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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속물근성에 대하여

사물이 기억이 되는 순간에 대한 고찰



품격은 값비싼 명품을 휘감는다고 나오지 않는다. 적절한 선을 알고 원칙에 맞게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안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끔은 불편해도 원칙을 지키는 태도도 필요하다.





이 책은 작가가 구매한 물건과 성장과정에서 알게 된 경험들, 방송국 및 문화사업계 PD로 일하면서 마주했던 현실과 이상, 책임감, 공감 능력의 한계 속에서 깨달음 그리고 우리 주변의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철학적 사유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묵직하게 내려놓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나의 소비가 이야기가 되는 세상이다. 소비는 욕망의 표현이고 나의 경제적 위상을 알리는 좌표이기도 하다. 속물근성으로 시작된 소비라 할지라도 가치가 있다면 그 물건은 기억을 구체화하는 물리적 증거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애착물품에는 고르기 위해 공들인 노력들과 애정, 지식들까지 담겨있다. 저자는 기억 속에서 깨달은 경험들을 책에 담아냈다. 그는 이를 사물완상(事物玩賞)이라 명했다.



허투루 재미 삼아 구매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는 점과 물건 하나에도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집착하는 작가의 성격에 나는 놀라움을 느낀다. 집착의 끝은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않을까. 끝까지 파고드는 집중력과 호기심 그리고 철학적 사유로 귀결되는 과정은 이 책에서 느낀 가장 부러운 능력이다.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역사는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는 역사로 진화해 왔다. 사치품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끊기 힘든 속물근성은 경제적 우위인 특정한 계층이라 평가되었고 상품의 사용가치보다 차별적 과시를 위한 소비의 선택으로 귀결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물욕이 아닌 나의 정체성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운동은 사치품을 필수품으로 강등시켜 구매한 물건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남들과 다르길 바라는 인간의 허세와 욕망을 부추기며 기업들은 끊임없이 고가의 신제품과 명품을 내놓으며 유혹한다. 반복된 기업의 상술과 자신의 경제적 소비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그리고 어느 정도 소유해야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이 오류를 내면서 깨닫게 된다. 철학의 효능이다.






그가 걸어온 이력을 살펴보면 어떻게 이렇게 자유롭고 활발하고 창의적인 직업군을 활보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게다가 지금은 중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정원을 가꾸는 마당 있는 집에서 작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녹아내는 글을 쓰고 있다.



작가는 시간졸부로 살았다고 고백한다. 엄청난 말썽을 피우며 욕망을 삐뚤게 분출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좋고 싫음을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마음껏 쓰는 시간 속에서 독립된 성인의 모습을 그려내는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정해놓은 목표가 없고 방황할 때 오히려 목표가 보인다는 뜻이다. 속된 말로 정신을 차린 것이다.



관심이 가지는 분야가 생기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다닌다. 일상에서 만난 작은 계기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인터넷의 조각 정보를 찾는다. 호기심이 발동되면 더 다양한 검색어로 궁금증을 해소한다. 그렇게 일단락되었던 것이 다른 궁금증과 만나는 순간이 온다. 각기 다른 영역인 줄 알았던 정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체계적으로 서술된 책을 찾게 된다.




나는 그의 목표의식 계기도 이해했지만 끈질긴 집중력에 감탄하고 있다. 시간졸부의 시간에도 그의 호기심은 왕성하게 활동했다. 궁금증 해소의 차원이었고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깨달음이라고 작가는 말했지만 이미 뇌는 깨달음을 얻기까지 엄청난 양의 작업을 미리 해놓은 상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양의 공부와 발로 뛰는 직업에서 발휘해야 했던 창의력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성향이 결합된 결과물일 뿐이다.



이것은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데이비드 이글먼 저)'에서 읽은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의 뇌는 가장 효율적인 요점을 전달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는다. 즉 에너지를 가장 적게 소비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찾는다는 의미다.



저자는 사물을 통해서 인간의 욕망과 소유에 대한 애착을 고찰했다. 많은 철학자의 입을 빌려 자신의 생각에 힘을 실었지만 무엇보다 작가 스스로의 경험과 깨달음의 참고사항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폭주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관계에 대해서 작가처럼 멈춰 서서 사유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의식과 고정관념에 견고히 다져진 욕망 가득 찬 사람으로 살게 된다.



현상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려는 시선을 나는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을 파고들어 가려는 노력이다.




<그 남자의 속물근성에 대하여 / 임찬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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