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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 가

나의 머릿속 독재자


우리 자신의 뇌 회로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가장 먼저 간단한 교훈 하나를 얻는다. 행동과 생각과 느낌 대부분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뉴런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정글이 알아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의식을 지닌 나, 아침에 눈을 뜰 때 깜박거리며 살아나는 '나'는 뇌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가장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뇌의 기능에 기대어 내면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뇌는 스스로 쇼를 진행한다. 뇌가 수행하는 작전의 대부분은 우리 의식이 지닌 보안등급을 넘어선다. '나'에게는 그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뇌과학계의 칼 세이건'이라는 찬사를 받는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의 신간이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자발적 의식(판단, 선택, 의지)의 행동이 아니라 두개골 속 작은 뇌(1.4킬로그램)의 설계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무의식을 조종하는 통제센터이자 자동시스템을 구축한 우리의 뇌의 존재를 밝혀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작동하는 과정을 찾아내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그는 우리의 모든 판단, 선택, 행동을 좌우하는 작은 머릿속 독재자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심리학은 물론 생물학, 철학 그리고 뇌과학의 최신 이슈를 총망라해 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읽었던 인지심리학이나 행동심리학 도서에서 예시를 둔 내용이 많이 겹치기도 했다.



그가 정리한 책 속의 세계를 읽다 보면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력에 감탄하게 된다. 상당히 재미있게 풀어가기 때문이다. 분명 뇌과학의 전문언어가 있을 텐데 저자는 인간의 언어로 친절하게 이야기해 준다. 예를 들면 편도체를 감정의 뇌로 전두엽을 이성의 뇌로 분류하는 그것이다.



문명의 역사를 살펴보면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을 거머쥔 자들의 핍박 속에서도 유능한 과학자들은 기어코 살아남아 과학을 지켜냈음을 알고 있다. 지동설을 설파하던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박해를 받았고, 진화론적 패러다임을 펴낸 찰스 다윈은 당시 종교인은 물론 과학계에서도 너무 많은 비난과 조롱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진실의 변혁을 앞세운 과학의 힘은 인간중심의 사고방식 즉 왕좌의 지위를 강제 폐위 되었다고 저자는 표현했다.



이 책은 인간의 행동을 해부하고 있다. 이는 곧 인간 의식을 폐위하는 내용이기도 하겠다. 우리 마음을 통제하는 진짜 주인은 따로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의식'은 그 결정을 도울 뿐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러한 과학적 판단은 '뇌 자기 공명영상 MRI'의 발달 덕분이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한다고 믿는 우리에게 여러 사례를 들어 반박하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 '찰스 휘트먼'은 역사상 가장 흉악한 최악의 총기 난사 범인이다. 그는 자신이 자유의지를 통제하지 못하고 총기 난사를 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자신의 공격성에 두려움을 느낀 그는 사고 전 편지로 자신의 뇌 부검을 요청까지 했다. 그의 뇌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에 종양이 있었다고 한다. 뇌의 물리적 상태에서 자유의지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이외 마약 중독 환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범죄 판단이 모두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의 마음을 통제하는 진짜 주인은 따로 있으며 의식은 그 결정을 도울 뿐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뇌는 뉴런이라고 불리는 세포와 교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포들이 수천억 개나 된다. 이 세포들은 각각 도시 하나만큼 복잡하며, 그 안에 인간의 게놈 전체를 품고 있다. 수십억 개의 분자들은 복잡하고 효율적으로 교환하는 역할도 한다. 각각의 세포는 초당 최대 수백 번 다른 세포에 전기 펄스를 보낸다. 뇌에서 오가는 이 수많은 펄스들은 각각 광자로 표시한다면, 눈이 부시다 못해 멀 것 같은 광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행동하는 것을 '무의식'이라 한다. 무의식은 뇌의 세세한 부분까지 의식이 간섭하기 시작하면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어떤 일들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습관적 행동, 갑자기 끼어든 승용차에 순간적으로 브레이크에 닿는 발, 눈 감고 치는 피아노 건반, 반대편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 도중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면 순간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 등 많은 예시가 떠오를 것이다.



저자가 거론을 하기도 하지만 '무의식'에 대하여 한평생 연구한 19세기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소환은 참 반가웠다. 그는 MRI가 발달하기 전의 세대 사람으로 한평생 무의식에 대해 연구인생을 바친 인물이다. 뇌의 숨겨진 부분들이 생각과 행동에 관여하는 과정을 처음으로 들여다본 '꿈의 해석'을 저자는 거론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적인 부분을 분석하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연한 실수 안에도 특정 무의식이 작동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숨겨진 정신적 과정에서 선택과 결정이 유래된다고 보았다. 이는 뇌과학에서 밝혀낸 뇌 회로에 각인된 루틴과도 같은 의미다.



저자는 우리의 자아가 뇌 속에 라이벌로 구성된 팀들이 협력과 경쟁을 벌이며 만들어낸 것이라 설명한다. 우리 안의 이성과 충동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자기 자신과 말도 안 되는 협상을 벌이기도 한다. 내 안의 여럿의 내가 만들어낸 결과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자아'라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의식은 신문을 보는 일과 같다.



무의식이 뇌 회로에 새겨진 루틴의 결과물이라면 번뜩이는 아이디어, 경이로운 발명, 착안하는 생각 등은 우리의 의식이 아니고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 또한 저자는 무의식과 같은 논리로 유사하게 설명하고 있다.



역사상 번뜩이는 발견등에 모두가 '그냥' 또는 '갑자기'라는 단서가 붙는 이유라는 것이다. 막후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올려 보낸다는 것은, 신경회로가 몇 시간, 며칠, 몇 년 동안 정보를 통합하고 새로운 조합을 시험하는 작업을 해냈다는 뜻이란 것이다. 천재적인 발상이 떠오르기 전에 뇌는 이미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해 놓은 상태다. 우리가 정신이라는 신문의 헤드라인을 읽을 무렵이면, 중요한 활동과 거래는 이미 이루어진 뒤란 설명이다.



이는 '헤르바르트'의 '통각 집합체'의 용어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는 고립된 상태의 의식 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식 속에 있는 다른 아이디어 복합체와 동화되었을 때에만 의식에 들어올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유사한 생각이 위로 올라가면서 비슷한 생각들을 함께 끌고 가는 식이다.



인간의 작은 두개골 속 뇌의 엄청난 능력에 압도되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면 '나'는 의식과 무의식의 껍데기에 불과한 것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의 뇌는 우주와도 같다. 아직도 완벽히 밝혀지지 않는 뇌과학을 실체를 고백한 뒤 저자는 정신 못 차리게 흔들린 독자들을 향해 슬며시 생각의 미끼를 던져준다.



'나'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나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유일한 해법은 뇌를 '나다움'의 가장 조밀한 집적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뇌는 산꼭대기일 뿐, 산 전체가 아니다. 우리가 '뇌'와 행동에 대해 말하는 것은 훨씬 더 광범위한 사회생물학 시스템의 영향이 포함된 어떤 것을 간략히 표현하는 방법이다. 뇌는 정신이 있는 곳이라기보다 정신의 허브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데이비드 이글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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