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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필법

공존하려면 공감해라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진심을 말씀드립니다.  자주 위로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함부로 남을 위로하려고 하지도 마시고요.  삶은 원래 고독한 것이고, 외로움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견딜 만큼 견뎌보고, 도저히 혼자서 못 견뎌낼 때 위로를 구하는 게 좋은데, 요즘은 다들 위로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그런 게 좀 못마땅합니다.  


남에게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책과 더불어 스스로 위로하는 능력을 기르는 쪽이 낫다고 저는 믿습니다.




'창작과 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공부의 시대' 란 주제로 유시민작가의 강연과 질의응답을 보충해서 출간한 책이다.  유시민 작가의 강연제목은 '공부와 글쓰기였는데, 책 제목은 저자가 고집을 피워 '공감필법共感筆法'으로 정했다고 한다.  



예상밖으로 책은 문고판 형식으로 사이즈가 작지만 '공부와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여러모로 완성도 있게 집결해서인지 깔끔한 인상을 받는다.  



유시민 작가가 표제에 대한 고집은 이유가 있었다.  독서가 풍부한 간접 경험이 되려면 글쓴이가 텍스트에 담아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남이 쓴 글에 깊게 감정을 이입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공감을 받을만한 것을 본인도 쓸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타인의 문제나 고민에는 이해력이 부족하다.  타인의 고통을 돈문제로 쉽게 해결하려 들고 정서적 반응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곡해하는 것이다.  



저자의 책을 다수 읽어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그는 자신을 '지식소매상'이라 표현하곤 하는데 전문지식이 없는 독자라 할지라도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다른 정보를 찾지 않고도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게 편하게 쓴다.  그의 큰 장점이다.  또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내면에는 정서적 공감까지 일으키기에 그의 글에 많은 독자들이 신뢰를 보낸다.



공부란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이다.


우선 우리가 평생 한다는 '공부'를 저자는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유발 하라리가 '호모 사피엔스'란 책에서 말했듯이 인간이 지배종이 된 결정적 이유는 '인지혁명 가설'로 핵심인 '언어'의 발달로 인해 인류사의 모든 것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부의 결과물은 '글쓰기'로 완성된다.  글쓰기에 대한 정의를 그는 이렇게 말다.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정보, 옳다고 믿는 생각,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문자로 표현하는 일입니다.  글쓰기는 공부한 것을 표현하는 행위인 동시에 공부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문자 텍스트로 표현하기 전까지는 어떤 생각과 감정도 내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모든 것은 문자로 명확하게 표현해야 내 것이 됩니다.



즉,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하게 알아야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휘의 양을 늘려야 하고 유일한 방법이 바로 독서일 것이다.  글쓰기라는 집을 지을 때 건축자재가 '어휘'란 뜻이다.  



분명히 알던 언어도 잊어버리고 '그게 뭐였더라'를 연발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본다.  글과 친하지 않기 때문에 알던 언어도 잊어버린 것이다.  책과 친한 사람은 어휘의 양이 풍부하고 공감능력이 좋으며 소통을 잘한다.  당연한 결과다.



인간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의미를 추적하는 습성이 있다.  나는 그 길이 인문학이라고 믿었고 적지 않은 책을 읽었지만 근래 들어 과학교양서(과학 전문도서는 엄두를 못 내지만)에 손이 자주 가고 있다.  



나는 그 계기가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였다.  문과 남자가 풀이해 주는 과학공부는 조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인간과 사회에 대해 가졌던 의문을 철학과 역사학으론 완전히 해갈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답답했던 이유를 그는 우리를 대변해서 이야기해 준다.



그런데 명백한 한계가 있어요.  그 모든 대답이 관찰과 사색에서 나왔다는 것이죠. 그들은 인간이 '물질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관찰로 얻은 빈약한 정보를 토대로 인간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가설을 세웠다는 말입니다



바로 전에 읽었던 '인생 어휘(이승훈 저)'의 경험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저자는 고전 속 이야기를 동시대적으로 읽고 당장 해갈하고 싶은 질문에 대해 핵심적인 키워드를 뽑아내 해석해 주었는데, 결코 가볍지 않았고 고전에 대한 깊이를 느끼게 한 경험이었다.  이는 고전을 깊이 소화한 사람만이 능수능란하게 요리할 수 있는 사유의 도구로 느껴졌는데 그 방법이 나는 참 좋았다.  쇼트 영상에 익숙한 현대인들을 유인(?)하려면 작가들도 이미 상식이 된 과학과 통계 그리고 인류학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해석의 노력함이 필요해 보인다.



유시민 저자는 공부만 잘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기를 강조한다.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과정도 인생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절대 공감하는 말이다.  인생은 결국 혼자다.  스스로 견디고 성찰하는 혼자의 시간의 힘을 믿었으면 좋겠다.




<공감필법 / 유시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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