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 사람과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졸이며 성장한 사람의 자아 확립 수준은 같을 수 없다. 열등감이 심해서 자녀를 학대하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사람과 어머니다운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사람의 심리적 능력도 같을 리 없다. 부모에게 학대를 받으며 성장한 사람과 격려를 받으며 성장한 사람의 정서가 비슷한 수준으로 성숙할 리는 없는 것이다.
사람의 심리는 의존기를 통하여 형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 있고, 애정 결핍이라는 불행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도 있다. 먼저 그 부분을 분명하게 자각해야 자신의 위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자신에게 심리적 핸디캡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이 심리적 핸디캡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핸디캡이 없는 사람과 대등하게 경쟁하려 하기 때문에 당연히 열등감과 불안으로 힘들다.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르고 산 대가는 대인공포증, 의존증, 우울증, 노이로제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그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서 사회적 경쟁 또는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나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웅크린 핵심감정을 찾아야 한다.
심리학자이자 교수인 '가토 다이조'인 저자의 주장은 잔인할 정도로 명확하고 간결하다. 자신의 억압되고 불안한 내면인 '자신의 위치'를 제일 먼저 인지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누구나 기억하는 이솝우화를 통해 확실하고도 오해 없도록 안전한 설명을 해준다. 우리가 재미있게 읽고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라고 인식하며 응원했던 '토끼와 거북이'에 대한 우화는 '자기 위치'를 벗어난 토끼와 거북이로 해석했는데, 그 의미가 확실히 전달된다.
거북이는 자신의 위치인 '물' 밖으로 나온 것이 문제이고, 뻔히 이길 것을 알면서도 달리기를 제안한 토끼는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무의식이 발현된 것이다. 토끼는 자기 증오가 외재화되어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은 무의식 중에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증오가 적극적인 형태로 표현되면 다른 사람은 경멸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는 본인 스스로를 경멸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정상적으로 사회생활 및 일상을 영위하려면 내 안의 불안을 극복해야 하는데, 그 첫 번째 단추는 내부에 존재하는 공허함과 공포(불안)를 담대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항상 초조해한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외부의 사물이나 사건등을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외재화'라고 하는데, 외재화는 공허한 심리상태를 뜻한다. 이러한 감정의 기초가 어린 시절 주양육자(부모)를 통해 형성된다는 것을 여러 심리책에서 확인하지만 접할 때마다 늘 놀랍다.
부모가 신경증에 걸린 사람이라면 어머니다운 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과 같은 결과를 자신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과 똑같은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것, 인간관계에서 똑같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도 무리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기를 기대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사회에서 경험하는 사람들 중에 논리적 판단을 내리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단단한 사람들은 심리적 핸디캡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심리적 위치와 자신의 약점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으며 삶에 대한 각오도 갖추어져 있는 사람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의존심이다. 저자는 의존심이란 본질적으로 '어머니다운 어머니'를 갈망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자애로운 어머니를 원하지만 신경증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아이는 '어머니를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현실' 마음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의존하고 싶은 심리의 영향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보통 자녀에게 어머니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적대감을 가지는 즉시 모순이 발생한다. "어머니는 내게 중요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실제의 어머니는 가혹하다. 어머니로부터 고통을 받는 까닭에 증오를 느끼는 한편, 어머니는 여전히 중요한 존재다.
이 모순은 의존 심리가 있는 한 뛰어넘기 어렵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무력감과 의존성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신의 내부에 모순이 발생하면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인생은 부모 때문에 망한 채로 시작하는 것인가.
운명을 받아들이면 편해진다.
심리를 다루는 책을 읽다 보면 여지없이 나의 경험과 비교하게 된다. 나 역시 어머니의 애정결핍 속에서 성장한 입장에서 정서적 빈곤으로 많이 힘들었다. 아무리 노력하며 기대에 부흥하려 복종을 해도 어머니의 시선은 귀하게 얻은 남동생에게 일관적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다행히도 일찌감치 '나의 위치'를 확실하게 인정했다. 생물학적 어머니는 존재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부재를 심리적으로 선고했고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채로 잠수된 애정결핍의 슬픔은 뜬금없이 불쑥불쑥 시리게 느껴지곤 했다.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 마음의 정리는 또다른 관계의 세계란 문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나는 어머니를 시대적 상황을 자신의신념으로 자리한 여성으로 인식하자 편해졌다.
형식적인 어머니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머니라고 여기고, '내게는 어머니가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자란 사람은 인생에 대한 각오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그는 응석과 의존심으로 똘똘 뭉쳐 무기력한 사람으로 자란다. 이것이 자신의 위치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착각에서 비롯된 문제다.
냉정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가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고 자라게 되면 안도감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게 된다. 상대의 기대를 쫓아가기 바쁘고 쟁취해도 행복하지 않다. 모든 것이 상대 탓이고 상대를 통해 자신의 바람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란 말이 있다. 자신의 과거가 결코 자신의 미래는 아니라는 생각을 명확히 가지고 살아야 한다. 모순된 어머니상을 빨리 깨닫고 자신의 자녀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이해관계를 애정 관계로 착각하며 평생 불행한 사람으로 살지 말라고 말한다.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는 의존적 욕구가 강하면 자아 확립이 어렵고 자신의 위치도 올바르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싶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는 자립적 욕구가 정립되어야 자신의 위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거북이 "나는 거북이다."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했다면 절대로 토끼와 경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립하겠다는 욕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이후에 드디어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토대 위에 설 수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괴리는 사회관계망에서도 여지없이 공허함과 불안으로 힘들게 한다.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어도 진정한 행복과 만족감이 없는 사람은 내면의 위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외재화된 욕구를 채웠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어린 시절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의 삶 속에 고착화된 내면의 습관과 인식이 강력한 것이다. 행복한 인생이 우리의 삶 속에 최종 목표라면 행복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스스로 확립해야 할 것이다. 무의식 속에 모순된 인식을 끌어안고 신경증적인 자존심을 붙들 이유가 없다.
저자가 인용한 '장 크리스토프(로맹 롤랑 저)'의 글이 인상 깊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운명을 성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