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이 지난 하루는 공백이 아닌 여백이다
어른이 된 나의 목표는, 아니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불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아프지 않고 매일을 별 탈 없이 마무리할 수 있길 바란다.
"오늘 저녁은 뭘 먹지?"라는 사소한 고민에 시간을 충분히 써도 괜찮은 지금이, 조금 더 지속되길 바란다. 행복이 더 많아진 삶이 아니라 불행이 더 줄어든 삶이다.
평범함이 주는 행복의 가치를 조용히 찬양하는 에세이집이다. 어려운 문장 없이 독자의 가슴을 조용히 열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가를 만난 기분이다.
현대사회에서 행복이란 소비가치라는 경제력의 수준으로 갈리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행복이 쟁취해야 하는 그 무엇이라면 행복은 '투쟁'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쇼펜하우어는 고통과 지루함 사이를 오가는 것이 삶이라 표현했다. 즉 인간의 삶은 욕망과 욕망의 만족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 행복의 조건이 달라진다. 생각 외로 쉽게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누리게 되는 소유욕은 자신보다 더 성공한 사람과 비교하고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만이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강화되는 것이다. 분명 부모님 세대보다 잘 살고 있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이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반증이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 대한 행복이라는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저자는 행복이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행해지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자신을 먼저 챙기면서 주변을 바라보는 것이 이기적인 것 같이 보여도 결국 이타적인 결과를 낸다는 것. 저자가 이 책 전반에서 말하려는 의도를 나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어느 날 평범하게 사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행복한 삶의 목표를 성공이 아닌 불행해지지 않는 것으로 방향을 틀자 찾아낸 평범의 가치였다. 삶은 어차피 고통이라는 부처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행복을 좇을 것이 아니라 우리는 불행해지지 않도록 수비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 '만족'이라는 말처럼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만족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평범하게 사는 것은 어떤 삶인가. 평범하게 사는 것은 사실 어렵다. 나를 포함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에 별 탈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안의 식구 중 누군가가 병에 걸리거나 아프면 일상이 무너짐을 알게 된다. 내가 고단하고 정신없는 일처리로 피로가 최고치를 달릴 때 우리는 주변의 사람에게 안부를 물을 겨를이 있었던가. 저자는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정신적 에너지를 '다정함'에서 찾았다.
문득 유인원 중 인간이 최상위 지배종이 된 이유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탐구한 책이 떠올랐다. '호모 사피엔스(조지프 헨릭 저)'인데, 힘도 약하고 빠르지도 않은 인간이 살아남은 이유를 책의 저자는 문화 공진화개념의 하나인 자기 가축화이론을 들었다. 그 이론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다정함'이었는데 관심 있는 독자들은 일독을 권한다. 아무튼 친화력(다정함)은 인간 진화의 큰 선택압으로 작용해 인간의 심리적 특징까지 변모시켰는데, 우리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에 맥을 못 추는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증가하는 이유기도 하다. 본능인 진화의 산물이 협력적 의사소통인 '다정함'이 우리에겐 필수적인 생존본능인 셈이다.
저자는 다정함을 체력에서 찾았다. 운동의 중요성을 따분하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정함의 총량을 늘려야 나도 살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근육의 크기만큼 다정함의 크기도 커질 것이라는 글을 읽었을 때 나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나를 먼저 챙기자는 이기적인 제안의 글이 아니다. 내가 체력이 있어야 주변도 살피고 내가 웃어야 남의 미소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 생활이 우선순위에서 자꾸 미뤄지다 보면 포기가 습관이 되고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포기하게 된다는 글을 읽었을 때 괜히 울컥해지는 기분은 단지 나뿐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세상은 나 없이도 돌아간다. 단지 나만 내가 없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일하고 눈치 보며 살뿐이다. 내 생활이 하면 할수록 돈과 시간이 차감되는 구조라면 정신 차려야 한다. 제일 먼저 나를 챙겨야 한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 멋진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내 생활까지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무조건 내가 먼저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글이 있다. 상대가 나와 맞지 않거나 미운 감정을 들 때 다스리는 글이었는데 이마저도 나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자는 의미로 들려서 즐겁게 설득당했다.
사람을 미워하는 데도 체력이 든다. 시간, 감정, 큰돈.. 모두 이득없이 낭비하기엔 너무도 소중한 가치들이다. 우린 그렇게 많은 것을 미워할 능력 없이 태어났다.
우리 서로를 그냥 좀 내버려 두라는 의미다. 서로가 다르게 성장했는데 굳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화내거나 내 체력을 소비하면서까지 힘들 필요가 있을까 말이다. 각자의 삶은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쿨하게 넘어가는 아량을 보이자. 무겁게 받아들이지 말자.
작가의 말처럼 우린 정말 너무 쓸데없이 불행하고 너무 복잡하게 행복을 찾는다. 그러니 행복하기에 앞서 불행해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조용한 일상에 감사를 다정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에 편안함을 찾기를 바란다.
지난 주말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있는 동호회 모임을 다녀왔다. 하필 모인 날이 비와 바람이 억수같이 쏟아졌지만 모인 사람 누구도 날씨를 원망하지 않았다. 한 달 전에 잡은 날짜가 긴박하게 움직이는 구름이동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친구들의 얼굴을 본다는 그리움의 해갈에는 못 미쳤다.
모인 친구들의 표정에는 모두가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삶에서 부딪히며 생긴 피로 따위는 모두 청소하고 온 사람들 표정이었다. 비가 와서 특별한 이벤트 없이 소소히 담소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아니 모두가 만족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어른들의 행복은 조용하게 흐른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평범하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조용한 게 좋다. 심심한 건 편안하다. 나른한 건 안정적이다. 짜릿함은 여전히 즐겁지만, 뭐랄까, 조금 피곤하다. 예상치 못한 일은 이제 기쁜 이벤트가 아닌 새로운 숙제다. 어제와 같은 하루가 나쁘지 않다. 즐거워할 일은 없지만 실망할 일도 없는 이 일상에 감사하게 된다.