들 챙겨 먹고 있다. 그러한 맥락을 짚어보면 '쉴 수 없는 사회'라는 배경에 다다르는 것 같다. 피로하면 쉬어야 하는데 쉬지 못하니 '피로 회복제'라도 복용하는 것이다. 저자는 피로는 사회적 질환이라고까지 말한다. 약국이 아니라 사회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인을 찾지 않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증세에 대한 근시안적 답을 내놓으니 산업재해 피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약사와 의사가 환자에게 가장 쉽게 하는 말 중 하나는 '쉬어야 한다'다. 그렇지만 푹 쉴 수 없는 이유는 개인 의지가 아니라 사회 구조 탓이 더 크다. 보건 의료 전문가들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은 환자들을 쉽게 책망한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 하셨어요?" 단순하게 질병 치료라는 관점에서 환자를 본다면 약물 처방만 하면서 소극적으로 개입하게 돼 질병이 생긴 원인을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다.
늘 환자를 대할 때 직업이 무엇인지, 직업이 병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야 한다. 정도는 모두 다르지만 직업병이 없는 직업은 거의 없다. 그러나 환자의 직업을 궁금해하는 병원이나 약국은 많지 않다. 약물은 공정하지 못한 사회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의 몸 안에 투입돼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든다. 그렇게 약물은 사회구조의 불평등과 어두운 측면을 은폐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똑똑한 약 소비자가 되기 위한 책으로 시작했다가 묵직한 울림을 전달받고 감사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현명한 약 소비자가 되는 길은 의사나 약사가 권유가 아닌 내 몸을 사랑하는 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