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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하

도덕적 분노는 값싸게 일어난다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인간은 선뜻 고문하거나 죽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 인간이 마치 인간이 아닌 존재, 사악한 본질의 구현체로 여겨진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습니다.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모두 한 가지 목적에 초첨을 맞춥니다.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상대 집단의 사람들이 인간이 아니라고 설득함으로써, 그들을 강탈하고 속이고 괴롭히고 죽여도 괜찮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지요.


- 파시즘 물결이 거세지던 1936년 대중매체의 거짓된 정보에 대한 '올더스 헉슬리'의 연설 中




인간이 유인원 중 최상위 지배층이 된 이유는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적으로 이루어진 문화적 학습이 진화의 동력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 힘도 월등히 약하고 빠르지도 않고 독성식물을 피할 본능은 발달하지 않았지만 공동체의 '집단두뇌'를 믿고 따르며 '문화 공진화개념'을 체득화되었고 지금도 우수히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문화 공진화개념은 '이기적 유전자'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주장한 밈(meme)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소셜 미디어상에서 빠르게 유행하는 대중문화는 문화적 진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밈(meme)의 파급은 긍정적인 효과만 있지 않다.  비인간화된 표현도 빠르게 흡수되기 때문이다.



수만 년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이 우세종이 되었던 강력한 이유 중에 하나가 다정함과 협력적 의사소통으로 통하는 '고유의 신경 메커니즘'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 '브라이언 헤어'는 우리 인간 종에게만 있는 고유하고도 특별한 것이지만 이 신경 메커니즘이 닫힐 때는 극도로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가 주장하는 인간생존과 진화의 주축이 된 '자기 가축화 가설'을 통해 내집단을 지키려는 다정한 협력, 소통의 장점이 외집단을 비인간화할 때 최악의 폭력성을 보인다는 점을 밝혔다.



'인간이하'의 저자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는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의 행동 중에서 '비인간화'에 대하여 역사적 자료와 학술적 주장들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이 책에 담아냈다.  



단순히 '외집단을 비인간화할 때 잔인해진다'라는 간단의 논조의 확인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자료가 존재하는 예수탄생 이후부터 최근까지 조사한 것이라 대단히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인류 사회의 수많은 역사적 비극 앞에서 비인간화에 대한 절실한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은 독자로써 백번 공감하는 부분이다.  인간 고유의 감정조절 능력과 자제력을 점차 잃어가고 내집단 외에는 모두 적대시하는 비인간화가 강화되는 시대적 흐름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AI와 함께할 앞으로의 세상에서 가짜뉴스의 다발적 양상에 비인간화까지 덧붙여진다면 인류의 종말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도 지구 곳곳은 전쟁과 폭도 그리고 갑이라는 위치에서 상대방을 노예화하려는 상태가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그들의 과감한 잔혹성은 어디에 기반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너무나 명확해 보인다.  비인간화(가축, 쥐, 해충 등), 상대 집단의 사람들이 인간이 아니라고 설득함으로써 그들을 괴롭히고 죽여도 괜찮다고 믿게 하면 되기 때문이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집단학살인 홀로코스트에 기록된 자료를 보면 독일인들이 말살당하는 사람들을 진짜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동반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제3제국의 독일인들이 유대인, 슬라브인, 집시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생각하고 유인원, 돼지, 쥐, 벌레, 세균, 기타 인간이 아닌 생물로 묘사한 것에 대한 방대한 문헌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증거는 나치가 인간 이하라는 용어를 은유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한 친위대의 전문가는 냉혹하게 집단 학살을 언급했다.


"우리는 권총으로 쥐를 사냥하지 않는다.  독과 가스로 사냥한다."



자민족 중심주의는 왜 위험한가.  오로지 자기 집단의 구성원만이 진정한 인간이라는 신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부터 비인간화는 시작된다.  



