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실현은 자아실현이 아니다
자아는 인격의 동일성과 지속성을 규정한다. 자아는 정신 재료들을 취사선택 함으로써 개인 인격의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든다. 오늘의 자기가 어제의 자기와 동일하다고 느끼는 것은 자아 덕분이다.
프로이트에게서 독립한 융의 분석심리학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저자는 융의 분석심리학을 자기실현을 돕는 학문이라 말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여러 심리학 도서에서 접하던 용어들의 어원을 알게 된 것은 재미있었다.
의식에 집중하여 인격적 성공에 이루는 활동을 우리는 '자아실현'이라고 말한다. 성공한 인생의 배경설명에는 언제나 '자아실현'이란 칭송이 뒤따른다. 이처럼 인간에게 '자아'란 인격의 최고봉으로 대변되는 하나의 정신적 구조로 인식되는 것 같다.
하지만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 의식의 수문장 역할을 할 뿐이라고 축소하고 있다. 우리가 날마다 많은 경험을 하지만 자아에 의해 존재를 인정받은 것만 자각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고도로 선택적'인 자각을 한다. 우리가 만약 모두 다 자각하게 되면 방대한 양의 자료에 압도될 것이다. 다만 자아에 인식되지 못한 경험들은 소멸하지 않고 '개인 무의식'이라는 저장소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그 경험을 불러올 뿐이다.
'융'과 프로이트는 심리학 연구에서 인간의 행동과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모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두 사람 모두 '무의식'이 인간의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무의식'에서 자유로운 '꿈'에 대한 해석은 달랐다. 예컨대 프로이트에게 '꿈'은 억압된 과거의 소리라면 '융'은 무의식이 꿈을 통해 조언(미래 또는 목적을 암시)을 한다고 믿었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생각, 욕망, 기억으로 구성된 무의식은 의식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석한 반면, 융은 무의식이 억압된 생각과 욕망뿐 아니라 개인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상징과 행동 패턴인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여기서 '원형'이란 조상(원시적 진화적 토대)으로부터 물려받은 것(개성)으로 인간의 행동과 성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말한다.
자기실현은 자아실현이 아니다.
융이 파악한 인간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인 두 영역으로 구분된다. 무의식은 인간이 의식(감각하고 느끼며 생각하여 아는 모든 것)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소홀하게 생각하지만 인간 전체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을 포괄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비로소 온전한 자기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융의 사상에 있어 '자기 Self'는 의식의 닿지 않는 무의식의 밑바닥에 깊이 놓여 있는 세계를 의미한다. 인간의 잠재력이 숨어있는 곳이며 그 세계는 집단 무의식의 원형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세계다. 그에 반면 '자아 Ego'는 자기의 세계보다 훨씬 작은 의식의 세계다.
우리가 무의식을 지배하는 '자기 Self'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매일 밤 만나는 '꿈'이다. 무의식의 활동이 우리의 인식 속에 지각되는 시간이다. 융은 꿈이야 말로 현대인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이고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심연에 놓여 있는 고요한 자기를 꿈의 언어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의식의 치명적인 손실은 꿈에 의해 보완된다고 믿었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에 고여있는 자기와의 세계란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설명 가능한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시성 이론이나 텔레파시, 투시, 요가, 강신술, 죽은 자와의 대화(영매, 점성술)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의 세계 안에서 '이성'이라는 것은 지극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만으로는 마음의 전체성을 파악할 수 없다. 융은 인간 심성의 뿌리 저 깊은 곳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찾는 것은 성숙을 지향하려는 노력이며 바로 '개성'을 찾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융은 수많은 환자를 경험하면서 인간 본성의 훨씬 깊은 그 무엇에서 생기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확인했고 '집단 무의식'이라는 정신세계를 발견한다. 집단 무의식은 원시적 이미지로 '최초의 저장소' 개념이다. 어둠이나 뱀을 무서워하는 것 등 진화심리학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집단 무의식은 여러 문화적 토대 위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관념처럼 각 개인의 인생의 전형적인 장면들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개인 무의식은 성장과정에서 사회를 의식하며 생겨난다고 보았다. 융은 개인 무의식의 흥미롭고도 중요한 특징 한 가지는 그 내용물들 중 몇 가지가 모여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기도 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피험자가 단어연상 검사 시 반응이 더디거나 지연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인간의 무의식으로 콤플렉스의 원형을 이루고 심리학에서 인용되는 그의 심리학 분석 용어는 아래와 같다.
1. 페르소나(세상을 향한 얼굴/ 가면)
2. 아니마(남성 속의 여성적 요소) / 아니무스(여성 속의 남성적 요소)
3. 그림자(삶의 위기에 작동되는 정신에너지)
4. 자기 self
융은 40년 동안 '원형'이란 무의식의 기원에 대부분 할애하며 연구했다. 여러 대상들을 통칭하고 있는 인간의 용어(출생, 죽음, 권력, 마법, 영웅.. 등)의 무의식들은 의식적 경험의 재료들과 결합하여 그의 분석심리학의 중심개념을 이룬다.
그는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네 가지 원형을 일생동안 수만 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며 발견했다. 그는 분석가나 이론가이기 이전에 '영혼의사'로서 순결한 사명을 수행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삶 가운데에서 보여주었다. 그가 유년시절 '발작'을 극복한 것처럼 환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병든 의사만이 치료할 수 있다'는 융의 고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의식의 치명적인 손실을 보완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 개성화 시기를 융은 중년부터라 보았다. 사회적 페르소나로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이 혼란을 일으키지 않을 때 정신 속의 에너지가 높은 가치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개성화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