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훗날 간병받을 대가로 우리를 키우지 않는다
부모로서의 저는 아이에게 준 것만큼 아이로부터 돌려받겠다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과연 많은 부모가 언젠가 자신에게 간병이 필요해질 날을 염두에 두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일까요?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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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저 하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주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포함해서 돌아올 것 따위는 기대하지 않으면서요.
아들러 심리학을 담은 대표작 '미움받을 용기'의 작가 '기시미 이치로'가 부모님의 긴 간병기간 동안 깨달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다. 철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간병이라는 고단하고 지루한 일상을 차분하게 인문학적으로 풀어냈다.
간병에 지친 사람들이 읽는다면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간병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읽는다면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저자는 대학원시절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6개월간 간병을 했고 이후 곧바로 아버지가 치매(알츠하이머)에 걸려 30여 년간 돌봄을 자처했다. 그 와중에 본인도 쉰 살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생사를 오가는 경험을 했다. 가족 전체가 불행의 도가니에 있었던 셈이다.
그가 초연하게 삶을 바라볼 수 있었던 저변에는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는 생각이었다고 고백한다. 이제 두 분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글을 쓰는 사람답게 그는 부모의 간병으로 고민하는 사람들과 고민할 사람들에게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갖도록 철학적 사유를 나눠주고 있다.
그저 단순히 경험담을 적은 이야기였다면 개인적으로 크게 감동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보다 더한 고생담을 알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시어머님과 친정부모님의 돌봄을 해본 사람으로서 예상되는 감정을 알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부모의 사랑을 '인간관계'라는 큰 틀에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나는 슬픔을 잠재우고 읽을 수 있었다.
일전에 읽었던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을 직접 해석하여 출간한 책인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은 그의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썼다고 읽은 기억이 난다. 간병을 하면서 명상록 원문과 여러 가지 버전으로 해석된 명상록을 모두 섭렵해 가며 책을 출간했던 것이다.
나는 당시 명상록을 깊이 이해하는 저자의 실력에 놀랐고 철학은 물론 그리스어와 라틴어까지 알고 있다는 박식함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저자는 학부시절 간사이 의과대학생들과 철학생이었던 자신을 포함해서 '모리 신이치' 선생님 자택에서 무료로 그리스어 강습을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대가를 치르려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약 자네 후학 중에 그리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있거든 그때 그 사람에게 자네가 가르쳐주면 되는 거라네.
저자는 그리스어를 무료로 가르쳐준 선생님의 마음에서 부모의 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스승에게 치를 대가를 돈 없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대학 강의까지 맡게 된다. 책에서 더 이상 후일담은 없었지만 선한 영향력은 대가 없는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 이야기는 대가 없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님의 마음과 동일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유아기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말이다. 부모는 자식을 키우면서 훗날 자신이 간병받을 대가로 자식을 키우지 않는다. 또한 착한 자식이 부모를 잘 간병하고 싶겠지만 그것 역시 가능한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선택할 사항일 뿐이다.
아픈 노모를 간병해 봐서 알지만 당신 몸이 아프면 억지주장과 짜증을 동반한 말투가 부모라는 권력까지 합쳐져서 화처럼 들릴 때가 많다. 고생하는 자식만 욕받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간병이나 돌봄을 해야 하는가.
지금 부모에게 과거와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자고 말한다. '지금, 여기'만 있을 뿐. 하루하루 함께 하는 순간을 기억하는 유일한 증인으로서 부모의 좋은 의도를 발견하라고 말이다. 내일 후회할지도 모를 오늘을 살지 말라는 뜻이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사실 부모님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가족에게 힘이 되는 존재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가족끼리 어딘가 어색함을 느낄 때 우리는 처음으로 깨닫게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부모님이 사실은 가족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상징적인 존재였다는 것을요. 그렇게 가족에게 기여하고 있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