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인간의 자연적 욕구와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본성상 경쟁적이고 상호 간 적의로 가득 차 있다고 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학자들은 이 점을 경제적 이득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증명하고' 다윈주의자들은 적자생존이라는 생물학적 법칙에 의해 '증명'했으나, 프로이트는 인간이 모든 여자를 정복하려는 무제한한 욕망에 쫓기고 있고 오직 사회적 압력만이 이러한 욕망을 행동화하는 것을 저지한다고 가정함으로써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에리히 프롬의 심리학 전반을 다루는 책을 읽었다. 그동안 간간이 프롬의 책을 읽으면서 적지 않은 공감을 받은 입장에서 만난 이 책은 그동안의 독서에 대한 보답처럼 느껴져 너무나 반가웠다. 프롬의 심리학을 현대인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한 저자 김태형 씨는 기성 심리학의 오류와 한계를 과감히 비판하는 분이셨다. 그렇다면 프롬을 해석하는 데 최적화된 분이란 뜻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인간 본성을 난폭하게 유린함으로써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을 동물적 존재로 격하시켰다고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기독교 신에 대한 신앙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며 '신은 죽었다!'를 외친 니체처럼, 그는 존엄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죽었다!'라고 말한다.
자유 방임주의적 자본주의 이론은 완벽하게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미국을 견제하던 소련의 붕괴 이후 냉전이 종식되고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승리로 인하여 사람들은 앞으로 분쟁 없는 평화와 자유가 지속될 것으로 순진하게 예상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와 정치는 전보다 더 복잡하고 거대해진 반면, 개인이 능력은 전보다 더 복잡하고 약소해졌다. 거대한 자본의 힘에 억눌려 고립된 개인은 불안과 무기력함을 느낀다. 소속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상 거대한 조직에 자동인형으로라도 살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소수층이 지배계급이 되고 다수가 억압받는 사회구조를 띠고 있다. 대기업이 골목시장까지 점령하니 소상공인이나 영세업자는 생계마저 걱정이다. 승자독식의 경쟁이 심화되고 공동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독점 자본의 힘과의 싸움은 승산이 없는 전투와 같기 때문이다. 열패감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다.
에리히 프롬은 '자본주의 제도의 합리성'에 그동안 우리 모두가 속았다고 강변한다. 철학과 심리학은 물론 생물학까지 합세하여 인간 본성을 여러 충동들의 생물학적 고정이나 총화 또는 무리 없이 적응해 가는 문화적 양식의 생명감 없는 그림자로 해석하는데 협조했을 뿐이라고 질타한다. 자본주의 제도는 인간 본성과는 무관한 탐욕이나 소비욕 같은 동기들을 인위적으로 유발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인간이란 동물은 끝없는 욕망덩어리로 해석해야 논조가 맞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막에는 민중이 우선이 아니라 지배층에 복무하는 지식인들이 자본주의 제도를 옹호하고 합리화하려는 동기가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이기심이 인간 본성이라는 논조는 개인 이기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자본주의 제도야 말로 가장 좋은 체제이기 때문이다.(개인 이기주의는 중세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되면서 부각되었다.)
오늘날 인간은 가장 근본적인 선택, 즉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화 (자본주의와 구소련의 공산주의)를 택하느냐 아니면 인본주의적이고 공동체주의적 사회주의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프롬은 심리학자 중에서는 최초로 또 거의 유일무이하게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세계에서 사람을 따로 떼어내 그 사람만 관찰하거나 인류의 사회. 역사를 무시하면서 동물의 왕국만 시청해서는 인간심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생물학적으로 해석한 기성 학자들의 판단을 지적하며 인간의 진화는 문화 발전의 결과이지 신체 기관의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훗날 수많은 논문과 다양한 학문의 탐독 및 고증을 통하여 발간된 다수의 책에서 밝힌 인간 종에 대해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수십 년간 문화적 진화가 만든 신종 동물'이란 점으로 비추어봤을 때 20세기를 살다 간 프롬의 주장(인간은 사회적 존재)은 가히 혁명적인 주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사람이 사회적 존재임을 강력한 주장한 최초의 학설은 마르크스주의지만 '현실 속 인간'에 대한 지적 탐구는 그가 유일하다.
인간은 어떤 존재로 보는가에 대한 질문은 심리학의 근본 문제로 통한다고 한다. 사람을 동물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생물학적 존재로 보는가 아니면 동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적 존재로 보는가는 심리학 이론이 결정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 본성을 무참히 유린함으로써 사람을 정신적으로 병들게 만들어 자본주의 사회야말로 병든 사회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병든 사회에 훌륭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확실한 환자라고까지 말한다. 수백만 명의 인정하며 살아가는 이 자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동일한 악을 공유하고 인정한다면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다는 정의다.
프롬은 '이성적이고 인본주의적인 희망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삶의 무의미함에 짓눌리고 병든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동기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병든 사회의 변혁, 즉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적 활동만이 심리학이 제시해야 할 책무라고까지 말한다.
혁명적 인본주의,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프롬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물질주의(생산적 우선주의)로 치달았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밀려 추락했다. 그가 제언하는 새로운 사회는 대단히 이상적이다. 고도의 지방분권화, 최저생계비를 보장해 주는 기본소득 제공, 참여 민주주의만이 새로운 사회를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즉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를 말한다.
20세기를 살다 간 프롬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인류에게, '이성적이고 인본주의적인 희망을 위해 노력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삶의 무의미함에 짓눌리고 참을 수 없게 되어 비합리적인 악마의 환산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분명히 병든 사회다. 4차 산업혁명의 진화까지 소수의 지배층의 탐욕으로 지배되는 무기로 사용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의 시대로 달릴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걱정일까.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무거운 진실을 마주한 기분이다.
<싸우는 심리학_에리히 프롬 특강 / 김태형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