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체제의 대부분 노동자들은 노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마르크스를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이데올로기적 사상가로 지목되게끔 만든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공산당선언' 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진정한 이론은 오로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만 명료화되고 발전되어야 한다고 믿은 혁명가이자 철학자였다.
그의 사상이 탄생했던 당시 유럽은 규모와 범위의 경제라는 무기를 통해 몇몇 소수 자본가들이 생산기반을 독점한 문제로 인해 사회는 곪을 대로 곪은 심각한 상태였다. 프랑스혁명이 봉건적 소유를 폐지하고 그것을 부르주아 소유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는 당시 부르주아지라는 계급의 출현이 소유권 사수를 위한 혁명의 시초라 해석했다. 자본가들은 생산시설을 소유한 자본가개념을 넘어서 생산기반을 독점한 문제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임금으로 궁핍된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유럽전반에 자본주의에 반하는 노동자들의 혁명의 기운을 감지한 마르크스는 기존의 사회주의자들과는 다른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실천(비전)을 두고 명확하게 다름을 선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에 탄생한 것이 '공산당선언'이다.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세습귀족과 노예가 존재했고, 중세시대에는 봉건 영주와 농노가 있었다면 근대에는 부르주아와 그들의 새로운 피지배계급 즉 임금노동으로 연명하는 '프롤레타리아트' 가 있겠다. 기계장치의 확대와 분업의 발달로 인해 하층민은 물론 중간신분, 소기업가, 상인, 수공업자, 농민등의 모든 계층이 자립성을 상실하고 부르주아의 피지배 계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노동이란 고작 기계부품과도 같은 단순한 손동작에 불과했다. 노동시간은 증가하지만 임금은 그 상품의 가치를 넘어설 수 없었다. 그들의 인건비는 상품원가의 일부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의 노동자들의 위치와 유사한데 노동자는 빈민자가 되고, 사회적 빈곤은 인구와 부가 증가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생산력은 모든 사람에게 충분할 정도로 생산되지 않았지만 대규모 산업발전 이후 증가하는 생산력과 사적 소유는 소수 부르주아의 수중에 집중되고 국민 대중인 프롤레타리아의 삶은 갈수록 비참해졌다. 마르크스는 과잉생산으로 인한 공항의 패턴이 반복되고 이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프롤레타리아 계급들의 투쟁이 시작되어 결국 단결을 통해 승리하는 역사가 도래할 것으로 보았다.
즉 '역사는 억압자와 피억업자의 부단한 대립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물'이며 따라서 그 갈등의 근원은 '경제'라 판단한 것이다. 그는 시대의 전환은 계급 간의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적 변화의 과정은 '소외'라는 문제의식과 현실비판, 그리고 행동을 통한 이념과 현실의 화해라는 변증법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고 해석했다. 즉 사회주의 혁명에 기초한 '공산당선언'의 내용은 인간소외에서 해방의 복음으로 계급 대립과 착취의 역사를 완전히 종식시킨다는 완전한 해방을 내포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역사는 정반합(正反合)의 과정으로 전개되지만 그 과정을 이끄는 것은 정신이 아니라 '물질(경제 = 먹고사는 문제)'이라는 생각이다. 인간의 경제활동이 변화함에 따라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역사는 전개된다는 뜻이다.
공산당선언은 시민혁명의 전야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촉발시키리라는 희망으로 써졌지만 당대의 정치적 의식을 너무 앞서갔다는 의미에서 실패한 선언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1848년에 쓴 글이 여전히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이론이 여전히 우리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올바른 문제 제기의 방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원리를 현실 자체에서 끄집어내려는 태도를 견지했다. 자본주의 현실이 대부분 노동자들을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을 수 있는 혁명적 실천력을 배양하고 싶어 한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병폐를 잘 알고 있다. 단지 은폐하고 있을 뿐이다. 물질 만능주의, 사회적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인간소외를 들 수 있겠다.
필요한 만큼 이상의 발전한 산업사회에서 아직도 노동하지 않으면 생계가 곤란한 현실이라면 문제가 아닐까 의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거대한 자본주의 틀 안에서 부분적으로 사회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일 견해가 있을 뿐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러시아혁명으로 이룩된 공산주의국가의 지배 계급은 '민주주의' 국가의 자본가 계급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이란 점이다. 그 계급은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 그 힘을 쓴다. 그들은 자본가 계급의 이익보다 해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계급은 마르크스 정치 철학과도 상반된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에는 이데올로기와 철학적 성찰인 인간성 훼손 문제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자본주의의 희망과 비판의 방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경제적 평등에 뒷받침되는 자유, 소외되지 않는 노동, 정당한 근로에 대한 소득과 해방을 요구하는 마르크스의 분명한 제시는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모두가 분명하게 새겨둘 목표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