우리가 사람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많은 경우 폭력과 모욕이 이루어진다.  동물이나 해충, 박멸해야 할 존재로 대상화하는 행위는 도덕적 제약 없이 제국주의를 꽃피울 수 있게 만든다.  전쟁이 일어나려면 인간이 살육 행위를 향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데 적군을 비인간화하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학적 자료를 토대로 확인컨대 우리 종은 놀라울 정도로 비인간화의 사례와 집단 학살, 아프리카인에 대한 억압과 노예화, 신세계 원주민의 말살 등 진화에 있어서 궤적의 심리적 유산과 관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종차별의 본질은 아주 오랫동안 인류 문화의 일부였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왜 같은 사람들을 죽이는 걸까.  이 또한 지능의 진화로 설명된다.  인간은 언제 살인이 유익한지를 인식할 정도의 지능이 진화되었을 때(이 또한 문화적 축적) 살인자 종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사람은 목숨을 빼앗는 것에 강한 혐오감이 있기 때문에 지능이 높아지면서 그들은 살인에 대한 혐오감을 억제시키는 전략(장거리 무기 발명, 현실적 인식을 왜곡시키는 약물 복용,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책임전가 의식 등)을 고안하기 이르렀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장 압도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우리와 같은 종의 지위를 부정하는 즉 '비인간화'를 결합했다는 점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인간이하'의 존재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활용하는 능력은 오직 인간의 두뇌만이 처리할 수 있는 개념이다.  또한 내집단 선호, 외집단 차별은 인간적 본성이라는 점이다.  인류 사회의 수많은 비극은 이러한 인간 본성인 기본값으로 내재되어 있는 상태로 진화되었다는 내용은 읽을수록 새삼스레 놀라웠다.  



인종주의나 민족주의가 '옳지 못한' 주장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우월한 우리와 열등한 너희를 나눈다.  차별하고, 증오하고, 심지어 때리고 죽인다.  코로나 19 팬더믹은 이러한 인간적 본성에 불을 질렀다.  2020년 뉴욕의 인종 범죄는 작년 대비 무려 여덟 배가 증가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비인간화'적인 충동의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저자는 '심리적 갈등을 다루는 무의식적인 전략'만이 유일하고도 합리적인 방법이라 주장한다.  비인간화의 작동 방식에 대한 정교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비인간화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사상가인 리처드 로티 Richard Rorty는 '인간의 권리, 합리성, 그리고 감성'이라는 주제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폭력을 자행하는 사람들을 악마, 괴물 또는 사악한 동물로 보는 경향'을 지적하면서 폭력을 자행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그들이 희생자를 대하는 태도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는 점이다.  합리적인 접근방식의 허점이다.



우리는 왜 모든 사람이 연민과 존중으로 대우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기보다는 사람들이 연민과 존중으로 대우받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인권은 발견되기를 기다리면서 널려 있지 않다.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인간화 이론을 정리하면서 그의 주장은 해결책으로 강력하지 않았지만 '비인간화'의 문제점을 강조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고 싶다.  여태 아무도 가장 중요한 인간의 치부라 할 수 있는 '비인간화'의 담론을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비인간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비인간화의 역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장 실행 가능한 대안은 없을지라도 비인간화의 충동을 모두가 논의해야 하는 것이다.



감정적일 때는 논리적으로 풀고, 논리가 막힐 때는 감정에 호소하라는 말이 있다.  합리적인 접근방식이라고 믿는 제안이 인종, 종교, 국적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 것이 허다하게 많다.  무미건조한 이론적 논증보다 도덕성의 문제인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즉 감상주의적 접근방식이다.



인간의 뇌는 논리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이성보다는 감정으로 움직이는 동물이다.  증거를 가지고 설득하기보다는 인간 본연의 동질감을 깨우는 관계지향적 본성인 감정에 호소하는 저자의 방향성에 나도 동의한다.  



비인간화는 공격성이 높고 어찌 되었든 에너지를 더 쓸 수밖에 없다.  최악의 생존 전략이다.  더럽고 잔인한 인생으로 살 것인가 다정하고 친절하며 협력적으로 살 것인가.  선택은 자유지만 인간이라면 인간적으로 사는 게 맞지 않겠는가.  




<인간 이하 /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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